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는 더 빨리, 누군가는 더 천천히 달린다.
어떤 이는 출발선에서 주저앉고,
어떤 이는 이미 결승선을 통과한 듯한 표정으로 웃는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공통된 사실이 있다.
우리는 모두 달리고 있다는 것.
어릴 적엔 그렇게 생각했다.
“열심히 달리면 언젠간 목적지에 도착하겠지.”
그래서 나는 쉬지 않았다. 뒤처질까 봐,
나만 멈춰 있으면 세상이 나를 잊을까 봐.
숨을 끝까지 몰아붙이며, 속도를 믿으며,
계기판의 숫자로 나를 증명하려 했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알게 됐다.
달리다 보면 목적지는 점점 멀어지고,
결국 눈앞에 남는 건 내 발밑뿐이라는 걸.
그때 비로소 깨달았다.
삶은 결승선을 향한 경기라기보다,
멈추지 않기 위한 여정이라는 것을.
달리다 보면 누구나 숨이 찬다.
때로는 넘어지고, 때로는 길을 잃는다.
그럴 땐 잠시 멈춰도 괜찮다.
멈춘다고 해서 달리기를 포기한 게 아니다.
오히려 그 멈춤 속에서
다시 달릴 이유가 태어난다.
멈춤은 후퇴가 아니라 호흡이다.
호흡은 패배가 아니라 준비다.
나는 종종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지금 어디를 향해 달리고 있는가?”
“누구를 위해 달리고 있는가?”
그리고 대답한다.
“이유는 몰라도, 멈추지 않기 위해서.”
삶은 완벽한 이해로 움직이지 않는다.
때론 그저 ‘살아야 하니까’라는
한 줄짜리 이유만으로 이어지는 긴 숨이다.
그 숨이 끊기지 않도록
오늘의 나를 어제와 다르게 세운다.
달리기의 본질은 해설이 아니라 지속이니까.
세상은 종종 말한다.
“남들보다 앞서야 한다.” “늦으면 실패다.”
하지만 인생은 경주가 아니다.
우리가 달리는 이유는 경쟁이 아니라,
존재를 증명하기 위한 것이다.
조금 늦게 달려도 된다.
잠시 쉬어가도 된다.
중요한 건 끝까지 자신답게 달리는 일이다.
언제부턴가 삶이 승리와 패배,
두 가지로만 나뉘는 것처럼 보였다.
그 과정에서 고통을 느낄 틈도 없이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달리기만 했다.
그렇게 달리고, 또 달리고, 또 달렸다.
가끔은 이겼고, 가끔은 졌다.
어쩌다 한 번 넘어졌다고
모든 게 끝난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희망조차 보이지 않는 밤도 있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이 삶이 결과로만 나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과정을 살아간다.
그래서 때로는 이기고, 때로는 지고,
꿈을 꾸다가도 포기하고,
무너졌다가도 다시 일어선다.
힘든 날이 있고, 괜찮은 날이 있다.
그 굴곡을 타며 흔들리는 곡선이
결국 삶의 심전도다.
일직선만 남은 심전도는 살아 있지 않다.
흔들리는 선이야말로 생의 증거다.
나는 브런치에 글을 쓰면서 수없이 의심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성과 앞에서
“내가 틀렸나”라는 의심이 자라날 때면
쓰던 문장을 덮고, 눈을 감고,
의심이 잦아들 때까지 숨을 고른다.
책을 냈지만 “내 삶은 무엇이 달라졌는가”
스스로를 의심하는 밤이면
다음 소설의 첫 페이지로 돌아가
처음의 다짐을 다시 읽는다.
지인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며
내가 왜 쓰기 시작했는지,
그 조용한 출발선을 다시 떠올린다.
나는 여전히 모른다.
이 길의 끝에 무엇이 있을지.
하지만 한 가지는 안다.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향하는 길은 험난하고 외롭다.
그래서 나는 묵묵히 버티며
오늘도 같은 일을 반복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변화도 없고,
버티지 않으면 주저앉을 뿐이니까.
단단하게 뿌리를 내린 채
바람이 잠잠해질 때를 기다린다.
뿌리는 겉으로 보이지 않지만
달리기의 모든 체중은 그 아래에서 견딘다.
세상이 정한 속도에 맞추려 애쓸수록
나의 리듬은 깨져 간다.
