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퇴직 후에도 매일 출근한다

직장생활

by 작은청지기


따스한 봄볕이 한가득 내려 쬐는 따뜻하고 행복한 금요일입니다. 퇴근 시간에 맞춰 장애인택시를 호출했습니다. 퇴근길에 차창 밖에서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벚꽃을 보며 살랑이는 봄바람을 느끼고 있자니, 문득 제 인생의 굽이굽이 지나온 시간들이 한 편의 영화처럼 스쳐 지나갑니다.


132cm의 청년, 기적의 출근길을 열다


1990년, 매서운 겨울바람이 옷깃을 파고들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지방에서 갓 상경한 132cm, 40kg의 척추 장애인 청년이 서울의 한 기업 전산실 문을 두드렸죠. 회계학을 전공한 제가 낯선 전산실에 배정되었으니, 입사 초기 키보드 위를 맴돌던 제 손끝이 얼마나 막막하게 떨렸을지는 짐작이 가실 겁니다.


훗날 들은 이야기지만, 회사에서도 저를 채용하기까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참 많은 고민과 격론이 오갔다고 하더군요. 그 불안과 기대가 교차하던 공기를 뚫고 시작된 직장 생활이 어느덧 33년이라는 세월로 켜켜이 쌓였습니다.


저를 잘 아는 사람들은 이 모든 시간들을 '기적'이라고 부릅니다. 수많은 우여곡절이 있었고, 해가 갈수록 삐걱거리는 몸집 탓에 깊은 한숨을 쉬며 '이제 그만두어야 하나' 수백 번 고민했던 밤들이 있었으니까요.


"여보, 솔직히 말하면 당신이 60살까지 내 곁에 살아있을 줄도 몰랐어.
그런데 정년퇴직이라니, 우리 남편 진짜 대단해. 완전 인간 승리야!"


정년퇴직일을 앞두고 아내가 제 손을 꼭 잡으며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건넸던 이 말에, 참았던 눈물이 핑 돌며 콧잔등이 시큰해졌던 기억이 납니다. 그 사이 품 안의 아이 같던 두 아들은 훌쩍 자라 어엿한 직장인과 대학생이 되었네요.


마침표가 아닌 쉼표, 그리고 가벼워진 어깨


저는 정년퇴직일 2년 전부터 휴대폰 달력에 '회사 졸업 일자'를 디데이로 설정해 두었습니다. 숫자가 줄어드는 것을 볼 때마다 마음이 조급해지기도 했지만, 2년이라는 시간은 야속하리만치 훌쩍 지나 결국 그날이 오고야 말더군요.


정년퇴임 날, 이미 다른 회사로 떠난 옛 동료가 예쁜 프리지어 꽃다발을 안겨주었습니다. 코끝을 맴도는 달콤하고 짙은 꽃향기를 맡으며 생각했죠. '곁에 있는 사람보다 떠난 사람들이 나를 더 기억해 주는구나.' 가슴 뭉클한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짐을 챙기던 날은 조금 멋쩍기도 했습니다. 드라마 속 주인공들은 가슴 가득 커다란 종이 상자를 안고 묵직하게 회사를 떠나던데, 33년을 일한 제 자리에 남은 짐은 작은 배낭 하나에 쏙 들어갈 만큼 단출했거든요.


그리고 다시 2년이 흘렀습니다. 저는 여전히 이 회사로 출근하고 있습니다.


회사의 제안으로 계약직이라는 새로운 명찰을 달고, 쉼 없이 2년째 같은 자리에 앉아있네요. 서류상의 신분만 바뀌었을 뿐, 모니터 너머의 업무도, 익숙한 출근길 풍경도, 통장에 찍히는 월급도 그대로입니다. 하지만 제 마음속 풍경은 몰라보게 달라졌습니다.


가장 큰 변화는 '유한함이 주는 홀가분함'입니다. 다닐 수 있는 시간이 한정되어 있다는 사실이 역설적으로 마음의 짐을 벗겨주었습니다. 1년에 두 번씩 부담스럽던 성과 평가가 사라지니, 승진이나 연봉을 향한 비교의식도 봄눈 녹듯 사라졌죠. 물론 열심히 한 일에 대해 더 이상 평가받지 않는다는 섭섭함이 아주 없진 않지만, 그 자리를 채운 것은 온전한 '여유'와 '감사'입니다.


국민연금 의무 납부 기한이 지나 급여 명세서에서 납부 내역이 지워진 것을 확인했을 때의 그 묘한 기분이란! 이전에는 회사에 대한 기대가 컸기에 그만큼 실망도 스트레스도 무거웠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저의 젊음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이 공간에 대한 고마운 마음뿐입니다. 제가 떠난 뒤에도 후배들이 조금 더 편하게 일할 수 있도록, 남은 제 시간들을 징검다리처럼 내어주고 싶다는 간절함이 매일의 출근길을 채웁니다.


나의 전반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체력이 예전 같지 않아 오후 5시 정각이 되면 칼같이 퇴근을 준비합니다. 제가 아파서 자리를 비우면 동료들이 얼마나 고생할지 알기에, 제 한계를 스스로 명확히 긋고 민폐를 줄이려는 저만의 생존 법칙이랄까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다 보니 주말에는 집 밖을 나설 엄두조차 내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제가 이 피곤한 출근길을 멈추지 않는 이유는 하나입니다.

바로 그 피곤함을 덮고도 남을 벅찬 '보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에너지 넘치는 젊은 후배들과 웃으며 일하는 공기가 좋고, 아버지 벌인 제가 아직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눈물 나게 행복합니다.


정년 후의 직장 생활은 제게 축구 경기의 '추가 시간(injury time)'과도 같습니다. 인생의 전반전이 끝나고 후반전으로 넘어가기 전, 감독의 통제도 룰의 압박도 없이 온전히 축구를 즐기는 마법 같은 덤의 시간. 숨이 턱턱 차오르고, 24시간 산소줄에 의지할 만큼 연약한 존재지만, 저는 여전히 필드 위를 달리고 있습니다.


기회가 허락하는 한, 저는 제가 사랑하는 이 일터에서 후배들과 함께 계속 땀을 흘릴 생각입니다. 진짜 일의 보람을, 이 짜릿한 삶의 기쁨을 비로소 제대로 맛보았으니까요.




정년퇴직을 하면 브런치 독자님들과 제대로 소통해야지 생각했는데 예상치 않게 아직 현업에 있다 보니 체력이 여의치 않아 자주 글을 올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팔로워 해주신 분들에게도 죄송하고 '좋아요'를 눌러주신 분들께도 죄송합니다. 인저리 타임이 끝나면 자주 찾아뵙겠습니다. 그동안 모두 모두 건강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