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불문학을 전공한다는 것.

서울대 불문과 재학생 뭐 하고 살지?

by 서민주

자신이 가지고 있는 불완전함을 공유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인터뷰를 진행했다. 내가 했던 인터뷰 중에 인상 깊었던 몇몇 인터뷰들이 있는데, 브런치에 정리해 보면서 내 생각도 적어보려고 한다. 우선은 청명이 인터뷰. 고등학교 직속후배이다. 청명이가 서울대 불문과 붙었을 때 연락하고 그 이후로는 연락한 적이 없긴 하지만, 그래도 한 번 보고 싶기도 했고 섭외 연락을 했다. 내가 섭외연락을 하고 상대에게 받는 첫 반응 모두 제각각인데 다행히 아직까지는 다들 인터뷰에 흥미를 가지고 인터뷰이로서 참여해주고 있다. 가장 많은 반응이 "내가 뭐 하면 될까?!"이다!

서울대입구역 사거리에 있는 한 카페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다. 수업이 끝난 후 바로 출발했다. 고대에서 서울대까지 가는 지하철 안에서 질문을 정리했다. 카페 입구에 가니 키오스크 쪽에 청명이가 있었다. 오랜만에 봤는데도 고등학교 때 모습 그대로였다. 그리고 엄청 반가웠다. 마지막으로 청명이를 본건 고등학교 졸업하고 대일외고 놀러 가서 청명이가 있던 교실 뒷문에서였다.



<매거진 B JOBS 에디터> 편에서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건 제 발로 걸어오는 게 아니고 그만큼 애정을 가지고 더 많이 더 세심하게 보려고 애써야 한다는 것"이라는 문장을 읽은 적이 있다. 청명이와 대화를 하니 이 문장이 청명이와 일치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또한 불문학도로써 청명이와의 인터뷰를 통해 내가 불문학에 대해 알지 못했던 것들을 발견하게되었다.


나 : 서울대 불문과에서 공부한 지 1년 반이 되었는데, 학업적인 측면에서 기억에 남는 경험이 있나요?


당시 수업에서 제가 앙드레 브르통의 <초현실주의 선언>을 발표했었어요. 뭔가 참고 자료 없이 제 생각과 힘으로만 해보고 싶어 처음부터 해석과 분석을 직접 다 했어요. 지금 다시 돌이켜보면 정말 말도 안 되긴 해요. 교수님께서 저의 발표를 보신 후에 내용이 너무 좋다며, 나중에 좋은 학자가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씀을 해주셨어요.

그래서 ‘정말 내가 불문학에 재능이 있는 것 같다'라는 생각도 들고 불문과에 더 많은 애정이 생겼어요.


2학년 1학기에 ‘프랑스 문학 강독’이라는 수업을 들었어요. 총 3개의 보고서를 작성한 수업이었어요. 한 번은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으로 썼는데, 교수님께서 이런 보고서를 본 적이 없다고 하시며 칭찬을 많이 해주셨어요. 덕분에 자신감이 뿜! 뿜! 올라가고, ‘역시나 나는 이 길이구나'싶었죠. 또 한 번은 아니에르노의 <한 여자>를 썼는데 너무 모순이 많고 논리적 비약이 심하다고 하셔서 시무룩해졌고요. 그리고 마지막 보고서는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의 <방랑하는 여인>을 다룬 보고서를 작성했어요. 근데 제출 전에 파일이 날아가고 말았죠. (하하...) 그래서 교수님께 메일을 드리니 하루 시간을 더 주시긴 했는데, 다시 쓰기는 정말 싫더라고요. 결국 못 냈어요.

