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렉 문화비평문

by 윤하성

“먼 먼 아주 먼 옛날 괴물이 살았더래요” 로 시작하는 슈렉은 잠자는 숲 속의 공

주라는 전래 동화에서 비롯되었다. 피오나 공주는 드래곤에 의해 납치되어 뾰족

탑에서 쓸쓸히 키스를 통해 자신의 저주를 풀어줄 멋진 왕자를 기다리는데, 잠자

는 숲 속의 공주에서도 저주에 빠진 공주를 구하는 것은 왕자의 입맞춤이다. 하

지만 슈렉은 전통적인 공주 왕자담과 명백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야기의 주인

공인 슈렉은 일반적인 왕자다움과 무척 거리가 먼, 못생긴 괴물이다. 그렇기에

외모를 중요시하는 사람들에게 적대시되고 늘 손해를 보며 외롭게 살고 있다. 또

한 아름다운 공주를 구해 선뜻 용기 있게 나서는 보통의 왕자들과 달리 슈렉은

자신의 편안한 보금자리를 지키기 위해 공주를 구하러 나서며 공주 그 자체에는

관심이 없다. 그의 파트너인 피오나 공주도 그저 예쁘고 선한, 이상적인 공주님

이 아니다. 멋진 왕자님에 대한 환상 속에서 공주병 환자인 피오나는 해가 지고

나면 못생긴 괴물로 돌변하게 되며, 위기의 순간에서는 슈렉과 망아지를 구하기

위해 우스꽝스러운 전투도 마다하지 않는 여전사이기도 하다. 이런 여러 차이점

을 찾아볼 수 있다. 어린이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애니메이션이었음에도 전통

동화와 확연히 다르다는 이유에서 슈렉은 어른들에게 더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이와 같이 슈렉은 우리가 보통 공주와 왕자하면 쉽게 떠올리는 이미지들에서 탈

피하는 부분에 그치지 않고 그들의 우스꽝스러움을 비꼬아 부각시켰다.

동화 캐릭터들을 패러디함으로써 현실적인 동화 공간의 이야기로 재창조한 슈

렉에 대해 강유정은 전래 동화의 재발견이라는 측면에서 이 영화의 장점을 인정

하고 있다. 하지만 크게 두 부분에서 생각지도 못한 문제점을 제기한다. 먼저, 슈

렉에서 바꾸고자 했던 전래동화의 엄숙성을 그저 버려야할 만한 이데올로기로

단정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전래 동화에 담겨있는 인류의 지혜는 어른에 대

한 호기심으로 어른들의 행동을 모방하고 싶어 하는 어린이들에게 세상을 살아

가는 데 필요한 암시, 훈련, 교훈을 준다. 그렇기에 전래 동화의 상상력을 낡은 것

으로 치부하는 것을 지양해야 한다고 말한다. 다른 한편으로, 한 번도 주인공이

될 수 없었던 못난이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슈렉이 클리셰를 거부하는 효과

를 강조하기 위해 웃음, 코드라는 무기를 선택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하지

만 이 웃음은 우리가 이미 갖고 있는 지식에 의해 공유됨을 전제로 하고 있다. 매

트릭스과 같은 유명한 영화의 한 장면, 빌보드 차트 등 미국의 하위문화를 알고

있지 않다면 슈렉이 의도한 진정한 웃음과 비판을 즐길 수 없다. 따라서 강유정

은 슈렉이 할리우드의 자본주의와 상업성이라는, 또 다른 이데올로기를 종용하

고 있다는 점을 재고해볼 필요가 있다고 한다. 흔히 전통 동화는 과거의 남성 중

심적 시각과 이데올로기가 반영되어 순화된 방식으로 기억되고 있다. 그런데 이

를 거부하는 영화에 환호하는 대중을 통해 슈렉은 현대의 또 다른 이데올로기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강유정 선생님이 질문하심으로써 지적하신 두 부분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동의

하는 바이다. 전래동화가 내포하는 건전한 교훈의 의미는 중요하며, 슈렉이 상업

주의를 이데올로기로서 내포하고 있다는 점 또한 영화 곳곳에서 확인 가능했다.

