"잘 갔다 와~"
현관문이 닫히고 도어록이 잠기는 '띠리리릭' 소리에 마음이 편안해진다. 이제 모두 나갔다. 해방이다!
지난주에 아이들의 학교가 모두 개학을 했다. 한동안 글을 쓰는 게 어렵게 느껴졌는데, 날씨가 너무 덥고 아이들이 모두 집에 있으니 여유가 없어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이제 무더위도 한풀 꺾인 듯하고, 아이들이 모두 학교에 가고 조용한 시간이 생겼으니 편안하게 글을 좀 써봐야겠다고 노트북을 켰다.
뭘 쓰지?
아, 비 오는 아침에 길에서 마주친 네 살쯤 돼 보이는 아이가 생각났다. 제 손으로 우산을 받쳐 들고 자부심 가득한 미소를 지으며 어린이집을 향해 걸어가던 귀여운 아이. 어린이집 앞에서는 그 아이 말고도 보기만 해도 미소가 지어지는 아기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집 근처에 어린이집이 있다는 건 참 행운인 것 같다.
아, 그런데 더 이상 이야기가 이어지지 않는다...
아이들 이야기를 써 볼까? 남편 이야기? 내 이야기?
마땅한 이야깃거리가 생각나지 않아 작가의 서랍을 열었다. 서랍 속 사정도 삭막하긴 마찬가지, 한때는 넘쳐나던 이야기들이 메말라 버렸다.
왜? 왜? 왜?
답은 간단했다. 글쓰기가 지금 내 관심 밖으로 밀려났기 때문이다. 한동안 나를 자극했던 게 글쓰기였다면 지금은 골프다. 골프는 될 듯 될 듯 안되고, 쉬운 듯 어렵다. 더러워서 못해먹겠다 싶어도 꾸준히 하다 보면 또 된다.
날마다 한두 시간을 연습장에서 보냈고, 여유 시간에는 골프레슨 동영상을 봤다. 글을 잘 쓰고 싶어서 날마다 한두 시간씩 글을 쓰고 글쓰기 관련 책을 찾아 읽던 때처럼, 나는 지금 공을 잘 치고 싶다는 생각만 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최근 내가 쓴 글에서는 신(어떤 일에 열성과 재미가 있어 퍽 좋아진 기분)이 느껴지지 않는다. 요 며칠, 일 년 전 내가 쓴 꽃게탕 관련 글을 많은 분들이 검색해서 읽고 있다. 내가 뭐라고 썼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 다시 읽어보면서 느꼈다. 신나서 썼구나! 글의 내용과는 별개로 글을 쓰고 있는 내가 즐거워하고 있었다는 게 느껴졌다.
운동신경이 좋은 사람은 금방 터득한다는 골프 스윙이 내게는 너무 어려운 동작이었다. 아무리 레슨을 받고 동영상을 들여다봐도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그렇다고 대충 하기는 싫었다. 내가 믿는 건 하면 된다는 것뿐이었다. 나는 두 배 세배 더 열심히 하면 되겠지. 그렇게 5개월이 돼가니 이제야 감이 온다. 아, 이거였구나.
사실 골프보다 더 감이 안 오는 게 글쓰기다. 2년이나 썼어도 '아, 이거구나. 이렇게 하면 되는 거였어.' 같은 확신을 느낀 적은 없었다.
예전에 어떤 책에서 읽은 문구 하나가 생각난다. 시인이 시를 쓰고 싶어 하는 친구에게 해 준 말이었던 것 같은데, "시를 빤스처럼 입고 있어야 돼."
꾸준히 글을 써서 글쓰기 근육을 키워야 한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하지만 꾸준히 운동해서 근육을 키워도 그만두면 금방 사라지는 게 근육이듯 글쓰기도 비슷했다. 물론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그래서 근육을 키워 내 몸의 일부로 만든다는 말보다는 빤스처럼 입고 있어야 한다는 그 말이 더 마음에 와닿았다.
생각해 보면 나도, 글쓰기를 빤스처럼 입고 살고 있었다. 글감을 발견하거나 생각이 나면 시도 때도 없이 머릿속으로 글을 썼다. 글쓰기가 신이 날 때는 그걸 바로 써서 완성했고, 그렇지 못한 지금은 생각만으로 끝내는 차이점이 있을 뿐이다.
글쓰기 신을 다시 만나고 싶다. 그 신이 '어떤 일에 열성과 재미가 있어 퍽 좋아진 기분'이어도 좋고, '우주 만물과 인류를 창조하고 구원하는 존재'를 뜻하는 신이라면... 어, 상상만으로도 신나려고 한다. 역시 글쓰기 신을 만나려면 글을 써야만 하는 건가. 신나지 않을 때도 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