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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리로 Feb 17. 2021

출생 순서에 따른 성격차이


딸 둘을 키우고 있다. 6살 첫째는 친정어머니를 쏙 빼닮았고, 3살 둘째는 남편을 많이 닮았는데 남편이 돌아가신 시어머니 얼굴을 하고 있으니 결국 둘째는 시어머니를 닮았다. 딸들이 같은 뱃속에서 태어났지만, 많이 다르게 생겼다는 말이다. 다르게 생긴 얼굴만큼 둘의 성격도 정 반대이다.


첫째는 매사가 조심스럽고 수줍음이 많으며 조용한 편이다. 반면, 둘째는 활발하고 사회성이 좋으며 때론 겁 없이 행동할 때가 많아 다치기도 잘한다. 서로 물려받은 유전자가 다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출생 순서에 따른 성품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주변에서도 그런 말들을 많이 해줬기 때문이다.


첫째는 신중하고 조심성이 많으며, 자기주장이 강한 반면, 둘째는 애교가 많고 눈치도 빠르며 이쁜 짓을 알아서 한다. 우리 애들도 그렇더라. 그게 첫째와 둘째 차이다. 다들 그렇게 말을 하면서 본인은 둘째라 성격이 좋다. 셋째면 얼마나 좋겠냐. 첫째 둘째한테 치여 어려서부터 생존방법을 몸으로 배웠기 때문에 사회성이 안 좋을 수 없다. 등등


남편과 나는 둘 다 첫째이다. 주변에서 하는 말을 듣다 보면, 첫째 즉 우리 둘은 둘째 이후에 태어난 아이들처럼 성격이 원만하고 온화한 것이 아니라 예민하고 자기중심적인 성격을 갖고 있는 것이다. 내 자신이 생각해도 크게 다른 것 같지 않아 은연중에 수긍하고 있었다. 지켜보고 있으면, 그런 성향이 더 눈에 잘 띄었다.


어느 날부터인가 남편이 퇴근을 일찍 하는 날이면 둘째가 “아빠~!”하면서 저 멀리서부터 뛰어가 새삼 반갑다는 듯이 반겨준다. 첫째는 더 어려서부터 그런 모습을 보여준 적이 거의 없었다. 잦은 야근과 회식으로 퇴근이 늦는 남편은 아이들과 자주 놀아 주지 못하기 때문에 첫째랑은 조금 서먹할 정도의 사이이다. 그러니 아빠가 일찍 들어와도 본체만체하거나 못 이기는 척 인사를 건네며 눈빛만 교환할 정도이다. 첫째에게는 서먹할 정도로 느껴지는 아빠에게 둘째는 온갖 애교를 부린다. 소리 지르며 달려가 꼭 안겨 눈웃음을 치며 놀이방으로 아빠를 끌고 간다. 남편은 둘째의 그 행동에 사르르 녹아버린다. 본인 얼굴을 꼭 닮은 조그마한 아이의 그런 행동은 모든 피로와 스트레스를 한 방에 날리고도 남는 활력소로 전혀 부족하지 않다.


아무리 둘째 행동이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정도로 이쁘다지만, 첫째보다 유난히 잘해주는 것도 아닌데 왜 저렇게 반겨 주는지 남편이 점점 의아(?)해하기 시작했다. 유전적인 요인이나 둘째의 성향으로만 치부하기에는 다른 이유가 있어 보였다. 남편과 아이들 특성에 대해 대화를 나누던 도중 둘째의 붙임성 있는 행동이 아빠에 대한 무한 사랑 때문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남편 자신이 골똘히 생각해도 본인은 그럴만한 행동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둘째의 과한 애정 표현은 아빠에 대한 정당한 대가가 아니라는 판단이다.


아빠에 대한 진심 어린 애정 표현이 아니라면 도대체 왜 그런 행동을 하는 걸까? 점점 우리의 대화는 둘째의 행동 원인이 애정 표현이라기보다는 애정을 갈구하는 또 다른 의사표현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즉, 아빠가 좋아하는 행동을 해야지만, 아빠가 자신을 한 번이라도 더 쳐다 봐 준다는 것을 눈치 빠른 둘째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아빠가 반갑고 좋아서라기보다 내가 조금이라도 더 이쁨을 받고 싶었기 때문에 그러한 행동들이 나왔던 것이다. 우리 어른의 입장에서는 이 이론이 더 합리적이었다. 남편은 둘째의 애정 넘치는 행동에 대한 이러한 분석에 대해 큰 배신감을 느꼈다. 진심 어린 아버지에 대한 사랑 표현이 아니라, 받고 싶은 사랑에 대한 조건부적이고 사전에 치밀하게 계산된 행동이었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바쁜 아빠가 왔는지 안 왔는지 관심도 없이 냉랭하게 반응하는 첫째의 행동이 아빠에 대한 서운한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이었다. 갑자기 아차 싶었다. 둘째의 사교성 높고 원만하며 애교 있는 행동들은 우리가 흔히 표현하듯 성격이 좋아서가 아니었던 것이다. 더 많은 관심과 사랑을 갈구하기 위해 주변과 상대방을 끊임없이 살피면서 내 행동을 계속해서 맞춰 나가고 있던 것이다. 갑자기 안쓰럽기 시작했다. 나를 중심으로 멋대로 내 편한 대로 살기보다는 타인을 계속 의식하면서 산다는 것이 얼마나 피곤한 삶인지 모르는 사람을 없을 것이다. 그 어린것이 그렇게 살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모르고 둘째를 보면서 애교 넘치는 성격 때문에 어디서나 이쁨  받을 것이라 생각하고 첫째보다 신경을 조금 더 못쓴 것이 미안했다. 더 많이 사랑해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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