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에 대한, 몸을 위한, 몸에 의한
첫 생리가 끝나고 나서였다. 어느새 셔츠의 세네 번째 단추가 조용히 벌어질 만큼, 몸이 변하기 시작했다. 그 무렵부터 내 등도 서서히 굽어갔다. 누군가에게는 수술을 해서라도 갖고 싶은 것이자, 생식력과 욕망의 상징이 될 가슴과 커다랗기 짝이 없는 엉덩이는 부정할 수 없는 나의 일부다. 하지만 동시에, 가장 부정하고 싶은 내 몸이기도 하다.
내가 몸에 대한 말들에 자책 대신 분노를 느끼기까지는 시간이 조금 걸렸다. 비록 지금은 평가하는 말들에 분노하기도 하고, 때론 이런 것들에 초탈해질 정도로 더 단단해졌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나는 낯선 시선이 내 몸을 훑으며 그 안의 곡선을 눈치채지 않길 바라며 긴장하곤 한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반에는 A라는 친구가 있었다. 쌍꺼풀 용액을 바르고 깻잎 머리를 한 채 셀린 디온의 노래를 불렀다. 세 살 많은 언니처럼 보일 정도로 키도 크고 골격도 시원시원했던 그 애는 노는 아이들 무리에게 ‘젖소부인’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지금 생각하면 기함할 일이지만, 그 당시에는 가슴이 큰 여자아이들에게 그런 별명이 흔히 붙곤 했다. 그 애는 그 별명을 별로 개의치 않는 듯했다.
돌아보건대,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내가 이상적 몸에 대한 초안을 만들어내게 된 게. 크고 잘록한 곡선, 그 자체로 욕망의 대상이 될 법한 몸이 아닌, 선이 길고 모던한 몸. 나는 그 이상에 가까워지기 위해 가슴과 골반을 가릴 수 있을 만큼 길고, 품이 넉넉한 옷을 입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면 가는 팔과 다리는 좀 더 부각되어 보였고, 무엇보다 가슴과 엉덩이가 덜 도드라지는 듯했다. 학교에서는 무더운 여름에도 카디건을 입었고, 벌점을 감수하고 체육복을 고수했다. 내 어깨는 가슴을 지탱하는 브래지어 끈이 깊이 파고들어 늘 아팠고, 등은 굽었으며, 목 뒤는 항상 뻐근했다. 그렇지만 견뎠다.
내 모습을 애써 외면하며 나는 마르고 선이 고운 친구들의 몸을 관음하며, 선망했다.
그때부터 나는 내 몸을 드러내야 하는 장소를 피하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내 몸을 보고 가슴이나 엉덩이에 대해 무슨 말을 할까 봐 두려웠다. 그들은 호의로 나를 칭찬한다고 말했지만, 그 기저에 묘한 기류가 깔려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말하지 않아도 알아챘다. 나는 항상 그 칭찬이 불편했고, 거기엔 내가 부정해야만 하는 내 몸의 무언가가 있다는 듯했다. 그때 나는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하면서도 속으로는 불만과 불안으로 가득 차 있었다. 특히 목욕탕은 최악이었다.
이상적인 몸에 대한 나의 집착은 점차 날씬함으로 이어졌다. 현대사회가 20대 어린 여성에게 요구하는 잔인한 기준은 내게 다소 뒤늦게 찾아왔다. 남들이 다이어트를 할 때 나는 여전히 천하태평한 통통이였다. 내가 처음 다이어트 비슷한 것을 시도한 것은 대학교 3학년, 졸업사진 촬영을 앞둔 시점이었다. 여드름도 나고, 살집도 있는 게 괜스레 카페인과 탄수화물 때문인 것만 같아 밀가루를 끊고 커피도 마시지 않았다. 그때 맛본 성공의 느낌은 너무나 황홀했다. 나는 점점 더 마르고 빛나고, 아름다워졌다. 그리고 2019년, 각종 브랜드의 닭가슴살과 양배추, 건두부면에 기대 다시 한번 다이어트를 시도했고, 최저 몸무게를 갱신했다. 그런데 몰랐다. 다이어트는 체중을 늘리고자 한다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비효율적인 방법이자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었다는 걸.
