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받고 싶은 투병생활

어떤 병부터 투병이란 단어를 써도 될까?

by 홍련

투병 鬪病

_병을 고치려고 병과 싸움


왠지 투병이란 단어는 중대한 병에만 써야할 것 같다. 왠지 이름만 들으면 알 수 있는 굵직한 병, 입원해있는 모습. 등이 자연스레 상상된다. 그보다 작은 병(?)으로 투병이란 단어를 쓰면 왠지 그 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에게 기만행위가 되는 것 같달까. 그런 거창한 단어를 스스로에게 써보기 시작한 건 얼마 되지 않는다.


나는 기능성 위장장애를 갖고 있다. 사실 말이 거창하지, 대학병원에 가도 '이유를 알 수 없으니 너가 알아서 해라' 라는 속뜻을 가진 진단명이며 기껏해야 소화제나 신경안정제를 소화시켜주는 방법밖에 없다. 대학병원에서 진단 결과를 기다릴 때는 제발 어떤 시원한 병명이 나오기를 기원했을 정도이다.


첫 시작은 사소했다. 워낙 마르고 허약한 탓에 헬스를 시작했다. 살을 찌우면 건강해질까 싶어 근력운동 후 처음으로 단백질보충제를 먹어보기 시작했다. 워낙 새벽 늦게 자기에 밤 10시, 11시쯤 단백질 보충제를 먹고 제대로 소화시키지 않고 얼마 안돼서 자서였을까. 아침에 난생처음으로 목에서 신맛이 느껴졌다. 역류라는 개념도 몰라서 감기가 걸렸나? 싶었다. 역류성 식도염. 흔히들 걸린다는 질병이었지만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PPI(식도염 치료제- 위산억제제)를 먹어도 한달이상 낫지 않아 PPI를 또 처방받고, 또 처방받고 2-3개월 먹기시작한 그때부터 거의 6년동안 낫지 않았다.


사실 이런 일대기를 시원하게 어딘가에 써본적이 없다. 기껏해야 차도를 일기장에 적는 정도. 주변에 절대로 내가 환자라는 정체성을 강화하거나 보여주고 싶지 않고, 스스로 이런 병에 갇혀있고 싶지도 않았다. 특히나 이 병은 신경쓰지 않아야 증상이 완화되는 병이다. 이렇게 스스로 분석하고 난 아프다. 라는 생각에 갇혀있으면 더 악화될 것이라 생각했다. 매일 아침 새롭게 힘을 내야 했다. 증상에 신경쓰지 않고, 먹고 싶지 않아도 위산이 규칙적으로 나오게 하기 위해, 또 에너지를 내기 위해 매끼를 먹었다. 매 소화는 수동이다.

남들은 자연스레 되는 소화를 시키기 위해 매번 매시간마다 애를 써야했고, 몸에는 거대한 짐을 하나 안고 사는 기분이었다. 쉽게 말하면, 가끔 일반인들이 체한 것 같다고, 병원을 간다거나 약을 사먹는 그 언짢고 배가 불편한 그 기분을 자는 시간 빼고 매일 느낀다고 보면 된다.


그렇게 스스로한테까지 '괜찮아. 신경쓰지말자.' 라고 세뇌하며 살다가 이게 투병이 아니면 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말그대로 나를 포함한 기능성 위장장애 환자들은 매일매일을 싸우고 있다. 제일 유명한 위장카페 환자들은 10만명이다. 앞으로 기회가 되면 더 풀어보겠지만, 잔잔한 매일매일의 고통과 더불어 치료의 과정에서 부작용 등으로 죽을 것 같은 고비를 겪은 적도 많았다. 먹는 것과 결부되어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창구도 제한적이고, 술자리는 커녕 식사자리까지 신경써야 하니 사회생활도 장애물이 많았다. 또 장에는 세로토닌 등 모든 호르몬(?)이 연결되어있다. 365일 장 상태가 안좋으니 아무리 긍정적인 생각을 하려 해도 몸이 자체적으로 우울을 만들어낸다.


요새 치료받고 있는 방식은 꽤나 효과가 있는 것 같기도 하다. 6년 정도 되니 안해본게 정말 없어서 이것도 일희일비하지 않으려, 기대를 자연스럽게 안하게 된다. 그럼에도 투병이란 단어를 이제 나에게 쓰고 싶은 이유는 따로 있다. 난 그동안 건강한 일반인인척 하기 위해 내 삶에 거의 80%를 차지했던 이 병을 사람들과의 대화에서도 배제해왔다. 사실상 내가 갖고 있는 취미들도, 습관들도, 음식취향까지 전부 이 병의 치료를 중심으로 바뀌어버렸지만 대화에서 그 이유들을 말할 때는 뭉뚱그려 말할 뿐이었다. 남들이 보기에 정말 일반인처럼 열심히 살아왔다. 나조차도 난 환자가 아니야. 라고 세뇌했다. 그렇게 해야 나아지는 병이니까.


그치만 부작용은 있었다. 내 인생의 80%를 차지하고 있는 병과 싸우기 위해 난 정말 남들보다 (물론 나보다 더한 고충을 갖고 있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건강에 이상이 없는 대부분의 일반적인 또래를 상정하고 싶다.) 호수 밑 오리의 발버둥처럼 두배로 힘든 삶을 살아왔다. 돈도, 시간도, 에너지도 말이다. 그건 부정할 수 없는 객관적인 사실이다. 근데 나는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느리거나 부족한 건강외에 다른 분야가 생기면 똑같은 잣대를 내밀며 스스로를 채찍질해왔다. 지금 남들만큼 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엄청난데 말이다. 겉으로 티나지 않게 웃으며 살기에 가까운 사람이 그냥 나의 병을 흔한 예민한 사회인의 소화불량으로 치부하는 듯한 말이 비수로 다가올 때가 많다.


남들한테 전부 이해받을 순 없지만, 내가 나의 싸움을 이해해주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보면 자기연민이 심한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고, 혼자만 어려움을 가진 사람처럼 스스로 생각한다고 보일 수도 있다. 병에 부심이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근데 인정한다! 난 그동안 아팠던 걸 인정받고 싶다. 그동안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얼마나 심한 고통들을 극복하며 살아왔는지, 그 무수한 순간들을 견뎌왔는지 생색내고 부심을 부리고 싶다. 환자들의 마음은 이렇다. 아프다고 과하게 특이한 대우를 하는 것도, 그렇다고 내가 한 노력과 고통들을 부정받고 유토피아적으로 괜찮을거야~ 하는 것은 가볍게 대해지는 것 같아서 싫다. 특히나 겉으로 티가 안나는 환자들은 더욱 그렇다.


지금까지 이런 환자로서의 이야기들을 의사선생님말고 길게 해본 적은 없는 것 같다. 그럼에도 이렇게 공개적으로 남겨보게 되는 이유는, 나의 투병을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투영되어 있을 것이다. 처음이 어렵지, 쓰다보니 꽤나 재미(?) 있다는 것을 느낀다. 이제 병 얘기야말로 진짜 나의 이야기다. 내 일부분이다. 그동안 얼마나 고생하고 노력하고 살았는지 잔뜩 생색을 내고 싶다. 너무 많은 치료 스토리가 있어, 하루종일 글을 써도 부족할 것 같은데 앞으로도 여러 글을 발행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나를 포함한 해답없는 이 병을 앓고 있는 모든 환자들에게, 이 글을 바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