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에는 늘 최선이었다고 생각했다.
'나름'이라는 구차한 조건을 달면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다.
학력고사를 치루던 고3시절이 그랬던 거 같고, 지나온 직장 생활이 그랬던 거 같고, 결혼 생활이나 육아 같은 것들 모두 '나름'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시 돌아보니 그 최선이라는 것들은 '나름'이라는 사족을 달 정도 밖에 힘을 쏟지 않다고 느껴졌다.
최선을 단어장에서 찾아봤다. '온 정성과 힘을 다함' 이라는 뜻이라고 사전에 적혀있다.
굳이 사전을 찾지 않아도 '온'의 뜻은 전부라는 걸 알고 있다.
그러니 최선은 나의 모든 정성과 힘을 다하는 일이다.
'나름'의 뜻은 '가지고 있는 방식이나 깜냥을 이르는 말'이라고 나온다.
그러니까 최선 앞에 '나름'이라는 사족을 단다는 것은, 겨우 내 능력 안에서 온 힘을 다했다는 것이다.
내 능력안에서 온 힘을 다한 것이 비난 받을 일은 아니다.
그런데 내 능력안에서의 최선은 좋은 결과와 연결되는 일이 적었다.
살아보니 일이 성사되거나, 누구에게 감동을 주거나, 무엇인가를 얻는 힘든 일들은 '나름 최선'의 기준을 뛰어 넘는 것들이었다. 내 능력 밖을 벗어나보고자 하는 것들이 그런 결과를 가져왔다.
광고대행사에서 일하면 일년에도 십수차례의 경쟁을 하게 된다.
이 경쟁에서 최선을 다하지 않는 회사는 없을 것이다. 다만 그 최선이 나름의 최선인지, '가지고 있는 방식이나 깜냥'을 넘어서는 최선인지는 회사들마다의 차이가 존재한다.
펜타클 역시 나름의 최선을 다했던 적이 있고 나름을 뛰어넘는 최선을 다했던 적이 있다.
대부분의 승리는 후자에서 나왔다고 생각한다.
나름을 뛰어넘는 최선을 위해 필요한 것은 기준점을 만드는 일이다.
좋은 전략, 좋은 크리에이티브 앞에 붙는 '좋다'는 기준은 모두가 다르다.
누군가에겐 좋지만 누군가에겐 별로인 기준의 간극들이 존재한다.
그래서 '좋다'는 기준점을 만들 때, 좋다라는 주관적 기준점이 아닌, 객관적 기준점의 수식어가 필요하다.
'누구나 좋아하는' 이라는 객관적 기준점이 수식하는순간, 나의 기준이 아닌 남들까지 만족시키는, 그러니까 높은 수준의 크리에이티브가 필요하다.
기준점을 높이는 일은 쉽지 않다. 하지만 적어도 이 광고 바닥에서 내가 만족하는 기준점을 맞추는 것으로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없다는 것은 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