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우씨의 '달내마을' 이야기(31)
‘자연’, ‘자연스럽다’ 이 말은 언제 들어도 정겹다. 그러니까 이런 말도 다들 쓰지.
“나 언젠가는 자연으로 돌아가리.”
요즘 기온이 떨어지다 보니 집에서 할 일이라곤 땔감 마련하는 일과 그걸 쪼개는 일이다. 그러니까 우리 부부 둘이 잠잘 황토방에 불 땔 재료 준비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는 말이다.
그저께는 보름 정도 손을 놓았던 낙엽을 쓸어 모았다. 감나무 잎, 키위 잎, 뽕나무 잎은 다 떨어졌다. 그럼 마당 쓸 일은 없지 않은가. 진작에 떨어진 녀석들은 눈에 띄는 족족 다 치웠건만 그래도 구석에 숨었던 잎이 바람 불면 모습 드러내기에 치우려 갈쿠리(표준어 ‘갈퀴’)를 찾았다.
한 달 전까진 낙엽과의 전쟁이었다. 하루만 지나도 감나무, 뽕나무, 키위나무에서 떨어진 잎이 잔디밭을 다 덮었다. 낙엽이 잔디밭에 앉거나 한 곳에 자리 잡으면 별 문제가 안 된다. 그런데 바람만 불면 사방팔방 다 날리니 탈이다.
바람에 날리다 보면 그냥 그대로 두면 안 되는 곳에도 쌓인다. 물 빠짐 홈통, 평상 아래. 홈통은 막히고, 평상 아랜 썩기에. 낙엽을 치울 때 필요한 도구는 빗자루와 갈쿠리다. 쓸어야 할 곳은 쓸고, 긁어 담아야 할 곳은 긁어 담아야 한다.
물론 우리 집에는 빗자루도 여러 자루, 갈쿠리도 여러 종류다. 헌데 여러 개 있어도 자주 쓰는 건 하나다. 수숫대로 만든 수수빗자루, 댑싸리로 만든 댑싸리 빗자루, 싸리나무로 만든 싸리 빗자루, 플라스틱으로 만든 플라스틱 빗자루. 이렇게 가지가지건만 쓰는 빗자루는 하나란 말이다.
이 가운데서 나는 댑싸리 빗자루를 주로 쓴다. 가끔 싸리 빗자루를 쓰기도 하지만 역시 손에 익어선지 댑싸리가 가장 낫다. 물론 장단점이 다 있다. 잘 부러지지 않고 오래 쓰는 걸로는 본때 좀 떨어지지만 단연 플라스틱 빗자루다.
특히 '도로빗자루'란 이름의 긴 빗자루는 대부분의 관공서에서 사용하고 있으나 잘 쓸리지 않는다. 내가 근무하던 학교에서도 모두 플라스틱 빗자루였다. 이 빗자루는 뜬 쓰레기엔 쓸모 많으나 달라붙은 쓰레기엔 효과가 적다.
자연에서 얻은 제품은 거의 효능이 비슷하다. 다만 수수 빗자루는 마루 등을 쓰는 덴 효과적이나 거친 땅에선 사용하기 적당치 않다. 싸리 빗자루도 댑싸리 빗자루 못지않으나 언양 손윗동서 집에서 댑싸리 빗자루를 만들기에 늘 얻어다 쓰다 보니 내 손에 가장 익었다.
댑싸리는 자라는 모습도 예쁘다. 전원주택에선 관상용으로 일부러 키우기도 한다. 멀리서 보면 ‘금호철화(金琥綴化)’라는 이름의 선인장을 연상케 한다. 댑싸리는 또 잘 크는 데다 대부분 모양이 이뻐 바로 빗자루로 만들 수 있다. 그에 비해 싸리비는 빗자루 감을 골라야 한다.
학교 근무할 땐 청소 담당구역을 일부러 야외를 택했다. 청소 시간만이라도 제대로 된 공기를 맡아보고자 함이다. 맡은 일은 쓸기다. 헌데 아이들은 좋아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비질을 싫어한다. 그러니 늘 게으름을 피우고, 나는 야단치고.
하기 싫으니까 하는 말이 “선생님, 비가 안 쓸려요!” 한다. 퍼뜩 떠오른 생각에 집의 댑싸리 빗자루를 갖고 와 쓸어보라고 했더니 “야, 이게 뭐예요? 이건 대박인데요.” 그 뒤로 여섯 명의 아이들은 댑싸리 빗자루를 차지하기 위해 빨리 나오기 경쟁을 했다.
잔 나뭇가지나 덩굴식물 처리할 때는 빗자루보다 갈쿠리가 필요하다. 갈쿠리 역시 자연에서 얻은 제품과 그렇지 않은 제품으로 나뉜다. 대를 휘어 만든 대나무 갈쿠리가 전자라면, 철사로 된 철사 갈쿠리나 플라스틱 갈쿠리는 후자에 속한다.
갈쿠리를 쓰다 보면 왜 자연에서 얻은 게 좋은지 바로 알 수 있다. 평평한 땅에서는 대나무든, 철사든, 플라스틱이든 차이가 없다. 허나 땅이 어디 그런가, 울퉁불퉁한 데도 많다. 이럴 때 철사나 플라스틱 갈쿠리는 똑같은 높이로 긁으니 패인 곳은 긁지 못한다. 휘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허나 대갈쿠리는 다르다. 신기할 정도로 잘 긁어지는 데다, 패인 곳은 물론 패이지 않은 곳에 있는 잎사귀까지 깡그리 다 쓸어내준다. 바로 대나무의 탄력성 때문이다.
혹 힘이 약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하기 쉽다. 생각에는 힘을 줘 당기면 금방이라도 부러질 것 같다. 허나 잠시 변형을 이루었다가 이내 제 모습을 찾는다. 물론 철사갈쿠리의 단단함에는 못 미치지만…
‘자연’, ‘자연스럽다’는 말은 그냥 나온 말이 아니다. 그냥 머릿속으로만 ‘자연’에서 얻은 산물들이 더 낫지 않을까 하다가 실제 써보면서 정말 ‘자연스럽다’는 말의 뜻을 알게 된다.
우리 선조들의 참 경험에서 나온 알찬 단어다.
*. 사진은 모두 구글 이미지에서 내려받았습니다.
*. 오늘 글은 2021년 12월 28일 올렸는데, 다시 싣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