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은 유토피아를 약속하지 않는다
기술은 유토피아를 약속하지 않는다
AI 시대, 인간의 윤리가 더 중요한 이유
우리가 오랫동안 당연하게 믿어왔던 생존 공식 —공부하고, 일하고, 저축하며 노후를 대비하는 삶은
더 이상 보편적 전제가 아닐 가능성이 크다. 인공지능과 로봇 기술의 급속한 발전은 노동과 생존의 구조 자체를 근본적으로 흔들고 있다.
머스크는 향후 5년 안에 인류가 AGI(범용 인공지능)의 시대에 진입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AGI는 단순한 계산 도구가 아니라, 인간과 유사하거나 그 이상 수준의 지적·정서적·통합적 사고 능력을 갖춘 존재다. 영화 Her 속 인공지능처럼, 인간보다 더 뛰어난 지능과 감정 처리 능력을 가진 존재가 현실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인공지능에게 필요한 것은 ‘몸’인데 바로 테슬라와 보스턴다이내믹스가 개발 중인 휴머노이드 로봇들이다. 이 로봇들이 본격적으로 투입되면, 지금까지 인간이 담당해 왔던 대부분의 노동은 로봇으로 대체된다. 과거 수백 명이 일하던 공장에는 수백 대의 로봇이 들어서고, 인간은 단 몇 명의 관리 인력만 남게 될 것이다.
로봇은 잠도 자지 않고, 밥도 먹지 않으며, 불평도 하지 않는다. 생산성과 효율성은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극대화된다. 인간은 일자리를 잃는 대신, 사회 전체의 물질적 풍요는 급격히 증가한다.
더 나아가 로봇이 로봇을 만드는 ‘폰 노이만 머신’의 시대가 오면, 생필품 가격은 거의 공짜에 가까워질 수 있다. 머스크는 이렇게 창출된 막대한 부를 기업과 정부가 사회로 환원해, 국민 모두에게 매달 일정 금액을 지급하는 기본소득 제도가 불가피하다고 본다.
그렇지 않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일자리를 잃은 다수와, 부를 독점한 소수 사이의 격차는 폭동과 사회 붕괴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기술이 사회를 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분배 장치가 필요하다.
여기서 중요한 점을 짚고 넘어가려 한다. 머스크도 자주 언급하는 AGI + 폰 노이만 머신의 결합 시나리오가 왜 중요한 가?
AGI가 인간 수준을 넘어서는 지능을 갖추고, 여기에 휴머노이드 로봇이 결합될 경우 기술 발전의 속도는 기존 산업혁명과는 전혀 다른 차원으로 이동한다. 특히 로봇이 또 다른 로봇을 설계하고 생산하는 ‘폰 노이만 머신’의 구조가 현실화되면, 기술의 확산은 선형적 발전이 아니라 기하급수적 증식의 단계로 접어들게 된다.
이 경우 노동과 생산의 주체는 인간에서 기계로 완전히 이동하고, 재화의 희소성이라는 개념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변화가 사회적 합의나 정치적 준비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일론 머스크가 이 개념을 반복적으로 언급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AI와 로봇의 결합이 가져올 생산성의 폭발적 증가를 낙관하면서도, 동시에 통제되지 않은 자기 증식 기술이 인류의 질서를 위협할 수 있음을 경고해 왔다.
머스크는 한때 AI 개발을 공개적으로 경계했지만, 기술의 흐름을 막을 수 없다는 판단 이후에는 ‘누가 먼저, 어떤 기준으로 통제하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보는 입장으로 선회했다.
그의 기본소득 주장과 정부 개입 필요성 강조 역시, AGI와 폰 노이만 머신이 만들어낼 초고속 변화 속에서 사회 붕괴를 막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로 이해할 수 있다.
결국 AGI와 자기 복제 로봇의 결합은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를 동시에 가능하게 만드는 갈림길이며, 그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관리하고 통제하려는 인간 사회의 선택이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남는다.
기본적인 생활이 해결되면, 인간은 정말 행복해질까?
이미 현실은 이를 단순히 낙관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바닷가 굴 가공 공장에서 35명이 하던 일을 로봇 3대가 대신하는 장면은 더 이상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일하지 않아도 생존이 가능한 사회는 분명 매력적이다.
그러나 동시에 사회적 성취감의 상실, 계층 간 양극화, 지배와 피지배 구조의 고착화라는 문제를 동반한다.
기술이 발달해서 생존권이 해결되어도 인간의 또 다른 성취욕구나 사회적 욕망은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더 강해질 수도 있다.