날아간 보고서를 이렇게나 다시 쓰기 싫어하는데 과연 제가 불문학을 정말 좋아하는 게 맞을까? 하는 생각이 또 들더라고요. 그래서 저한테 불문과는 왔다 갔다 하는 것 같아요. 계속해 보고 싶으면서도 공부하다가 어느 순간 확 멀어지기도 하고…

특히 저희 과 교수님들의 수업을 들으면서 제가 저 정도의 수준까지 올라가려면 얼마나 공부를 해야 할까라는 생각에… 막막하기도 해요. 공부하는 게 분명 쉽지만은 않은 것 같아요.


나 : 불문학을 공부하면서 ‘언어'가 가지는 가치를 고민해 본 적이 있나요?


대학교에서 ‘서양 철학의 이해'라는 수업을 들었어요. 매 수업 시간마다 토론했고요. 근데 그 수업에서 같은 고등학교를 나온 친구가 ‘감각을 어디까지 믿을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하더라고요. 제가 그 질문에 꽂혀서 한 학기 동안 고민을 했었어요. 우리 각자는 다 다른 세계를 만들고 있다고 할 때, 본인의 감각을 믿을 수 없다면, 서로 어떻게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가? 또 다른 사람의 존재를 어떻게 정당화할 수 있는가? 하는 여러 질문들이 떠오르더라고요.

저는 이때 ‘언어'가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특히, 감각을 어떻게 구현하느냐라는 질문에 저는 우리가 언어로서 감각을 구현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측면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 언어가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구나" 싶더라고요. 언어가 이렇게나 중요하다고 했을 때 다른 예술 장르와는 차별화되는 ‘문학'만이 가지고 있는 것은 ‘텍스트가 가진 힘'인 것 같아요. 문학의 텍스트라는 것은 오로지 한 개인이 스스로 읽고, 떠올려야 하므로 문학을 읽는 것이 이 세계를 구성하는 것들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점에서 문학을 공부하는 건 중요한 것 같아요.



나 : 맞아요. 저는 요즘 더 언어의 중요성을 느끼고 있어요. 사람들이 가면 갈수록 더 서로를 혐오하는데, 그 간극을 언어가 메꿀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문학을 공부함으로써 소통의 부재가 만든 사람들 사이의 간극을 어떻게 메꿀 것인가 하는 고민을 해볼 수 있잖아요.


맞아요. 물론 이렇게 이야기하면 다른 사람들이 좋아할지는 잘 모르겠어요. 사실 되게 추상적인 부분이긴 해서요.


나: 지금 커리어에 있어서, 로스쿨이나 CPA 같은 전문직을 생각해 본 적이 있나요?


(...) 근데, 저는 불문학을 안 할 수는 없겠더라고요. 왜냐하면, 제가 이렇게까지 좋아한다는 감정을 가져본 게 아직까진 불문학이 유일하고, 이것보다 더 좋아하는 걸 찾기가 힘들겠다는 생각도 들고요. 저번 학기에 저희 과 교수님이랑 상담을 했어요. 그때 교수님께서 박사를 하면 아무래도 다른 분야로의 전향이 쉽지 않지만, 석사까지는 해보고 나서 다른 분야를 선택한 사람도 많다고 하시더라고요. 제가 석사를 졸업해도 아직 20대 후반인 거잖아요. 그래서 지금으로서는 석사까지 꼭 가보고 싶어요.


나 : 사실 청명 씨가 20대 후반에 불문학 석사를 졸업한다고 해서 어떤 직업이 딱 보장되지는 않잖아요. 교수가 되고자 한다면, 사실 그때부터 시작인 거고요. 석사를 하며 보낸 시간을 cpa나 로스쿨 같은 진로에 투자한다면, 경제적으로 더 나은 보상이 있을텐데, 그런 것에 대한 걱정 혹은 불안은 없나요?


사실 저는 돈을 많이 버는 것보다 제가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해요. 물론, 돈을 많이 벌지 못해도 불문학 석사를 했을 때 어떤 직업이라도 보장이 된다면 이 길에 더 확신을 가지고 나아갈 수 있을 것 같아요. 근데 그게 아니니까… 이 부분이 지금 제일 큰 고민이죠. 그래도 지금 생각은 그래요. 그냥 일단 해보자.

