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짜중의 괴짜 그러나 미워할 수 없는 예술가
2019년 스페인 여행이 떠오른다. 지금은 일상이 되어버린 코로나와 마스크가 없던 시절의 스페인 여행은 행복 그 자체였다. 12월 겨울의 스페인은 생각보다 따뜻했고 테라스에 앉아 식사와 커피를 즐기는 여행객과 현지인들로 붐볐다. 크리스마스 조명과 오렌지나무가 어울리던 스페인에 도착하기 전, 필자가 가장 기대했던 곳은 다름아닌 달리의 고향 피게르스의 ‘달리 극장 미술관’이었다. 그만큼 살바도르 달리는 필자가 좋아하는 예술가 중 한명이다.
많은 이들이 이미 알고 있겠지만 살바도르 달리는 괴짜 중에 괴짜다. 미술사를 통틀어도 손에 꼽히는 괴짜. 사람 자체도, 그의 작품도 유별나다. 그의 성격과 인생이 너무나 드라마틱해서 그 이야기를 들으면 오히려 같은 인간으로서 마땅히 느낄 수 있는 동질감이나 공감대가 느껴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를 포함한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살바도르 달리. 이 글에서는 그런 달리의 예술과 삶 속 독특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꺼내보려고 한다. 여느 시트콤 주인공이나 만화 캐릭터 못지 않은 달리의 성격과 인생, 어떻게 태어나 어떻게 생을 마감했는지, 어떻게 초현실주의의 상징이 되었는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두려워했는지 말이다.
마침 달리의 국내 첫 회고전과 초현실주의 작품들의 전시가 11월 같은 날 시작된다고 하니 글을 읽고 직접 달리의 작품을 보러갈 수 있는 기회도 가지길 기대한다. (참고로 필자는 달리 회고전 티켓이 오픈되자마자 얼리버드로 구매했다.)
살바도르 달리는 1904년에 스페인 피게르스에서 태어났다. 달리가 태어나기 3년 전, 이미 살바도르 달리라는 이름의 아이가 있었는데 바로 21개월만에 사망한 달리의 형이었다. 첫째가 사망하고 9개월 뒤 우리가 아는 예술가 달리가 태어났다.
달리의 부모는 마치 첫째가 살아돌아왔다는 듯 둘째 이름을 형의 이름을 따 살바도르 달리로 지었고 첫째의 묘지에도 종종 달리를 데리고 갔다. 달리는 거기서 자신의 이름 ‘살바도르 달리’가 적힌 묘비를 바라봐야 했고, 이런 경험은 트라우마로 남게된다. 달리는 자신의 어린시절을 언급하며 자신이 정신 나간 행동을 하는 이유는 자신이 죽은 형이 아니라고 증명하기 위함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는 마지막까지도 ‘달리’다웠다. 달리는 말년에 후작 작위를 받아 부족한 것 없이 살았는데, 간호사와 대규모 인원이 그를 간호했고 침대에는 그들을 부르는 종이 있었다. 어느 날 달리가 침실에서 종을 하도 여러번 누른 나머지 합선이 됐다. 그의 침대에 불이 붙었고 달리는 치명적인 화상을 입었지만 치료 끝에 살아남았다.
하지만 이미 노쇠한 그는 1988년 마지막으로 병원에 실려갔다. 병원에서 그가 가장 첫번째로 요청한 건 자신의 죽음이 임박했다는 소식을 들을 수 있게 텔레비전을 갖다달라는 것이었다. 마지막까지도 자신이 텔레비전에 나오기를 기다렸던 달리는 1989년 1월에 생을 마감한다.
웬만한 사람은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관심이 고팠고 자기애가 뛰어났던 달리였다. 1930년대 뉴욕에서는 달리가 하도 유난을 떨어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 시절부터 지금까지 “달리=초현실주의”, “초현실주의=달리” 공식이 대중들에게 널리 통한다.
