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요리로 Mar 29. 2021

'남 탓'의 본능

  엄마가 갑자기 “빨리 와봐. 어머머 어서! 빨리!” 큰 소리로 호들갑을 떨며 나를 부른다. 무슨 큰일이라도 난 줄 알고 작성하던 서류를 급히 노트북에 저장하고, 달려 나가 보니 전기포트의 커피가 넘쳐 싱크대, 주방 바닥이 모두 커피물 바다가 되어 있었다.

  생각보다 큰일이 아니라 다행이다 싶어, 놀란 가슴 쓸어내고 걸레로 바닥을 닦으려는데 “어머, 이거 고장 난 거 아냐? 야! 너는 왜 커피를 사 와서 이런 사달이 나게 만드는 거야? 내가 언제 커피 마시고 싶다고 했어? 엄마는 내가 사 온 다 식은 아메리카노를 데운답시고, 그대로 전기포트에 쏟아 넣고 끓이다가 커피가 끓어 넘치자 놀란 마음에 그런 말씀을 쏟아 내신 거였다.

  순간, 너무 황당했다. 결국 이 상황이 다 내 탓이라는 거였다. 놀란 마음에 아무 말이나 내뱉으셨겠거니 하면서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는 그런 도량이 내게는 없으니 나도 할 말은 해야겠다. “전기 포트에 물외에는 어떤 것도 넣으면 안 된다고 사용설명서에 분명히 쓰여있었고, 나도 강조해서 말하지 않았었냐고? 어쩌고저쩌고... 되로 받고 말로 갚아 주었다. 그 뒤 대화는 상상에 맡기겠다.

  두 딸 중 올해 4살인 둘째는 아직 자기중심적 사고가 매우 강하다. 거기에 본인 나름의(?) 도덕적 잣대까지 매우 높으시다. “많이 먹으면 배탈 나지~ 딱 한 개만 먹는 거지~”, “여기에 버리면 안 되지~ 휴지통에 버려야지~”, 여기저기 다 참견하고 다니면서 자기보다 더 큰 사람들한테 잔소리를 하고 다니신다.

  그런 둘째가 먹는 물에 손을 넣고 휘젓고 있는 모습이 보여, “어~ 그러면 물속에 손에 있는 세균이 다 들어가는데 그러면 안되는데...” 한마디를 하면, 울먹울먹 하는 표정과 흐느끼는 목소리로 “너가 그랬잖아. 너가 나한테 화를 내잖아.” 잘못을 지적한 사람이 제일 나쁘다는 이론을 앞세워 세상 서럽게 울어 댄다.

  남 탓은 인간의 천성인 것이 분명하다. 아니 본성이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 이하면 스캔들’이라는 말처럼 어떠한 상황에서 자신에게 유리하게 해석하려는 자기 방어기제적인 기질이라고 해석할 수 있겠으나, 위 상황들은 적반하장 격의 남 탓 기술(?)을 보여준다. 뭐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이지만 말이다.

  직장이나 사회에서 정말 말이 안 통하는 사람들을 종종 만난다. 대화 자체가 피곤하다. 대화가 이어지는 기분이 아니라, 서로 다른 말을 하고 있으니 합의점 자체를 찾기가 힘들다. ‘모든 원인이 인간의 본성인 ‘남 탓’에 있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결국, 모든 분란의 원인은 ‘남 탓’이라는 인간의 원초적인 본성 때문이리라. 그럼 이런 유형의 모든 ‘분란’ 들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눈치 빠른 사람들은 벌써 알아차렸으리라... 그래 ‘내 탓’이 정답이다.

  모든 상황을 ‘남 탓’이라고 해석하는 본능을 이겨내고 ‘내 탓’이라는 초자아로 극복해보자. 물론, 너무 극단적으로 상황을 몰고 가 모두가 내 탓이라는 자괴감과 우울증에 빠지지는 말고, 초자아를 통해 옳고 그름을 정확하게 분별할 수 있는 식견을 갖추자는 뜻이다. 인간의 삶에서 이상적 목표를 향해 계속 성장하려는 자들에게 “내 탓”을 습관화하는 삶을 권유하고 싶다. 더욱 많은 사람들이 “내 탓”을 명심하고 살다 보면 분명 살기 좋은 세상이 올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정인아, 잊지 않을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