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CF는 왜 스타트업 Valuation에 맞지 않을까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가정은 늘어난다

by 이정훈 회계사

스타트업이 DCF로 기업가치를 산정하는 장면은 이제 낯설지 않다. 사업계획을 기반으로 재무모델을 만들고, 장기 현금흐름을 할인해 의미 있는 밸류를 도출한다. 계산 결과만 보면, 충분히 설득력 있어 보이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실제 투자 검토 과정에서 DCF는 대부분 결정 근거가 아니라 참고지표로 활용된다. 그 이유는 계산의 문제가 아니라, 불확실성과 가정의 구조에 있다.


초기 단계일수록 DCF에는 가정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스타트업의 가장 큰 특징은 아직 확정되지 않은 요소가 많다는 점이다. 사업모델, 고객군, 가격 구조, 비용 구조, 성장 속도까지 대부분이 가설의 영역에 있다. 이 상태에서 DCF를 만들기 위해서는, 자연스럽게 더 많은 가정을 쌓아야 한다.

- 매출이 언제부터 본격화되는지,
- 마진이 어느 시점에서 안정화되는지,
- 추가 자본 조달이 필요한지,
- 시장 경쟁이 어떻게 전개되는지.

단계가 이르면 이를수록, DCF는 계산이 아니라 가정의 집합에 가까워진다. 그리고 가정이 많아질수록, 모델의 결과는 정교해 보이지만 실제 신뢰도는 오히려 낮아진다.


불확실성이 높은 DCF는 투자자에게 ‘확신’이 아니라 ‘리스크’를 보여준다

실무에서 투자자가 DCF를 볼 때 가장 먼저 확인하는 것은 결과 값이 아니다. 어떤 가정들이 포함되어 있는지, 그리고 그 가정들이 언제 검증되는지를 본다.

초기 단계 스타트업의 DCF는 대부분 장기 가정이 포함되어있다. 이 경우 투자자는 계산 결과를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이렇게 해석한다.
“이 수치는 사업계획이 그대로 실행될 때의 최선의 시나리오다.”

즉, DCF는 기대치를 보여주지만, 동시에 그 기대치가 달성되지 않을 가능성도 함께 드러낸다. 이 때문에 투자자는 해당 DCF를 밸류의 근거가 아니라, 리스크 범위를 가늠하는 참고자료로 활용한다.


그래서 투자자는 DCF 결과를 ‘조건부’로 받아들인다

실제 투자 검토 과정에서, 사업계획을 기반으로 산출된 DCF를 그대로 밸류에 반영하는 경우는 드물다. 대신 투자자는 이렇게 대응한다.

“계획은 이해했다. 다만 이 계획이 실제로 달성되지 않을 경우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바로 Term Sheet의 구조로 이어진다. 필자가 투자 검토 후 Term Sheet를 제안했던 사례에서도, 사업계획이 충분히 공격적이거나 불확실성이 높은 경우에는, 그 리스크를 밸류에서 즉시 반영하기보다 구조적으로 대응하는 방식을 택했다.


사업계획 리스크는 밸류가 아니라 ‘지분 구조’로 조정된다

DCF상으로는 높은 기업가치가 도출되더라도, 투자자는 그 수치를 그대로 확정하지 않는다. 대신 사업계획이 달성되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 지분 희석이나 조건부 조항을 통해 리스크를 관리한다.

이는 DCF를 부정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DCF가 전제로 하는 사업계획을 인정하되, 그 전제가 현실화되지 않을 가능성까지 함께 반영하는 방식이다. 투자자 입장에서 보면, 이는 밸류를 깎는 행위가 아니라 불확실성을 구조로 번역하는 과정에 가깝다.

이 지점에서 많은 대표들이 오해를 한다. “DCF로는 이 밸류가 나오는데, 왜 조건이 붙는가”라고 느낀다. 하지만 투자자의 논리는 일관된다. 가정이 많은 만큼, 그 가정이 어긋났을 때의 대응 장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DCF의 역할은 ‘설득’이 아니라 ‘범위 설정’이다

결국 스타트업 Valuation에서 DCF의 역할은 명확하다.
기업가치를 확정하는 도구가 아니라, 가능한 범위를 보여주는 도구다.

DCF를 통해 이 회사가 어느 정도까지 성장할 수 있는지, 그 과정에서 어떤 가정들이 핵심인지가 드러난다. 투자자는 이를 바탕으로, 밸류·지분·조건을 종합적으로 설계한다. 이 과정에서 DCF는 단독으로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 항상 구조와 함께 해석된다.



다음 글에서는, 투자자들이 DCF보다 더 자주 참고하는 방식인 멀티플 Valuation이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 그리고 비교 대상 하나가 바뀌는 것만으로도 기업가치가 왜 크게 달라지는지를 다뤄보려 한다.
Valuation은 계산보다, 비교의 언어에 더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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