이처럼 우리는 달리를 ‘초현실주의자’로 분류한다. 초현실주의는 1920년대 초에 프랑스를 중심으로 나타난 미술사조로 1930년대 내내 활발하게 이어졌다. 달리는 1890년대생이 대부분인 초현실주의 그룹에서 몇 안되는 1900년대 생으로 어린 편이었다. 그러나 작은 고추가 맵다고, 달리는 곧이어 초현실주의의 상징이 된다.
초현실주의는 보통 ‘무의식’, ‘꿈’, ‘내면’, ‘비합리성’ 등의 단어로 설명된다. 한마디로 ‘말이 안되는 것’들이다. 달리의 대표작 <기억의 지속>(1931)에서 치즈처럼 흘러내리는 시계나 <비너스의 꿈>(1939)에서 등에 불이 붙은 채 걸어나가는 기린 두 마리, 가슴과 머리가 서랍으로 대체되고 머리 위에 가재가 얹혀있는 여성은 현실에서 볼 수 없다.
이런 초현실적인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그의 그림은 언뜻 보기에 자연스러워보인다. 적어도 호안 미로의 작품처럼 기호와 도형으로 가득찬 그림은 아니다. 달리는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장면을 전통적인 회화의 방식으로 구현한다.
<기억의 지속>의 배경으로 보이는 바위 언덕은 달리가 스페인 까다케스의 해안가에서 본 풍경인데 햇살이 비추는 부분, 물과 닿아있는 부분 등 디테일한 표현이 대단하다. 스스로 “손으로 그린 꿈 사진”이라 표현한 것처럼 꿈과 같은 비현실적인 풍경이 사진처럼 세밀하게 묘사되어있다.
'무의식', '꿈' 하면 떠오르는 프로이트의 이론은 실제로 초현실주의 탄생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으며 초현실주의 사조를 이해하는 데 바탕이 된다. 달리도 프로이트 예찬자였으며 그의 저서 “꿈의 해석”을 탐독했고 그의 작품에서도 꿈같은 장면들이 연출된다.
또한 초현실주의자들과 달리는 의식은 무의식의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고 무의식이 진정한 우리의 욕구, 우리의 진짜 모습을 담고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의 내면 깊숙이 자리하고 있는 어떤 것을 표현하는 것이 초현실주의자들의 목표였다.
책 ‘초현실주의자들의 은밀한 매력’(데즈먼드 모리스, 을유문화사)에서 저자 데즈먼드 모리스는 초현실주의 철학의 기본 규칙이 “분석하지 말고, 계획을 세우지 말고, 이성을 개입시키지 말고, 균형이나 아름다움을 추구하지 말고, 오로지 무의식이 이끄는 대로 그리는 것”, “가장 어둡고 가장 비합리적인 생각이 무의식에서 솟구쳐 나와 캔버스에 자신을 드러내도록 하는 것”이라고 한다.
살바도르 달리는 비합리적인 생각을 표현하는 동시에 매우 사실적이고 전통적인 표현방식을 택해 거기에서 오는 괴리감 또한 작품에 활용했다.
“나와 미치광이의 차이점은 나는 미치광이가 아니라는 점이다.”
필자는 달리의 이 말을 이렇게 해석했다. “나는 미치광이가 아니지만 미치광이같다.” 미치광이가 아니지만 미치광이 같았던 달리는 실제로 정신분열적인 방식으로 사물을 바라보는 “편집증적 비평 방법”을 개발했다. 이는 사물을 집중해서 바라보면서 처음에는 보지 못했던 새로운 형태를 발견하는 방법이다.
달리는 이 방법을 활용해 창작한 작품을 여러점 남겼는데 <나르시스의 변형>과 <보이지 않는 남자>가 그 중 하나다. <나르시스의 변형>을 보면 전경에 두 명의 사람 형체가 있다. 왼쪽은 사람이 한 쪽 무릎을 굽히고 물에 비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나르시스를 묘사한 것 같다. 반면에 동일한 모습인 줄 알았던 오른쪽 형체는 자세히 보니 엄지와 검지로 계란을 잡고 있고 깨진 계란 껍질 사이로 꽃 한송이가 피어나는 이미지다.
