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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사랑 라틴구역

삶의 여유 뤽상부르 공원

by 김별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쁘띠 퐁(작은 다리)을 건너면 바로 라틴 구역이다. 오늘은 라틴구역의 카페를 가 보고 소르본 대학 주변을 걸어서 뤽상부르공원까지 가보기로 했다.


파리에 명소가 많지만 사실 이 코스가 제일 마음에 든다. 나중에 다시 파리에 온다 해도 라틴 구역의 비스트로와 음식점 카페거리를 다시 올 것이다.

노트르담에서 쁘띠뽕을 건너면 라틴구역이다

라틴구역 입구 셍 미셀광장


그리고 뤽상부르공원에서 느긋하게 산책을 즐기며 책도 읽을 것이다. 내가 간 날은 일요일인 데다 며칠 만에 햇빛을 본 파리 시민들도 엄청 많이 나와서 그 넓은 공원에 빈 의자가 없을 정도였다.


남편과 나는 분수가 있는 곳에서 한참을 쉬다가 연주 소리에 이끌려 자리를 이동했고 보니까 악대가 연주를 하고 시민들도 함께 호응하며 듣고 있었다. 어린아이들은 춤을 추기도 했다.


노인분들도 보이는 악단공연


전쟁도 없고 시위도 없고 평화로운 이 공원의 분위기가 진정 삶의 여유요, 행복 바로 그 자체인 것 같았다. 뉴스를 너무 믿지 말라. 떠나오기 전 파리 폭동 시위장면을 보고 우려했지만 일주일째 파리를 다니면서 우리는 그 어디서도 시위를 만나지 않았고 안전했고 쾌적했다.

특히 올림픽 이후 바뀐 것도 있겠지만 파리 거리는 내가 왔던 그 어느 때보다도 깨끗했다.

공원은 아름답게 잘 꾸며져 있고 남편과 나도 겨우 빈 의자를 찾아서 앉았다. 한참 그러고 있는데 뒤에서 한국 사람이냐고 물어서 돌아보니 젊은 아가씨가 웃으며 말을 걸어왔다.

노** 그녀는 디자인을 공부했는데 더 공부를 하기 위해서 프랑스에 온 지 3년이 되었다고 했다. 기특하게도 부모님께 기대지 않고 자신이 파리현지 한국 회사에 취직해서 돈을 벌면서 공부하고 있었다. 석사학위를 마치고 들어가려고 한다면서 우리 부부를 보니 부모님 같아서 말을 걸고 싶었다고 했다.


대화를 하면서 나이가 아직 이십대로 어린데도 생각도 성숙하고 철이 들고 참 당차게 느껴진다.

요즘 젊은이들이 스마트하고 열심히 잘 살고 있구나 싶었다.

어느새 해가 어둑해지니 기온이 뚝 떨어지고 근처에 한국 카페 좋은 곳도 있다는데 같이 갈까 하는 아쉬움과 망설임도 있었지만 다음날 일정을 위해서 일어났다. 그녀가 파리에서 원하는 바대로 학위도 하고 일과 학업을 다 잘 성취하고 돌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카페 드 플로르(Café de Flore)는 파리 라틴구역의 생제르맹데프레에 있는 가장 상징적인 카페 중 하나다. 프랑스 문화사, 문학사에 자주 등장하는 곳으로, 단순한 카페가 아니라 파리 지식인과 예술가들의 사교 중심지였다는 점에서 유명하다.

우리가 갔을 때 점심시간이었고 줄이 있었지만 다행히 오래 기다리진 않았다. 남편은 이전 겨울에 먹었던 추억으로 치즈가 들어간 양파 수프를 맥주랑 시키고 나는 니스식 샐러드를 시켜 바게트랑 먹었다.

그전에 먼저 핫 쵸코인 쇼콜라를 시켜 마셨는데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나오는 마들렌과자의 추억처럼 나도 40년 전 그 초콜릿 맛을 기억하며 즐겼다.


“나는 무심코 마들렌 한 조각을 차에 적셔 입에 넣었다. 순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쾌감이 나를 휘감았다.

그 맛은 어린 시절, 콩브레에서 숙모 레오니가 일요일 아침마다 내게 주던 마들렌과 똑같았다.

그 즉시 그 집, 마을, 교회의 모습이 눈앞에 살아났다.”


