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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rofessor Sunny Jan 26. 2022

자식 됨을 기꺼이 받아들이기

가족에 대한 생각

오늘의  살기 위해 ‘나만 살기 바쁜 시절 너무 길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렇게  커리어에 집중하며 나를 위해 사는  같았지만,   스스로 좋은걸 챙겨주고 챙겨 먹고 하는 여유 시간도 없는 채로 눈앞에 주어진 일들에 묻혀 허덕이는 시간만 많았다는 것이다.


당연하게도 이런 정신없는 시간에는 주변의 중요한 사람을 돌볼 시간이 극히 드물다. 그래도 어린 아들의 성장과 생존이 나에게 전적으로 달려 있는지라, 아들의 육아는 무조건적으로 나의 to-do리스트에 들어가 있다.  


나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점 신 과일은 찾지 않게 됐다. 그래도 아들을 먹이겠다고 귤, 오렌지를 깐다. 한국 귤은 많이 까고 나면 손이 누렇게 반면, 미국 귤은 농약이 많아서 인지 아니면 산도가 높아서인지, 까고 나면 푸석푸석한  하얀 가루가 손에 잔뜩 묻어있다. 남편은 그 느낌이 싫다고, 본인이 귤을 좋아하면서도 마음 놓고 먹지는 않는다.


아들에게 먹여보겠다고 귤을 까면서 드는 생각은, 안타깝게도 나를 이렇게 챙겨주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나도 나 스스로에게- 무지 인색하게- 귤을 잘 까주지 않는다. 헛웃음이 나면서 내 손에게 말을 걸어본다. 내 것도 까라고. 나도 비타민 좀 먹자.


재작년 한국에 갔을 때, 부모님과 해물칼국수를 먹은 적이 있다. 일흔이 넘은 우리 아버지는 내 건너편에 앉아 그릇에 많은 양의 조개와 홍합을 담아와 일일이 그것들을 까서 나에게 밀어주었다. 별말 않고 받아 정말 맛있게 먹었다. 며칠 후에는 중국집에서 엄마랑 팔보채를 배달시켜 먹었다. 둘이 그 큰 접시를 가운데 두고 앉아서 먹는데, 엄마는 내가 좋아하는 오징어와 낙지를 골라 잔뜩 내 앞으로 밀어주었다. 나는 또 군말 없이 냠냠 먹었다. 내 부모의 잔잔한 자식 사랑이  느껴졌다.  마흔이 넘은 자녀에게도 늘 챙겨주는 ‘부모’라는 존재가 있음이, 한동안 챙김을 당하지 못해 온 나에게 감동적인 시간이었다.


또 이만큼 나이가 들어보니, 자식 됨의 도리를 어느 정도 지켜야 한다는 의무감이 들기도 한다. 요새 쓰는 글에는 어쩌다 보니 ‘기승전 음식’으로 끝나고 마는데,  부모가 주는 음식을 자식이 맛있게 먹는 모습으로 간단하게 보은 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내가 자식을 키우며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군말 없이 나를 위해 엄마 아빠가 주는 음식을 맛있게, 감사하게 먹었다. 나는 오랜 타지 생활을 하게 되면서 부모와 보내는 시간이 나의 다른 자매보다 적었다. 내가 엄마 아빠에게 자식으로 해줄 수 있는 게 별로 없다는 말도 되겠다. 십 수년을 떨어져 살아도 내가 뭘 좋아하는지를 정확하게 기억하고 챙겨주는 나의 부모에게, ‘챙김을 당함’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그 시간을 즐김으로써 효도를 한번 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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