<보이지 않는 남자>에서도 화면을 집중해서 보고 있으면 마치 매직아이처럼 새로운 형상들이 보인다. 달리는 이렇게 화면을 계속해서 바라보고 그 사물이 변형되는 순간을 포착했다.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를 본 사람들이라면 영화 속 달리를 기억할 것이다. 짧은 분량이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긴 영화 속 달리는 날카로운 눈빛 때문에 완전히 제정신인 것 같지만 밑도 끝도 없이 “코뿔소”를 외쳐댄다.
실제로 살바도르 달리는 코뿔소의 뿔에 푹 빠져있었다. 달리의 트레이드 마크인 수염도 코뿔소의 뿔에서 영감을 받았다. 달리는 코뿔소의 뿔이 수학적으로 완벽한 곡선이자 자연에서 볼 수 있는 가장 완벽한 형태라고 여겼다. 영적인 영감을 얻기 위해 코뿔소 뿔을 잘라 자신의 머리에 달고 동물원에서 그림을 그렸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달리는 어찌나 코뿔소에 매료되어 있었던지 과거 명화들 속에서 숨은 코뿔소 찾기를 한다.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레이스를 뜨는 여인>이 어떻게 코뿔소 뿔로 보였는지 필자는 모를 일이지만 달리는 페르메이르의 그림에서 원뿔 모양들을 발견했고 “레이스메이커는 형태상으로 코뿔소의 뿔이다”라고 말하며 이 그림을 원뿔모양의 조각들로 분해하여 화폭에 옮긴다.
자신만만하고 때론 오만하기도 했던 달리는 대학시절 교수가 자신의 그림을 평가할 자격이 없다며 자퇴했고 후에는 “내가 피카소보다 낫다”고 떠들어댔다. 그러나 그런 달리라도 학창시절 좋아하던 화가가 있었는데, 바로 중세시대 화가 히에로니무스 보스다. 학창시절 망나니처럼 굴던 달리도 스페인의 프라도미술관 지하층에서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그림을 진지하게 연구하는 미술학도였다. 이제는 달리의 그림도 보스의 그림과 함께 프라도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다는 것이 참 재미있다.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그림은 이후 달리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밝은 그림이지만 어딘가 기괴하고, 어둡지만 생동감이 넘치는 화풍이 닮았다. 정신의학자 카를 구스타프 융은 히에로니무스 보스를 가리키며 “기괴함의 거장, 무의식의 발견자”라고 표현했는데 ‘무의식’이라는 키워드가 또다시 이 둘을 이어준다.
이 글을 쓰며 “나는 왜 달리를 좋아할까?”라는 질문에 스스로 답할 수 있었다. 필자는 달리같은 괴짜, 막무가내에 무모하고 반 쯤 미쳐있는 사람을 동경한다. 필자는 감성적이지만 분석적이고 몽상이 취미이나 현실적이다. 겁이 많고 이성이 자주 돌아오고 자기 검열이 심하다.
그래서 가끔은 머리가 아닌 마음이 즉, 의식이 아닌 무의식이 가는 대로 삶을 살아가고 싶은 충동이 올라온다. 하면 안되는 것들과 눈치 볼 일들이 가득한 세상에서 그 모든 걸 내려놓고 깊은 내면의 욕구와 열망을 표출하고 싶은 충동이다.
달리의 그림을 보고있자면 몽환적이고 환상적인, 그러나 금기시 된 공간에 한 발짝 발을 들인 것처럼 스산하고 때론 두렵기도 하다. 하지만 달리가 만들어 낸 초현실의 공간, 무의식의 세계로 그저 몸을 맡기고 빨려들어가고 싶어진다. 그게 살바도르 달리 작품의 매력이 아닐까한다.
*원문은 아트인사이트에 있습니다.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570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