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사람들은 어떻게 일했을까?
사무실이나 공장에서 AI의 역할이 점차 커지고 있다.
스마트폰이 등장한 지 채 20년도 안되는데, 이제 스마트폰이 없는 세상은 상상할 수도 없는 것처럼, 앞으로 10년 안에 AI가 없는 세상은 상상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스마트폰이나 AI는커녕 인터넷도 보급되지 않았던 30년 전, 사람들은 어떻게 일했을까?
나의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당시의 최첨단 IT 대기업조차도 지금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라 적어본다.
1990년대 중반, 나의 첫 직장은 데이터 통신 서비스를 제공하는 IT 대기업이었다.
IT에 대해 잘 몰랐던 나는 신입사원 입문교육에서 통신서비스와 최첨단 데이터 통신 기술을 접하면서 새로운 세상이 펼쳐질 것이라는 기대감에 들떴다.
하지만, 연수원 입문교육이 끝나고 부서배치를 받아 사무실로 출근했을 때 나는 다소 실망을 했다.
PC통신 '천리안'으로 이름을 날리고 최첨단 데이터 통신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라서 일반 기업과는 달리 사무실 인테리어부터 첨단일 거라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다른 회사들과 크게 다를 게 없었기 때문이었다. 다만, 모든 직원의 책상 위에 커다란 모니터가 달린 PC가 하나씩 놓여있는 것이 신기했다.
아직 개인 PC가 없거나 또는 개인 PC가 있어도 윗사람들은 이면지에 메모를 해서 지시하고 막내 사원들이 컴퓨터로 문서 작성하는 것을 도맡아 하던 시절의 일하는 방식은 보통 이랬다.
1) 상사로부터 업무지시를 받는다.
2) 부서 캐비닛이나 회사 자료실에서 예전에 만들었던 서류를 찾는다.
3) 만약 참고할만한 서류가 없는 새로운 업무일 경우, 도서관이나 서점에 가서 관련 분야의 책이나 자료를 찾는다.
4) 그래도 없으면 관련 분야의 경험이 있는 사내 또는 사외 전문가를 찾아간다.
5) 앞의 2~4 방식으로 자료를 찾아서 정리한 후에 기획안을 종이에 연필로 기안을 한다. (그 시절 선배들은 컴퓨터로 문서를 만들기 전에 이면지에 연필로 시놉시스처럼 기획안을 대충 그려보라고 가르쳤었다.)
6) 막내 사원이나 타이핑 전담 직원이 타자기나 컴퓨터로 문서를 작성하고 인쇄해서 기안자에게 전달한다. (극히 일부지만 90년대 중반에도 타자기를 쓰던 곳이 있었다)
7) 기안자가 문서를 대리나 과장에게 보고하면, 빨간펜으로 줄을 그어가며 수정지시를 한다.
8) 몇 번의 수정지시 끝에 대리나 과장이 최종본 서류를 결재판에 넣어 가지고 가서 부장님께 보고한다. 부장님들은 보통 빨간펜을 들지는 않는다. 다만, 몇 가지 구두지시를 하는데, 경우에 따라서는 몇 마디의 구두지시 때문에 위의 2번 단계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숨이 막히는가? 그런데, 그때 일했던 분들은 공감할 것이다. 그때는 대부분 이랬으니까..
그런데, 우리 회사는 최첨단 IT 기업이라서 조금 달랐다. 나이 드신 부장님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직원들이 직접 PC로 문서 작업을 했고, 도서관처럼 서류가 잔뜩 꽂혀있는 물리적인 자료실이 아니라 인트라넷에 저장되어 검색이 가능한 디지털 문서함이 있었다. 즉, 1~3번 다음에 5~6번을 건너뛰어 7번으로 바로 가는 거였다. 물론, 아직 개인들이 각자 PC를 이용해서 문서 작업을 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대리, 과장도 수두룩했지만 어쨌든 공식적으로는 7번으로 바로 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최첨단 기업도 도서관이나 서점에서 자료를 찾는 3번은 피할 수가 없었다. 사내 인트라넷 자료실에서 검색할 수 있는 자료는 어디까지나 부서 내에서 누군가 이전에 올렸던 품의서와 첨부문서가 대부분이고 그 외에 공유된 지식자료는 건질게 별로 없었다. 그래서 새로운 지식과 자료는 도서관이나 서점에 가야 했다.
요즘 MZ세대들은 '왜?'라고 반문할 것이다.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되잖아'라고 생각하겠지만, 데이터 통신 서비스로 먹고사는 IT 대기업조차도 사무실에 인트라넷은 있지만 인터넷이 없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인터넷 회선 비용이 너무나 비싸서 꼭 필요한 부서에 한해서 사유를 상세히 기재해서 품의서를 올리면 해당 부서에 딱 한 개의 인터넷 회선을 연결해 주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직원들은 인터넷을 이용할 수 없었다. 이것은 마치, 명품 매장에서 근무하지만 명품옷을 입고 다닐 수는 없는 것과 같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인터넷 회선이 연결돼도 문제가 있었다. 방문할 웹사이트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90년대 중반부터 대기업이나 공공기관들이 홈페이지를 만들기 시작했으나, 대표이사의 인사말과 사훈 정도만 있을 뿐 제품에 관한 설명조차도 없는 곳이 대부분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때는 가정에서 인터넷에 연결하려면 전화선에 모뎀을 연결하는 게 일반적이었는데, 텍스트만 있는 PC통신과 달리 이미지가 들어가는 인터넷 웹페이지를 로딩하려면 수십 초에서 몇 분까지도 걸렸기 때문에 홈페이지가 텍스트 중심으로 단순할 수밖에 없었다.