결국 내가 나를 잃는 순간은
멈춘 때가 아니라,
남의 속도로 달릴 때다.
나는 나의 박자로 내 발을 내딛는다.
빠르지 않아도, 느리지 않아도,
그저 맞는 리듬으로.
달리다 보면, 함께 달리던 사람들도
하나둘 사라진다.
누군가는 앞서 나가고,
누군가는 다른 길로 빠져간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나는 홀로 남는다.
그 고요한 시간에 비로소 안다.
달리기의 본질은 고독 속에서 완성된다는 것을.
외로움은 두렵지만
그건 동시에 ‘나 자신과 만나는 시간’이다.
그 시간 안에서 우리는
내 속도, 내 리듬, 내 숨결을 배운다.
세상의 기준 아닌 나의 호흡으로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삶은 기록을 세우는 일이 아니다.
메달도 트로피도 필요 없다.
결승점이 어디인지 몰라도
달리며 보이는 풍경들,
뺨을 스치는 바람, 발목에 걸린 그림자,
오전의 햇살, 오후의 피로,
저녁의 후회와 밤의 다짐.
그 모든 사소한 감각들이
결국 삶의 조각이 된다.
가끔 달리기를 멈추고 뒤를 돌아본다.
그 길 위에는
넘어진 흔적, 누군가의 발자국,
그리고 나의 그림자가 겹쳐 있다.
나는 그 그림자를 보며 중얼거린다.
“그래도, 꽤 멀리 왔구나.”
그 한마디면 충분하다.
삶의 의미는 결승선이 아니라,
그 길 위에서 나를 잃지 않은 시간들에 있다.
길을 잘못 들면 돌아가면 된다.
잠시 쉬었다 가도 된다.
달리기를 멈춘다고 해서
삶이 멈추는 건 아니다.
달리기의 본질은 속도가 아니라 지속이다.
나는 더 이상 완벽한 길을 찾지 않는다.
비틀리고 흔들리더라도
내 발바닥이 기억한 길이 내 길이다.
누군가는 말하겠지.
“너는 너무 느리다.”
괜찮다. 이 속도는 나의 것이다.
달리기란 원래 그런 것이다.
누구의 방식도 아닌,
내가 정한 리듬으로 이어지는 것.
때로는 길이 없어도 달려야 한다.
그건 무모함이 아니라 용기다.
확신이 없어도 한 발 내딛는 일,
결과를 몰라도 시작하는 일.
삶은 언제나 그 한 걸음에서 다시 시작된다.
이겨도 지어도,
박수 속에서도 야유 속에서도,
우리는 다시 출발선으로 돌아와
끈을 묶고 숨을 들이마신다.
그리고 한 발. 또 한 발.
언제부턴가 삶이 승·패로만 구획되는 것을 거부한다.
나는 과정을 산다.
넘어지면 아프다고 말하고,
일어나면 다행이라 말한다.
오늘이 전부라고 말하기엔
내일의 바람이 아까워서,
지금이 가장 아름다운 시기라고 믿으며 달린다.
나를 지지하는 이가 없더라도,
적어도 나 하나만큼은
끝끝내 나를 지지하기로 한다.
인생은 한 번이니까.
삶은 달리기다.
결승점은 없다.
그저 달리며 마주치는 수많은 순간들이
삶의 전부다.
우리는 모두 달리고 있다.
서로 다른 방향으로, 서로 다른 이유로.
그러나 모두 같은 바람 속을 지나고 있다.
달리다가 숨이 차면 잠시 멈춰도 된다.
다시 달릴 힘이 생기면 또 달리면 된다.
중요한 건 멈추지 않는 것이다.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끝내, 나의 리듬으로 완주하는 것이다.
오늘도 나는 달린다.
누구의 속도에도 맞추지 않고,
누구의 결승선에도 휘둘리지 않으며.
지금 이 길 위에
나의 발자국이 남아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나는 여전히 달리고 있다.
그리고 그게 살아 있다는 증거다.
『마주한 세상은 생각과 다르더라』를 마치며
처음 이 연재를 열며
나는 ‘프롤로그 끄적끄적’에서 고백했다.
화려한 문장을 잘 쓰고 싶은 욕망보다,
조용히 스며드는 한 줄을 남기고 싶었다고.
