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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ree Sep 06. 2024

원숭이 모드

원숭이 모드


머릿속이 너무 어지러울 땐, 원숭이 모드를 가동한다. 원숭이가 된 것처럼, 그저 먹고 자고 씻는 것에만 신경 쓰는 삶. 나의 과거, 현재, 미래, 아주 먼 미래까지 걱정하는 것을 멈추는 삶. 책도 읽지 않고 글도 쓰지 않고 그 무엇도 시청하지 않고 그 무엇도 생각하지 않고 그저 가만히 있는 삶.

안타까운 건, 서너 번은 원숭이가 될 수 있었지만 그다음부터는 원숭이 상태에서도 걱정과 근심이 멈추질 않았다. 그저 우울한 원숭이가 되어 버렸다. 이래서 우울증이 무섭다는 건가. 

아니면 나란 사람 자체가 원래 그리도 걱정이 많은 것인가.

20대가 된 이후로 쭉 우울증에 걸려 있으니, '원래의 나'를 기억해 내기 힘들다. 

이렇게 괴로운 이유가 과연 병 때문인지, 타고난 내 성격 때문인지, 아니면 둘 다인지. 

아, 이러다가는 또 생각의 늪에 빠져버릴 것 같아서 멈추겠다. 그래도 가끔은 원숭이 모드를 켜는 것을 추천한다.


그 시기


처음 병원을 찾았던 게 가을에서 겨울 넘어가는 시기였어서 그런지, 매년 그 시기가 돌아오면 

나는 깊은 우울증에 빠졌다. "나 이제 정말 괜찮아! 다 나은 것 같아!" 선언을 해도, '그 시기'만 돌아오면 다시 반복되는 불안과, 공황과, 좌절과, 걱정과, 이 고통을 멈추기 위해 삶을 끝내자 싶은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한 해에 한 번씩은 푸닥거리를 했다. 지난봄쯤에는 목을 매기 위해 밧줄까지 샀다. 남들은 흐드러진 벚꽃을 즐기던 나날에, 나는 어두운 안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언제 실행할까'만 하루종일 고민했다. 어찌 되었든 이렇게 살아 숨 쉬며 글을 쓰고 있다니. 다만 하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요맘때가 '그 시기'가 머지않은 날들이라는 것. "나 정말 진짜 다 나았어!" 환희에 찼다가, 다시 까무룩 TV 전원 꺼지듯 시꺼멓게 가라앉으면 좌절감이 더 크다. '올해는 정말 다 나은 줄 알았는데. 언제까지 겪어야 하는 거지. 이 병에 끝은 있을까.' 나는 요즘 매우 조심스럽다.  자신을 면밀히 관찰한다. 우울해서 모든 포기해 버리고 싶은가? 혹은 지나치게 들뜨며 내가 원하면 뭐든 이룰 있다는 환희에 젖어 있는가? 의사 선생님이 하나라도 증세가 나타나면, 병원으로 달려오라고 하셨다. 나는 어김없이 돌아올 '그 시기'를 이번에도 버텨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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