“마들렌 효과”는 냄새나 맛 같은 감각 자극이 의지와 무관하게 오래된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현상을 가리킨다.

어떤 맛, 노래, 냄새, 물건으로 오래된 추억을 불현듯 떠올리게 된다.

프루스트에게 마들렌이 단순한 간식이 아니라, 기억의 열쇠였듯이 내게 초콜릿이 40년 전 그 시절을 떠올리기에 그러했다.


1880년대 문을 열어 20세기 초부터 지식인들이 모이던 유서 깊은 카페답게 아르데코풍 인테리어에 지금도 붉은 가죽 의자, 거울, 나무 장식 등으로 옛 파리 감성이 잘 보존되어 있다.


철학자나 문인들의 아지트로서

장폴 사르트르와 시몬 드 보부아르가 단골이었고 그들이 철학 토론과 글쓰기를 했던 곳이다.

기욤 아폴리네르, 앙드레 브르통 등 작가들이 자주 드나들었고 피카소 같은 화가와 영화계, 패션계 인사들 그리고 파리에 머물렀던 헤밍웨이도 이곳을 애용했다.


우리 옆자리에 남자 네 분이 앉았는데 대화를 나누는 모습에서도 지성과 품격이 느껴져서 카페 분위기를 말해주는 듯했는데 앞자리 테이블의 연륜 있는 손님에게 대하는 웨이트의 태도에서도 그리 느껴졌다.

책을 전해주기도 하고 한 나이 든 할머니에게는 여자 부지배인인듯한 사람이 와서 따로 인사를 하며 안부를 묻기도 하는 걸 보며 정말 오랜 단골들이 오는 곳이구나 느꼈다.

카페의 명성을 알고 호기심으로 오는 여행객들이 많지만 일반 파리지앵에게도 인기가 있는 명소이고

매년 이 카페에서 Prix de Flore(플로르 문학상) 시상식이 열린다고 한다.


이 상은 1994년 창설하여 매년 11월, 카페 드 플로르에서 수여하는데 주로 젊고 창의적인 작가를 발굴하고 있다. 물론 상이 전통적이고 권위적인 문학상인 콩쿠르와는 다르지만 좀 더 자유롭고 대중적인 성격이라 보면 된다.

수상자는 카페 드 플로르에서 1년간 매일 한 잔씩 와인을 무료로 마실 수 있다는 것도 재미있다.


그리고 그 옆의 또 다른 유명카페인 레 더 마고(Les Deux Magots)가 있다.

원래는 비단 상점이었던 곳이 카페로 전환하여 이름도 ‘두 마고( 두 개의 중국인형)’라는 뜻이다.

카페 드 플로르에 비하면 공간이 넓고

분위기가 조금 더 화려하고 대중적인 성격이 강한 곳이라 한다.

시인 랭보, 보들레르, 소설가 앙드레 지드, 장 콕트등이 단골이었다.

플로르는 더 철학적·지적이고, 더 마고는 더 예술적·사교적 분위기였지만 두 카페는 서로 경쟁하면서도 함께 문학·예술의 명성을 키웠다.

둘 다 파리의 “문학적 아우라”를 경험할 수 있는 명소라, 라틴구역 여행 때 함께 들르면 좋은 비교체험이 된다고 한다.


카페를 나와서 생제르맹 데 프레 성당으로 갔다. 마침 성당 정원에는 식물축제 같은 행사가 있었다. 작은 화분을 공짜로 나눠주신다는데 여행 중이라

가져갈 수 없겠다 하니 웃으셨다.

생제르맹데프레 성당은 파리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 중 하나로 6세기에 건축이 정원 되었고 내부의 고딕·로마네스크 양식이 인상적이다.

한분이 편안하게 주무신다. 정말 신이 함께하는 공간이라면 저리 주무실 수도 있게 편안해야 한다.


성당에서 하는 식물축제 행사



뤽상부르크 공원은 파리 라틴지구에 있는 가장 아름답고 인기 있는 공원이다.

1612년 마리 드 메디시스(메디치가에서 시집온 프랑스 앙리 4세의 왕비)가 자신의 친정인 피렌체의 궁전을 떠올리며 건축가를 시켜 뤽상부르크 궁전과 정원을 조성했다.

