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356
가는 가을이
가는 시간이
아쉽다
어쩔 수 없는 걸 알면서도
네가 가고 나도 가는구나
동네 곳곳을 걷고 바라보며 나만의 소중한 가을을 애써 남긴다.
멀리 가지 않아도 내 곁에 있어 고맙구나.
일주일 넘게 두통이 척 들러붙어 있었다.
평생 두통을 달고 살아 특별하게 여기지 않았지만 개운하지 않은 일상이 버거웠다. 아들의 독감 확진 후 혹여나 전염될까 조심조심 지냈는데 난데없이 머리가 지끈거리고 울리기 시작했다. 감기 기운이 있나 싶어 종합 감기약도 챙겨 먹고, 중간중간 타이레놀까지 곁들여 복용해도 차도가 1도 없었다. 며칠 뒤 망설이다 자발적으로 독감검사까지 했다. 열이 안 나니 독감일 리 없어도 혹시나 열 없는 독감에 걸렸을까 봐 3만 원 주고 검사까지 했지만 역시나 독감이 아니었다. 올해 그 무섭다는 독감을 곁에서 체험한 터라, 독감이 아니니 천만다행인 것 같으면서도 이 기분 나쁜 두통의 원인을 알 수 없어 답답했다.
다른 병원을 찾아갔다. 내 병력을 아는 내과를 찾아갔더니 바로 신경외과로 안내했다. 혈류 초음파를 찍어보자는 말에 얼떨결에 30분 동안 침대에 누워 초음파를 찍었다. 심장, 가슴, 복부 등 여러 부위에 초음파를 찍어봤지만 머리 쪽은 처음이었다. 축축한 젤로 머리를 문질러댔고, 다행히 별이상 없다는 소견을 듣고 약처방을 받았다. 특별해 보이지 않는 몇 알 가운데 신경안정제 반쪽이 눈에 거슬렸다. 신경안정제를 왜 먹어야 할까 의심스러워하면서 취침 전 복용했다. 놀라웠다. 다음날 오후까지 멍한 상태로 잠이 깨지 않았다. 손톱 반도 안 되는 그 작은 약이 나를 계속 흐느적거리며 눈을 감게 했다. 항암 주사를 맞고 일주일 동안 복용했던 신경안정제와는 차원이 다르게 훨씬 강력했다. 점심을 겨우 챙겨 먹고 의도적으로 움직이며 집안일부터 시작했다. 날이 어두워지면서 내 정신은 밝아졌고 전날보다 두통이 감소한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다음날부터 신기하게도 살만해졌다. 완전히 두통에서 해방된 건 아니나 그래도 이만하면 괜찮다 싶을 정도가 되자 서둘러 일상복귀를 했다. 아플 만큼 아파서 지나갔나 싶기도 했다. 몸이 아파 무기력하게 창밖을 바라보는 건 정말 세상에서 가장 싫은 일 중 하나다. 형형색색 어딜 봐도 눈부신 가을, 그 짧은 가을이 하루하루 멀어져 가는 것만 같았다. 하루를 온전히 보낸 후 컴컴한 밤하늘을 보자 텅빈 가슴을 다시 채운 느낌이었다. 다시 움직이는 만큼 살아있음에 감사하게 되었다.
새삼스러울 일도 아닌데, 난 또다시 일상의 평화로움과 아름다움에 감사하며 이 가을을 보내게 되었다. 맑은 오후 산책길에 윤슬에 빛나는 잔잔한 호수를 보는 순간, 갑자기 예전 드라마 한 편이 떠올랐다. 2019년에 방송된 "눈이 부시게"라는 김혜자 주연의 드라마의 명대사를 찾아 천천히 읽어 내려가며 삶의 소중함을 다시 새겼다.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호수만큼 내 삶도 눈이 부시다는 것을... 그리고 앞으로도 눈부실 것이라고.
새벽에 쨍한 차가운 공기
꽃이 피기 전 부는 달큼한 바람
해 질 무렵 우러나는 노을의 냄새
어느 하루 눈부시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지금 삶이 힘든 당신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당신은 이 모든 걸 매일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
대단하지 않은 하루가 지나고
또 별거 아닌 하루가 온다 해도
인생은 살아갈 가치가 있습니다.
후회만 가득한 과거와 불안하기만 한 미래 때문에
지금을 망치지 마세요.
오늘을 살아가세요.
눈이 부시게
당신은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누군가의 엄마였고 누이였고 딸이었고
그리고, 나였을 그대들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