더 큰 문제는 지금과 같은 자연어 기반의 검색서비스가 없었다는 것이다. 대학생들이 만든 '까치네', '와카노' 같은 검색엔진이 있기는 했지만 연관성이 높은 순으로 찾아주는 게 아니어서 '장동건'을 검색하면 '마장동 건어물센터'가 제일 먼저 나오는 형편이었고, 알타비스타, 라이코스, 야후 같은 외산 검색엔진이 한국에 진출한 것은 1999년 이후였기 때문에 방문하고자 하는 웹사이트의 URL을 알아야만 방문할 수 있는 코미디 같은 시절이라 인터넷이 자료 검색에 별 도움이 안 되었다.
자료 검색을 할 때 인터넷이라는 건 애초에 옵션에 없었기 때문에 방대한 자료를 보유한 대학교 도서관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서 관련 내용을 찾고 참고문헌에 기재된 서적이나 논문을 빌려서 필요한 자료를 찾는 것이다.
나는 IT에 대해서 모르는 것이 많았고 평일에는 일하느라 도서관에 갈 시간이 없어서 거의 매주 주말마다 학교 도서관에 가곤 했는데, 이런 사정은 내 친구들도 다르지 않아서 주말에 학교 도서관에 가면 낯익은 얼굴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덕분에 자연스럽게 학창 시절처럼 같이 점심을 먹고 당구장으로 향하기도 했다. 그래서, 그 시절 주말에는 취업을 했음에도 도서관을 찾는 졸업생들이 많았는데, 시험기간에는 재학생들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으려 도서관 출입을 자제하는 미덕을 발휘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도서관이나 서점에서 자료를 찾는 것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 문제였다.
원하는 자료를 찾기도 힘들지만, 그것을 이해하고 업무에 활용하기까지도 시간이 꽤 걸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배들이 전해준 조언이 바로 '일을 잘하려면 Know-how보다 Know-where'라는 것이다. 책과 경험을 통해서 지식을 쌓는 것보다 그 분야의 전문가가 어디에 있는 누구인지를 아는 것이 낫다는 것이다.
그래서, 당시의 '인싸'는 어떤 분야의 전문가라고 알려진 사람들이었고, 그런 사람들에게는 음료수나 간식거리를 들고 '걸어 다니는 지식인'으로부터 지식을 얻고자 찾아오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에는 지식을 쌓는 것뿐만 아니라 업무 환경을 만드는 것도 지금과 많이 달랐다.
입사 후 첫 부서로 영업본부 영업관리팀에 발령받은 지 한 달쯤 되던 날, 본부장님이 친히 나를 부르셨다. 보통은, 부장님이나 과장님을 불러서 지시가 내려오게 마련인데 본부장님이 직접 부르셔서 긴장이 되는 한편, 왠지 인정받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기도 했다.
본부장님의 지시는 본인의 집무실에 현황판을 만들어서 전날의 부서별 영업실적을 매일 아침마다 볼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었다.
자리에 돌아와서 나는 어떤 내용을 어떻게 보여줄지 그리고 그 데이터는 매일 어떻게 집계할지를 고민했고, 대략의 아웃라인을 작성해서 부장님께 보고를 하고 외출 허가를 받아 외출을 했다.
현황판을 만드는데, 왜 외출을 할까?
지금은 모니터에 대시보드를 띄워 영업현황을 표시하지만, 당시의 현황판은 커다란 하드보드지에 데이터를 표시할 표를 유성매직으로 그리고 그 위에 깨끗한 비닐로 덮어 보드판을 만들고, 매일 저녁에 집계한 영업실적을 보드판 위에 보드마커로 작성하는 것이었다.
내가 외출을 한 이유는, 그 정도의 커다란 하드보드지와 여러 번 썼다 지웠다 반복해도 손상되지 않는 질 좋은 비닐은 일반 문구점에서는 구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하드보드지는 화방이 밀집해 있었던 삼각지를 돌아다니며 구했고, 커버용 비닐을 사러 지물포가 많은 남대문시장까지 갔었다. 지금은 온라인으로 쉽게 구할 수 있지만, 그때는 그렇게 물품별로 전문매장을 방문해야만 했다.
여담이지만, 가끔 실수로 우수한 팀과 저조한 팀을 바꿔 적는 바람에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엉뚱한 팀장님이 본부장님으로부터 혼나는 모습을 보며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했었다. ㅠㅠ
이제는 인터넷만 연결되어 있다면, 굳이 사무실에 출근할 필요도 없고 자료 검색은 물로 생성형 AI에게 문서 제작까지 시킬 수 있는 시대다. 많은 회사들이 회의를 위해 모이는 대신 화상회의로 대신하기도 한다.
생산성 관점에서 보면, 인터넷이 없던 시절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발전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AI의 급속한 발전이 도리어 인간의 직업을 빼앗고 심지어는 인간을 해칠 수도 있다는 뉴스를 접할 때마다 기술 발전의 이면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
자료를 구하러 도서관을 찾고, 기획안 문구가 떠오르지 않아 야근하며 밤새 고민하며, 선배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정답이 없는 토론으로 날을 새우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생각해 보면, 우리 세대는 인터넷 전과 후를 모두 경험한 행복한 세대다.
인터넷 이후에 태어난 세대들은 이런 경험을 할 수 없겠구나 생각하니 왠지 미안한 마음이 든다.
* 대문 사진 :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에서 주인공들이 PC통신으로 채팅하는 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