그 한 줄이 누군가의 마음속에서
작은 파문이 되기를 바랐다고.
그 마음은 마지막 장을 닫는 지금까지 변하지 않았다.
시간은 야속했고(2장),
우리는 늘 타인의 시선에 비용을 지불하며(3장)
겹겹이 쌓인 가면 속에서 진짜 얼굴을 잃곤 했다(4장).
사회에 편입되는 과정(5장)은 성숙을 의미하면서도,
종종 관계를 ‘유대’가 아닌
‘목적’으로 착각하게 만들었다.
인연은 득이 될 수도, 독이 될 수도 있기에(6장)
한 걸음 물러서 농도를 가늠하는 지혜가 필요했다.
행복은 상대적이었고 슬픔은 절대적이었다(7장).
비교가 행복을 갉아먹는다는 사실을 뒤늦게 배웠다.
배려는 뒷전이 되었고(8장),
모순은 품격의 얼굴을 하고 나타났으며(9장),
외모라는 가벼운 잣대가
사람의 무게를 좌우하기도 했다(10장).
차별은 거창한 담론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무의식에서
은근히 자라나는 부끄러운 그림자였고(11장),
존중은 ‘옳음’ 이전에
‘들을 준비’였다는 걸 깨달았다(12장).
우리는 집단의 논리와 구조를 탓했지만(13장),
결국 그 구조는 우리의 타성에 기댄 채 유지되기도 했다.
너무 똑똑해진 시대 앞에서
나는 ‘멍청해지고 싶다’고 썼다(14장).
더 많이 아는 대신,
더 깊이 느끼고, 더 천천히 살아보자고.
삶은 객관식이 아니라 주관식이었고(15장),
정답은 바깥에서 채점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내 삶에 써 내려간 문장으로 증명되었다.
세상은 변하지 않았다(16장).
변한 건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초점이었고,
그래서 결국 우리는 달리는 법을 배웠다(17장).
이 책은 거대한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
다만, 시간을 건너며 조금씩 선명해진 문장들을 남긴다.
시간을 탓하며 살지 말 것. 야속함은 늘 존재하지만,
그 야속함 속에서도 우리는 서로를 부르며 자라난다.
시선을 관리하느라 나를 잃지 말 것.
인정은 외부에서 오지만, 존재의 납득은 내 안에서만 가능하다.
가면을 쓰되, 가면이 얼굴이 되지는 않게 할 것.
보호막과 위장은 다르다.
관계는 목적이 아닌 유대로 엮을 것.
목적만 남은 관계는 오래 버티지 못한다.
인연의 농도를 볼 것. 빠르게 가까워지는 만큼 멀어질 수도 있다.
행복은 비교의 함수가 아니다.
내 삶이 선택한 리듬을 의심 없이 사랑할 것.
배려와 존중을 말하기 전에, 먼저 듣는 자세를 배울 것.
집단의 온도에 휩쓸리지 말고, 내가 책임질 수 있는 말과 침묵을 가질 것.
때로는 멍청해질 용기를 낼 것.
모든 것을 아는 태도는 마음을 닫는 가장 세련된 방식이다.
주관식의 삶을 살 것.
틀릴 수 있지만, 적어도 그 답은 나의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멈추지 않을 것.
결과가 아닌 지속으로, 속도가 아닌 호흡으로.
돌아보면, 나는 종종 무너졌고 종종 서툴렀다.
그러나 그 서툼이 있었기에 문장이 생겼고,
그 무너짐 덕분에 다시 일어서는 법을 배웠다.
글을 쓰는 일은 대답을 내는 일이 아니라
질문을 붙들고 버티는 일이었다.
버티는 동안, 마음은 조금 더 단단해지고,
세상의 소음은 조금 더 잔잔해졌다.
이제 책을 덮는 일만 남았다.
하지만 달리기는 끝나지 않는다.
우리는 각자의 속도로, 각자의 바람 속을 지나며
다음 문장을 향해 다시 한 걸음을 뗄 것이다.
어느 날 아주 먼 곳에서
우리가 같은 페이지를 펼쳐 들고
서로 다른 방식으로
같은 문장을 사랑했음을 알게 된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오늘의 나는 이렇게 적는다.
“정답 대신, 나의 답으로 달렸다.”
그리고 그 기록을 삶이라 부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