억눌리고 제한된 욕망은 호스에 구멍이 뚫린 수준이 아니라, 풍선에 바늘을 들이댄 수준으로 터져 나왔다. 집에 오는 길 과자를 두 봉지씩 사서 방에 몰래 숨겨두고 혼자 먹었다. 그러고도 만족하지 못해 또 먹고, 턱밑까지 음식을 채웠다. 아무도 몰랐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그게 자꾸 반복된다는 걸. 다람쥐가 도토리를 저장해 둔 곳을 까먹어 떡갈나무가 자라는 것처럼 간혹 나의 식량 은닉도 들통나곤 했지만, 여전히 계속됐다. “부족함을 느껴 무엇을 가지고자, 혹은 누리고자 탐하는” 욕망 그리고 “분수에 넘치게 탐내고 누리고자 하는” 욕심이 맹렬히 간식을 향해 있었다.
몇 달 동안 그렇게 먹으며 허리에 두툼한 지방을 두르게 되었다. 이 지방은 오랜 시간 동안 둥지를 틀었고, 팔은 그보다는 조금 더 늦게 이사를 왔다. 지방세포 소멸주기가 10년이라 하니 아직 이웃으로 살날이 벌써부터 지리하게만 느껴진다.
동시에 그런 생각이 든다, 난 “아름다운 몸”에 대해 세뇌당해 버린 건 아닐까. 케이트 모스와 메릴린 먼로, 미국 팝아트의 자애로운 어머니-매춘부, 일제강점기 조선의 현모양처-요부의 이미지로 여성을 바라보는 양극화된 시각은 꽤나 오래 평행을 그리며 이어졌다. 그러다가 최근 몇 년 새에 건강한 여성이라는 하나의 축이 나타났다. 뼈가 훤히 보이거나, 살집이 있고 글래머러스한 것에 이제는 등근육과 복근이 선명한 여성까지 추가된 것이다.
그 속에서 나는 적당히 먹고, 적당히 운동하며, 지나치게 욕심내지 않는 것이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려 한다. 물론 이 경우에는 맛있는 걸 먹지만 단호한 절제력을 발휘해 적당히 끊는 게 핵심이다. 친구들과 만나 배부르게 브런치를 먹고는 각박한 현실을 이야기하다가 남아있는 플레이트 위 식어빠진 음식이 그다지 맛있지도 않으면서 참지 못하고 손을 뻗는 자제가 되지 않는 마음과, 먹고 나서 후회하는 무의식의 민낯을 드러내지 않는 바로 그런 것.
결국 이걸 충족시키기 위해선 둘 다 먹고 싶은 스콘이나 크루아상 중에 하나만 선택해 반만 먹거나, 그걸 단백질이 가득하고 담백한 다이어트 음식으로 대체해야 된다는 서글픈 공통분모가 있다. 앗 이렇게만 해서는 그냥 마른 몸일 뿐이다. 운동, 운동을 해야 한다. 사이클로 땀을 뻘뻘 흘리고 척추를 하나하나 쌓아 올리거나 복근을 쪼아내는 필라테스를 하고, 근육통에 시달려야 한다. 자기 부정과 수치심을 덜 극단적인 수준으로 낮추기 위한 시도가 이렇게도 어렵다.
언제부터인지 인터넷 쇼핑몰엔 프리사이즈를 가장한 스몰사이즈들이 판을 쳤고, 미디엄 사이즈의 허리 단면은 33cm도 채 되지 않는다. 매일매일, 날씬해지지 않으면 안 된다는 불안감이 엄습한다. 한편으로는, 큰컵브라의 불모지 대한민국에서 구할 수 없었던 사이즈의 브래지어들이 출시되고 있다. 내 몸에 맞는, 내 가슴을 덜 도드라지게 하는 미니마이저 브래지어에 나와 같은 청소년기를 보낸 “큰가슴군단”의 지갑은 “[자체제작] 스테디셀러 미니마이저 브래지어”라는 홍보에 혹해 활짝 열린다.
이런 복잡한 상황은 앞으로도 지속되겠지. 몸에 대한 사회적 기준은 여전히 흔들리고, 나는 그 속에서 나 자신을 다시 정립하려 노력하겠지만,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외적인 것 말고도 내 몸엔 세월의 흐름과 중력의 작용이 있었다. 그래, 쳐졌다. 이건 유쾌한 변화는 아니지만, 더 이상 내 몸이 커 보이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은 받아들일 만하다. 그래, 어쩌겠는가. 일단은 이대로 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