프랑스식 정원과 이탈리아식 정원의 특징을 살려 독특한 분위기를 형성했다.


시작은 왕비의 정원이었지만 대혁명 후 시민들에게 개방되어, 파리 시민들이 즐겨 찾는 휴식처가 되었다. 소르본, 팡테옹, 오데옹 극장 근처에 있어 라틴지구 산책 코스에 자주 포함된다.


하루 일정을 마치고 숙소로 걸어오면서 대형 곰돌이 인형사진을 찍었다. 파리 시내 라틴구역에서도 많이 본 인형에 대해 궁금해서 쳇 지피티에게 물어봤다.

이는 최근 몇 년 사이에 많이 보이게 된 현상인데 2018년 파리 5구 고블랭지역의 한 서점 주인이 처음 자기 가게 앞에 커다란 곰인형을 두면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곰인형이 귀엽고 눈에 띄다 보니, 지나가던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SNS에 올리면서 금세 퍼졌고 이후 다른 카페와 식당들도 손님을 끌기 위해 따라 놓기 시작하면서 일종의 트렌드가 되었다 한다.


인증샷을 찍기 좋아하는 여행객들에게 포토존이 되고 입구에서 따뜻하고 친근한 느낌을 줘서 손님들이 더 편하게 들어오게 만드는 효과도 있었다. 특히 지난 코로나 봉쇄 기간에는 텅 빈 카페와 거리를 밝히는 상징이 되기도 했다 한다.



라탱 구역 풍경~*

아저씨께서 오늘의 메뉴를 적으신다. 제철 재료로 식당이 추천하고 자부하는 건 먹어볼 만하다.

적는 모습이 하루 시작의 신선한 출발을 보여주는 듯하다 식당 이름도 카페 라탱이다 ㅎㅎ

작은 골목 사이에 학생구역이라 서점과 극장이 자주 보인다.

식당 간판이 "마시고 웃고 먹어라" 다. 인생 살면서 뭣이 중한데... 세상 귀한 말이다 ㅎㅎ


일요일이라 파리 3대학 소르본느는 문이 닫혀있고 의대거리라 명명된 곳에 있는의대 건물에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1800명의 의사를 기념하는 조각 부조가 있다.

의료업을 돈벌이가 잘 되는 직업으로 생각하는 풍조는 분명 부끄러운 일이다. 나는 지금은 개인 사정상 그만두었지만 오래토록 '국경없는 의사회'를 후원했고 휴머니티 있는 프랑스 의사들을 존경한다.


오데옹 건물앞에 20살에 나라를 위해 희생한 학생을 추모하는 글귀가 새겨져있다. 프랑스가 지금 과도한 지난 복지정책과 그를 타개하려는 의지로 경제적 혼란과 어려움을 겪는 건 사실이다. 허나 공과 사를 구분하며 공적인 일을 우선적으로 여기는 마음이 이런 희생도 소중히 여기는 것에서 보인다. 오른쪽 공립 유치원건물에도 대혁명의 자유, 평등, 박애가 적혀있다.


프랑스가 지금의 경제적 난관을 가능한 순조롭게 정치적으로도 지혜롭게 잘 헤쳐나가길 바란다.



* 나는 여행하며 일기 쓰듯 그날의 여행기를 올리는 습관이 있다. 그런데 이번 여행은 혼자가 아니라 남편과 함께하니 두 사람의 보조도 맞추고 시간을 더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남은 여행은 메모만 해 두고 한국 가서 정리해 올리려 한다.

자판위에서는 춤을 추는 손가락이 폰으로 독수리 타법으로 찍으려니 눈도 아프고 목 피로감도 크다.

그래서 매일 여행기는 여러모로 두루 건강상도 시간 경제적으로도 안 맞다.


오늘 우리는 파리 일 주일을 마치고 브장송 3일 디종 6일 일정으로 떠난다.

브장송에서는 지난 호주 여행때처럼 여행클럽 친구댁에 머물것이다. 나머지는 남불여행을 계획하나 구체적 일정은 일부러 짜지않았다. 여행은 '케세라 세라'로 열어둘 때 항상 나에게 제일 좋은 것으로 다가오기도 했던 경험이 있다.

그래서 굳이 억지로 숙소나 일정 계획을 빡빡하게 짜지 않고 남은 일정도 그냥 물 흐르듯이 편안히 가 보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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