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재정관
아들: 아빠, 궁금한 게 있는데... 물어봐도 돼요?
아버지: 그럼, 뭐든 물어봐.
아들: 우리 교회에서는 십일조를 꼭 드려야 한다고 하잖아요. 근데 친구 교회에서는 마음에 정한 대로 드리면 된다고 하더라고요. 누가 맞는 거예요?
아버지: 아, 그 질문. 사실 아빠도 네 나이 때 똑같은 고민을 했었어. 심지어 지금도 많은 어른들이 이 문제로 고민하고 있단다.
아들: 정말요? 그럼 정답이 뭐예요?
아버지: 음... 정답을 말하기 전에, 먼저 양쪽 입장을 들어볼까? 마치 법정에서 양쪽 변호사의 주장을 듣는 것처럼 말이야.
아들: 좋아요! 먼저 십일조를 꼭 드려야 한다는 쪽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아버지: 이 입장을 가진 사람들은 네 가지 근거를 들어.
첫째, 십일조는 모세의 율법보다 훨씬 전부터 있었다는 거야. 아브라함이 살았던 게 기원전 2000년쯤인데, 모세 율법은 그보다 600년이나 후에 나왔거든. 아브라함과 야곱은 율법이 없을 때도 자발적으로 십분의 일을 드렸어.
아들: 아, 그러니까 율법이 생기기 전부터 있던 원리라는 거네요?
아버지: 정확해. 둘째, 예수님도 십일조를 부정하지 않으셨다는 거야. 마태복음 23장 23절을 보면, 예수님이 바리새인들에게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한다"라고 말씀하셨거든.
아들: 그럼 예수님도 십일조를 드리라고 하신 건가요?
아버지: 적어도 십일조 자체를 나쁘다고 하지는 않으신 거지. 셋째는 말라기서의 축복 약속이야.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는 구절 있잖아.
아들: 아, 그 유명한 구절!
아버지: 마지막으로, 신약성경인 히브리서에서도 아브라함의 십일조를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는 점을 들어. 이게 신약 시대에도 여전히 중요하다는 증거라는 거지.
아들: 그럼 반대쪽 입장은 뭐예요?
아버지: 이쪽도 만만치 않은 근거들이 있어.
첫째, 십일조는 구약 시대에 레위 지파의 생계를 위한 율법 제도였다는 거야. 그런데 예수님이 오시면서 제사장 제도와 성전 제사가 완성되었잖아? 그러니까 그 제도를 유지하기 위한 십일조 '법'도 더 이상 문자 그대로 적용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지.
아들: 음... 시스템 자체가 바뀌었으니까 그에 따른 규칙도 바뀐다는 말이네요?
아버지: 맞아. 둘째, 그리고 이게 핵심인데, 신약성경 어디에도 교회 성도들에게 '10분의 1'이라는 구체적인 비율을 명령한 구절이 없어.
아들: 정말요? 하나도 없어요?
아버지: 응. 대신 고린도후서 9장 7절을 보면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라고 나와 있어. 자발성과 기쁨을 강조하는 거지.
아들: 그럼 각자 알아서 정하라는 거네요?
아버지: 그렇게 볼 수 있지.
아들: 아빠, 그래서 결론이 뭐예요? 도대체 뭐가 맞는 거예요?
아버지: (웃으며) 아빠가 생각하는 핵심은 이거야. 10%냐 아니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네가 물질을 대하는 태도가 중요한 거야.
아들: 무슨 말이에요?
아버지: 재미있는 사실을 알려줄까? 성경에서 믿음에 대한 구절은 215개, 구원에 관한 것은 218개야. 그런데 돈과 재정에 대한 구절은 무려 2,084개나 돼.
아들: 헐, 그렇게 많아요?
아버지: 그래. 예수님의 38개 비유 중에서도 16개가 돈 이야기야. 그만큼 돈 문제가 우리 신앙생활에서 중요하다는 뜻이지.
아들: 그럼 어떻게 해야 되는데요?
아버지: 아빠가 직접 실천하고 있는 걸 얘기해줄게. 아빠는 먼저 우리 가족이 생활하는 데 필요한 비용의 범위를 정했어.
아들: 범위요?
아버지: 응. 우리 몸에 불필요한 살이 찌는 이유가 뭘까?
아들: 과식이요?
아버지: 맞아. 마찬가지로 우리 영혼이 물질의 노예가 되지 않으려면, 생활에 필요한 물질의 범위를 정해야 해. 그 범위를 넘는 수입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곳에 쓰는 거지.
아들: 아빠는 실제로 어떻게 하고 있어요?
아버지: 아빠는 지금 컴패션을 통해 17명의 아동을 후원하고 있고, 2명의 선교사를 정기적으로 후원하고 있어. 물론 이건 교회 헌금과는 별개야.
아들: 와... 17명이나요? 많은데요?
아버지: 처음부터 이렇게 한 건 아니야. 한 명씩 늘려갔지. 솔직히 처음에는 무섭기도 했어. '계속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었고.
아들: 그런데 어떻게 계속하셨어요?
아버지: 끊임없이 하나님이 물질의 근원이심을 고백하면서, 돈이 주는 유혹을 뿌리쳤지. 쉽지는 않았어. 지금도 그래.
아들: 그럼 아빠는 십일조를 드리는 거예요, 안 드리는 거예요?
아버지: 좋은 질문이야. 아빠가 조심하려는 건 "10%만 드리면 된다"는 생각이야. 왜 조심해야 할까?
아들: 음... 잘 모르겠는데요?
아버지: 10%만 드리면 된다고 생각하면, 나머지 90%는 완전히 내 것이라는 착각에 빠질 수 있거든. 하지만 사실은 100% 다 하나님께서 주신 거잖아?
아들: 아, 그렇네요!
아버지: 십일조를 드리든, 그 이상을 드리든, 지금은 그보다 적게 드리든, 중요한 건 물질의 근원이 하나님께 있다는 네 고백이야. 그게 신앙고백인 거지.
아들: 그러니까 몇 퍼센트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내 마음가짐이 중요하다는 거네요?
아버지: 정확해! 예수님도 누가복음 6장 38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어. "남에게 주어라. 그리하면 하나님께서도 너희에게 주실 것이니, 되를 누르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후하게 되어서, 너희 품에 안겨 주실 것이다."
아들: 아빠, 그럼 제가 용돈을 받으면 어떻게 해야 해요?
아버지: (미소 지으며) 네가 스스로 생각해봐. 네 용돈이 어디서 온 건지, 그리고 그걸 어떻게 사용하고 싶은지 말이야. 아빠가 강요할 순 없어. 하지만 한 가지는 기억해.
아들: 뭔데요?
아버지: 우리가 물질을 흘려보낼 때, 하나님은 넘치도록 후하게 더 채워주신다는 거. 그리고 그렇게 하다 보면 결국 더 많은 물질을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용할 수 있게 될 거야.
아들: 알겠어요, 아빠. 생각해볼게요.
아버지: 그래, 천천히 생각해봐. 그리고 이런 질문을 하는 네가 아빠는 자랑스러워. 진지하게 신앙을 고민하고 있다는 증거니까.
아들: 고마워요, 아빠!
나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떤 재정원칙을 세웠는가?
나는 물질의 근원이 하나님이심을 인정하는가?
나는 수입의 몇 퍼센트를 흘려보내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