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심판은 환영하지만, AI 스트라이커는 사양합니다

우리가 여전히 인간의 헛발질에 열광하는 까닭

by 피노키오

요즘 어딜 가나 AI와 로봇 이야기뿐이다. 바둑판은 진작에 정복당했고, 이제는 AI가 소설을 쓰고 휴머노이드 로봇이 백덤블링을 하는 시대다. 밀리미터 단위의 오프사이드까지 잡아내는 반자동 판독 기술(SAOT)을 보고 있자면, 문득 이런 엉뚱한 상상이 머리를 스친다.


'만약 머지않은 미래에 메시의 드리블, 캉테의 심장, 호날두의 킥력을 완벽하게 코딩한 로봇 11명이 축구팀을 꾸린다면 어떨까?'


풍향과 공기 저항, 골키퍼의 미세한 위치 변화를 0.001초 만에 계산해 내는 슛 정확도 100%의 스트라이커. 90분 내내 지치지 않고 전속력으로 그라운드를 누비는 강철 체력. 기계처럼 오차 없이 패스를 주고받으며 매 경기 골망을 찢어놓는 이 완벽한 축구팀의 경기를 상상해 보자. 과연 우리는 밤잠을 설쳐가며 이 경기에 열광할 수 있을까?


단언컨대, 그 완벽한 로봇들의 경기는 세상에서 가장 지루한 90분이 될 것이다. 그것은 스포츠가 아니라 잘 짜여진 기계공학 박람회의 시연회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학생 선수로서 보냈던 약 4년간의 시간, 그 치열했던 그라운드의 공기를 나는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후반 80분을 넘어설 때면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고 허벅지 근육은 비명을 지른다. 땀에 흠뻑 젖은 푸른 유니폼이 천근만근 무겁게 느껴지는 그 한계 상황. 하지만 바로 그 끔찍한 고통 속에서도 기어이 한 발짝을 더 내딛고 스프린트를 해내는 인간의 처절함이 경기장의 온도를 펄펄 끓게 만든다.


우리가 스포츠에 미치는 이유는 선수들이 완벽한 기계여서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때로는 어이없는 패스 미스가 치명적인 위기를 부르고, 그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몸을 던지는 투박한 태클에 우리는 환호한다. 로봇의 차가운 알고리즘에는 존재하지 않는 인간의 '결핍'과 '불완전함', 그리고 이를 극복하려는 의지가 빚어내는 각본 없는 드라마. 그것이 바로 스포츠의 진짜 얼굴이다.


이는 비단 프로 무대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U-12 유소년 팀 아이들과 땀 흘리며 뒹굴어 보면 스포츠의 본질은 더욱 투명하게 보인다. 결정적인 찬스에서 헛발질을 하고 분해서 눈물을 뚝뚝 흘리던 아이가, 다음 경기에서 기어코 골을 넣고 벤치로 달려와 안길 때의 그 뭉클함. 완벽하게 세팅된 기계의 100번째 득점은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오직 서툴고 불완전한 인간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성장의 서사다.


스포츠 심리를 들여다볼수록 명확해지는 사실이 있다. 결국 스포츠는 철저히 '감정의 동기화'를 먹고산다는 것이다. 1994년 미국 월드컵 결승전, 당대 최고의 공격수였던 로베르토 바조는 승부차기에서 공을 허공으로 날려버린 후 고개를 푹 숙였다. 그 치명적인 실수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의 축구 팬들은 그의 굽은 어깨에 자신의 고단한 삶과 실패를 투영하며 함께 울었다. 페널티킥을 앞둔 키커의 떨리는 어깨, 극적인 결승골을 넣고 잔디밭에 미끄러지며 포효하는 스트라이커의 핏대. 우리는 그들이 흘리는 땀방울과 짠 눈물에 깊이 공명한다. 월드컵 결승전이라는 무대의 중압감을 느끼지 못하는 로봇의 화려한 개인기는 우리의 심장을 뛰게 하진 못한다.


물론 인공지능과 데이터 기술은 앞으로도 스포츠 산업의 풍경을 크게 바꿔놓을 것이다. 훈련은 더 정교해질 것이고 판정은 더 공정해질 것이다. 그러나 그라운드 위에서 달리고, 넘어지고, 다시 흙먼지를 털고 일어나는 주체는 끝내 뜨거운 피가 흐르는 '인간'이어야만 한다.


효율성과 무결점이 최고의 미덕으로 칭송받는 AI 시대. 어쩌면 스포츠 경기장이야말로, 인간의 뭉툭한 불완전함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고 박수 쳐줄 수 있는 인류의 마지막 낭만일지도 모르겠다. 100번 차서 100번 들어가는 기계의 슈팅보다, 수많은 실패 끝에 엉겁결에 터져 나온 인간의 우당탕탕 중거리 슛 하나가 우리를 더 미치게 만든다. 그것이 우리가 오늘도 리모컨을 들고 스포츠 채널을 트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