폭동이 일어나지 않도록 로마 시대 제국의 늘어난 노예들로 인한 실업률이 30~ 40%가 되자 국민들한테 기본 소득을 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된 사람들이 시간이 남아돌자 나라에서 엔터테인먼트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로마에 남아 있는 유적들 중 5만 명이 동시에 와서 즐길 수 있는 콜로세움이 대표적 예이다.
오늘날의 넷플릭스, 유튜브 같은 각종 엔터테인먼트가 미래에 또 다른 콜로세움의 역할로 등장할지도 모른다.
미국 진보 진영의 대표적 인물인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은 AI를 인류 역사상 가장 중대한 기술이라 규정하며, 충분한 사회적 논의 없이 질주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일자리가 사라진 사회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생계를 유지하고, 의료와 주거를 감당할 것인가. 그는 정치가 이 질문을 회피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특히 AI 혁명을 주도하는 소수가 부와 권력을 독점할 위험에 대해 경고하며, 기술 확장을 일시적으로라도 늦출 필요성을 주장한다.
AI의 대부라 불리는 제프리 힌튼 교수의 ‘안전성’에 대한 블룸버거 통신과의 대담도 인상적이다.
그는 사실 지금의 AI 산업이라는 거대한 아마존 숲이 있도록 씨앗을 뿌리고 물을 준 장본인이다.
그런 그가 마치 다이너마이트를 개발했던 노벨이 그를 후회했듯이 AI가 가져올 좋은 측면도 있지만 보다 근본적으로 닥칠 위기를 염려하고 있다.
제프리 힌튼(Geoffrey Hinton) 교수가 2024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주된 이유는 "인공 신경망을 이용한 머신러닝(기계학습)의 기초적인 발견 및 발명"에 대한 공로다.
'AI의 대부(Godfather of AI)'로 불리는 그는 오늘날 강력한 AI 기술의 기반이 된 핵심 방법론을 개발했다.
그런 그가 비록 AI가 교육이나 의료부분으로는 놀라운 선한 영향을 끼칠 것이지만 결국은 기업들에 의해 수익추구 수단으로 사용될 경우 실업과 우리 사회전체 조직을 뒤흔들것이라는 경고를 결코 가벼이 보아선 안 될 것이다.
혹시 덜 지능적인 존재가 더 지능적인 존재를 통제하는 그런 그런 모델이 있는가? 우리에겐 딱 하나의 모델만 있다. 바로 아기가 엄마를 통제하는 모델이다. 진화는 아기가 어머니를 통제할 수 있도록 엄청난 공을 들였다. 그리고 어머니는 사실 종종 자신보다 아기를 더 걱정하는데 이것이 초지능과 공존하는 그럴듯한 모델처럼 보인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아기이고 그들이 어머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내 말은 우리는 우리만큼 거의 똑똑한 존재들이나 우리보다 더 똑똑한 존재들을 가져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우리는 산업혁명 때 우리보다 더 강력한 것들을 가졌다. 하지만 우리가 항상 그것들을 통제해 왔다.
증기 기관은 말보다 훨씬 더 강력하지만 우리가 그 증기 기관을 통제했으나 AI는 그렇지가 않다.
그래서 결론은 우리의 선택과 결정방향인 정치가 중요하다
기술 발전이 곧 ‘무한한 풍요’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지금도 농가에서는 상품성이 떨어진 딸기를 모두 폐기한다. 공짜로 나눠주면 가격이 폭락하고, 유통 비용조차 손해이기 때문이다. 기업과 자본은 언제나 이윤을 기준으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AI와 로봇이 무한 생산 능력을 갖추더라도, 구매력이 없는 사회에서는 생산 자체를 줄이게 된다. 일자리를 잃은 다수가 소비자가 될 수 없다면, 풍요는 현실이 되지 않는다.
이 복합적인 문제를 조정할 수 있는 주체는 시장이 아니라 정부와 정치다.
기업과 자본, 노동자 간의 이해관계를 조율하고
권력과 욕망을 억제하며
재화의 분배를 설계하는 역할—
이것이 정치가 해야 할 일이다.
기술은 중립적이다. 그것이 유토피아로 이어질지, 디스토피아로 향할지는 인간의 선택에 달려 있다.
AI와 로봇의 시대에는 기술보다 오히려 시민의 윤리 의식과 정치적 판단력이 더 중요해진다.
투표를 잘하면 유토피아로 갈 수 있고,
투료를 잘못하면 디스토피아로 갈 수도 있다.
결국 AI와 로봇이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인간의 존엄과 사회의 방향을 지켜내는 힘은 기술이 아니라
인간의 의식, 윤리, 그리고 성숙한 정치 참여에 있다.
기술의 시대일수록, 우리는 더 인간다워져야 하는 이유이고
그 기술을 어디로 이끄느냐는,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의 선택에도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