오스카상 시상식을 패러디한 레드카펫이 연출되고, 왕국의 입구가 할리우드의

명품 거리로 이어지는 장면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하지만 미국 대중문화를 전혀

알지 못한다는 이유로 영화의 웃음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게 되고 이데올로기

를 종용한다고 표현한 점에서는 의문이 들었다. 사전의 배경지식이 내용을 세심

히 파악하는 데에 중요한 요소이지만 필수 사항은 아니다. 문맥적 상황으로도 충

분히 웃음을 공유할 수 있다. 뿐 아니라 일반적으로 어린이와 어른의 웃음 포인

트가 다르다. 우당탕탕하는 액션씬이나 못생긴 괴물이 트림하는 장면에서 흥미

를 느끼는 아이들과 달리 어른들은 미묘한 말이나 동작, 세세한 표정에서 재미를

찾는다. 대부분의 어른들이 애니메이션을 찾는 계기는 어린 자녀들과 동반하는

경우가 많기에 어른들도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을 만들고자 매트릭스의 한 장면과

같은 할리우드 관련 장면을 연결시킨 것이라고 바라볼 수 있다. 또한 미국의 하

위문화에 대한 지식이 없기에 아이들이 슈렉을 보면서 상업성이라는 이데올로기

에 크게 좌우되지 않을 수 있다. 언젠가부터 애니메이션이라고 하면 월트 디즈니

의 것을 하나의 전형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흥겨운 음악과 함께 동화 속 공주와

왕자가 나타나 스크린 가득 감동의 로맨스 이야기를 펼쳐나가는 것이 당연하다

는 고정관념에 쌓여 있다. <인어공주>, <미녀와 야수> 등 디즈니의 동화가 일깨

워주는 동심은 어릴 적의 낭만적 판타지 그 자체였고 대단한 것이었다. 그렇기에

공주, 왕자담의 전형적인 서사구조는 동화적 결말의 해피엔딩이 현실과 거리가

있다는 사실을 잊게 했다. 여성을 남성에 순종적인 역할로 종속시키는 동화의 가

부장적 사상은 강유정 선생님이 지적하신 것과 같이 당시의 이데올로기가 반영

되면서 잘못 굳어져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대 여성들의 공주병과 (대

표적으로) 신데렐라 스토리에 대한 동경을 무의식적으로 제고하고 있음은 분명

하다. 시대가 빠르게 변화함에 따라 이에 벗어난 현대에 걸맞은 동화의 재창조가

필요하다. 외모 보다는 마음, 외형보다는 내면을 보라고 우리는 어렸을 적부터

가르침을 받지만 전래동화의 왕자들은 공주들의 아름다운 모습에 첫눈에 반하게

된다. 이처럼 겉모습이 예뻐야 한다는 사실을 외면할 수는 없다. 그렇기에 슈렉

이 신선한 동화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슈렉에도 한

계는 있다. 프린세스 스토리의 전형적 서사구조를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하고 있

다. 강유정 선생님의 글에서도 볼 수 있듯이 공주와 왕자가 항상 등장하며 왕권

계승이 문제가 되고 지위나 재산이 큰 영향을 미친다. 즉 완전히 새로운 동화의

장르를 구축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익숙한 관습에 대한 위배, 전래 동화의 엄숙

성에 대한 비판을 담은 영화 슈렉의 등장은 동화를 재해석, 재창조하는 여러 영

화가 나타나는 초석이 되고 있다. 예컨대 18년을 탑 안에서만 지낸 끈기만점의

소녀가 꿈을 이루고자 탑에 침입한 왕국 최고의 대도를 한방에 때려잡고 적극적

으로 길을 나서는 ‘라푼젤’이나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희화화한 ‘노미

오와 줄리엣’이 이에 해당한다. 슈렉이 동화 판타지의 패러디의 집합을 다루고 있

는 참신한 내용이라는 것은 슈렉이 지닌 큰 의의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