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39편 : 잘랄루딘 루미 시인의 '옳고 그름의 생각 너머'
ㅡ@. 오늘은 이슬람 문학계 전설적 시인 ‘잘랄루딘 루미’의 시를 배달합니다.
옳고 그름의 생각 너머
잘랄루딘 루미
옳고 그름의 생각 너머에 들판이 있다.
그곳에서 당신과 만나리라.
영혼이 그 풀밭에 누우면
세상은 너무 충만해 말이 필요 없고
생각, 언어, 서로라는 단어조차
그저 무의미할 뿐.
- [마음 챙김의 시](2020년)
#. 잘랄루딘 루미(1207 ~ 1273년) : 이슬람 문학에서 ‘신비 시’의 획을 그은 시인으로, 태어난 고향은 아프가니스탄이나 튀르키예와 이란을 옮겨 다니며 생활하였는데, 성장 과정에서 이슬람 율법학자인 아버지의 가르침을 받음.
1244년 종교를 초월한 떠돌이 늙은 수도승 ‘샴스 우딘 타브리즈’와 운명적으로 만나 불과 며칠 만에 내적 혁명을 경험. 이후 시인으로 변모해 죽을 때까지 수많은 시를 통해 ‘세상에 나 아닌 것은 없다’라는 자신의 영적 깨달음을 노래함.
<함께 나누기>
우선 이 시 읽으면 고개를 갸우뚱할 겁니다. 지금부터 800년 전쯤의 시인데 현대시인이 적었다 해도 믿을 정도로 수준 높습니다. 대체로 그맘때의 시는 읽으면 막힘 없이 쉬 들어오는데 이 시는 그렇지 않습니다. 생각거리를 많이 던지니까요.
시를 읽고 혹 고승들의 ‘선시(禪詩)’를 떠올릴 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어느 종교든 극에 이르면 통한다고 했으니까요. 오늘 시는 한 번쯤 읽으신 분들이 꽤 될 겁니다. 왜냐면 류시화 시인이 엮은 시집 [마음 챙김의 시]에 들어 있기에.
시로 들어갑니다.
‘옳다’와 ‘그르다’는 명백히 다릅니다. 그러니까 옳다고 생각할 때는 옳다고 말해야 하고, 그르다고 여길 때는 그르다고 답해야 합니다. 그런데 가끔 애매할 때가 있습니다. 옳기도 하고 그르기도 한 경우는 없을까요? 이렇게 보면 옳지만 저렇게 보면 옳지 않은 경우는 또.
「옳고 그름의 생각 너머」란 제목에서 느낌이 확 오지요. 옳고 그름을 구분 짓자는 그런 편협한 사고에서 벗어나자란 뜻으로.
요즘 들어 우리는 무조건 이분법(흑백논리)으로 사안을 정의하려 합니다. 이것이 옳으면 저것은 옳지 않다고. 이러한 이분법은 어떤 상황을 긍정과 부정, 옳음과 그름이란 두 가지 극단적인 양분된 시각으로만 보려 하다 보니 문제가 생겨납니다.
이는 중립적인 입장을 허용하지 않고, 현실은 무수히 복잡한데 이런 사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아 종종 편견과 오류를 동반합니다. 이런 오만이 어디 있습니까. 설명할 수 없는 오묘한 운명의 장난이 많이 일어나기도 하며, 여러 다른 생각들이 모여 꾸려나가는 이 세상을 어떻게 이쪽저쪽만으로 판단할 수 있을까요.
“옳고 그름의 생각 너머에 들판이 있다”
옳고 그름이라는 이분법에서 벗어나면 아득히 넓은 들판이 있건만 우리는 거기를 벗어나기보다 얽매이려 합니다. 흔히 말하지요, '나무는 보되 숲은 보지 못한다'라고. 아니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정말 숲을 제대로 보기는 하였을까요?
“그 풀밭에 누우면 / 세상은 너무 충만해 말이 필요 없고”
옳고 그름의 생각 너머에는 새로운 세상이 있다고 시인은 노래합니다. 그곳에 가면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다고. 말은 말을 낳습니다. 꼭 필요한 말만 하면 되는데 자기주장을 내세우는 말만 강력해집니다.
남의 말은 말이 아닙니다. 나의 말만 말입니다. 오직 귀에는 나와 같은 뜻의 말만 들려옵니다. 그런 말이 과연 필요할까요? ‘남의 생각’, ‘남의 말’은 필요 없고 ‘서로’라는 단어조차 그저 무의미한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게 올바른 세상일까요?
이분법으로 갈라진 세상에선 모두가 창을 들고 있습니다. 방향은 내 편이 아닌 저편을 향해서. 이 창은 남을 찌르려고 하지만 나를 찌르고, 나의 가족을 찌르고, 나의 벗을 찌르고, 세상을 찔러 어지럽게 만듭니다.
800년 전의 시인은 현재 우리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분법, 좌파 우파와 진보 보수로 갈려 오직 자기만 옳다고 주장하는 일을 예측이나 했을까요? 트럼프가 민주주의도 공산주의도, 내 편 네 편 없이 미국 외의 다른 나라를 다 적으로 돌리는 세상이 오리라고 예측했을까요? 놀랍습니다. 선지자(先知者)의 지혜가 담긴 듯하여.
자신만이 옳다는 생각을 버릴 때 다른 사람도 틀리지 않게 되는데. 그래야 우리는 한쪽, 하나, 한곳이 아닌 모든 것이 되는데. 옳고 그름의 생각 너머에 있는 들판으로 가고 싶습니다. 그런 들판에선 무슨 꽃이 피고 무슨 동물이 뛰놀고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