그리고 저는 약간 이렇게 생각해요. 제가 석사과정을 밟고 나서 자리를 잡지 못한다고 해도 그걸 실패로 봐야 할까 라는 거죠. 그 또한 과정이고 그 이후에 뭔가 쭉 이어지지 않을까…

석사를 하고 나서 자리를 잡지 못해도 전 그 시간을 후회하지 않을 것 같아요. 왜냐하면 제가 정말 좋아하는 일로 20대를 보낸 거니까요.

오히려 제가 불문학을 하지 않고 안정적인 직장이나 많은 돈을 생각해서 진로를 잡으면 더 후회될 것 같아요. 제가 그렇게 좋아하는 걸 더 해보지 못한 아쉬움이 남을 것 같아요. 그리고 운이 좋게 불문학을 끝까지 했을 때 잘될 수도 있는 거잖아요. 물론 운이 나쁠 수도 있지만, 이런 것들은 그때 가서 다시 생각해 보자 하는 거죠.


나는 고3, 19살 때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했다. 정말 괜찮은 10대를 보냈나? 늦은 밤 학교 책상에 앉아 공부를 하는 것. 그걸 최고의 미덕으로 여기는 10대를 보낸 것 같았다. 나의 얘기를 하는 10대를 보내지 못한 것 같았다. 10대의 마지막 3년 동안 학교에서 아침 7시 30분부터 밤 10시까지 있는 걸로만 보냈던 일들이 지금 생각해도 많이 답답하기만 하다. 남들보다 더 답답해했던 것 같다. 내가 나가고 싶을 때 언제든지 나가서 산책하고 싶었고, 학교가 끝나면 새로운 장소를 가보고 싶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슬프다. 어느 순간부터는 학교에 등교하는 것조차 너무 버거웠다. 수업을 듣다가 정말 안 되겠다 싶어서 보건실에 간다고 하고 한 10분 정도 학교 내부를 돌아다녔다. 비가 오면 중학생 때처럼 친구들과 가위바위보해서 진 사람이 운동장 한 바퀴 뛰고 오는 그런 일이 많이 그리웠다. 그 답답함이 너무 커서 견딜 수가 없었다. 이번에도 내가 그저 끌리는 길로 가지 않는다면, 다시 한번 공부를 잘하면 되는 일을 선택하면 20대마저도 그런 답답함에 지배당한 상태로 살아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불문학 석사를 하고 나서 자리를 잡지 못해도 전 그 시간을 후회하지 않을 것 같아요. 왜냐하면 제가 정말 좋아하는 일로 20대를 보낸 거니까요. 오히려 제가 불문학을 하지 않고 안정적인 직장이나 많은 돈을 생각해서 진로를 잡으면 더 후회될 것 같아요. 제가 그렇게 좋아하는 걸 더 해보지 못한 아쉬움을 남을 것 같아요. 그리고 운이 좋게 불문학을 끝까지 했을 때 잘될 수도 있는 거잖아요. 물론 운이 나쁠 수도 있지만, 이런 것들은 그때 가서 다시 생각해 보자 하는 거죠."


서로의 불완전함을 공유하면, 일상 속 외면하고만 싶었던 불안이라는 감정이 새롭게 느껴지는 것 같다. 같은 불안함을 공유하고 있는 사람을 만나면, 불안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게 해 주고 상대가 불안과 공존하는 방식을 통해 나 또한 그런 감정과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조금은 알게 되는 것 같다.

불안할수록 회피하고 숨지 말고 사람을 만나야겠다고 느꼈다! 그리고 괜찮은 대화를 하자. 내가 풀지 못하고 있는 문제를 상대에게 물어보자. 그리고 그 사람 또한 그것을 해결하지 못했을지라도 어떻게 그 문제를 풀려고 시도하는 중인지 들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