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敵)과 적(賊)

목우씨의 '두줄시'(제8편)

* 적(敵)과 적(賊) *



참새는 나락, 다람쥐는 밤, 고라니는 근대, 멧돼지는 옥수수 먹어치워도 한때의 적,

종교로 영토로 이념으로 싸우는 인간은 한 번 수틀리면 영원한 적.


*. 敵 : 대적할 '적'

*. 賊 : 도적 '적'




<함께 나누기>


어제 농부가 애써 가꾼 잘 익은 나락을 참새 떼가 몰려와 까먹어 열불 난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습니다. 어디 참새뿐인가요, 다람쥐 녀석은 밤이 익기 전에는 밤밭에 드나들지 않다가 익어 떨어지면 주인이 줍기 전에 먼저 챙겨갑니다.

고라니가 가장 좋아하는 남새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물론 고구마 줄기를 참 좋아합니다만 텃밭을 제법 오래 한 경험에 따르면 ‘근대’입니다. 근대 다음으로 ‘아욱’도 좋아하고. 콩잎도 배추도 무도 좋아합니다만 근대나 아욱이 밭에 있다면 무조건 뿌리만 남기고 다 먹어치웁니다.


멧돼지도 고구마를 좋아합니다만 선호도 으뜸은 옥수수입니다. 그래서 산골짜기에는 옥수수를 심지 말라고 하지요. 뿐 아니라 두더지는 땅콩, 감자, 고구마를 마구 먹어치웁니다. 특히 땅콩밭에 두더지가 들면 단 하나도 남겨두지 않습니다.

참새, 다람쥐, 고라니, 멧돼지, 두더지가 애써 가꾼 농작물을 작살내도 잠시 한때뿐입니다. 딱 그 계절만 그리 한다는 말입니다. 게다가 피해를 줘도 시간 지나면 녀석들의 행패(?)를 곧 잊어버립니다. 나락 보고 날아든 참새에게 돌을 던질 때도 있지만 그때뿐이란 말이지요.


사실 농작물 수확에서 야생동물로 인한 피해보다 자연재해로 인한 피해가 훨씬 더 크니 녀석들의 행패(?)를 물을 처지도 못 됩니다.




몇 년 전 일입니다. 콩을 심어 싹이 올라올 즈음이면 까치가 어떻게 알았는지 처음 갓 머리 내민 콩싹을 보고 그 주변을 파헤칩니다. 그런 뒤 머리 내밀기 전의 콩을 골라 파먹습니다. 왜냐면 싹이 오르면 먹을 수 없으니까요. 아무리 콩이 맛있다고 하더라도 싹이 돋은 콩을 먹을 리야... 그럴 때마다 콩밭 주인인 가음댁 할머니와 까치가 전쟁을 벌입니다. 냄비를 두들기거나 돌멩이 던지거나.. 그렇게 애써 싸우다가 싹 돋으면 끝.


그 해 겨울 눈이 억수로 내린 날, 하루는 우리 감나무 위의 까치집을 보더니 이리 말하더군요.

“아이구 저 소상들, 눈 때문에 먹을 기 없어 우째 사는고. 선상님요, 무슨 방법 없겠십니꺼?”

그렇게 싸웠지만 상대가 힘든 처지에 놓이자 베푸는 마음을 갖는 게 짐승과 사람 사이엔 가능한 일입니다.




헌데 우리 사람 사이는 어떻습니까? 요즘 헤즈볼라 무선호출기에 이스라엘이 장치한 폭탄이 터져 많은 사상자를 냈다는 뉴스가 떴습니다. 헤즈볼라(이슬람) 이스라엘 갈등의 밑바닥에는 종교 대립이 있지요. 누군가는 이렇게 말하더군요. 저 전쟁은 지구 종말까지 갈 거라고.

나라와 나라 사이의 영토 분쟁으로 얼마나 많은 나라가 전쟁을 일으키고 현재도 하는지요. 그런 뉴스가 끊이지 않고 지금도 텔레비전을 뒤덮습니다. 2020년대 들어서도 코스타리카와 니카라과,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 중국과 인도...


적(敵)과 적(賊)의 다른 점은 ‘敵’은 아군이 될 수 있으나 ‘賊’은 영원히 반대편에 설 수밖에 없다는 데 있다고 봅니다. 敵은 '자신과 대립하는 상대방'이란 뜻을 지닙니다. 해서 전쟁의 상대편을 가리키지만 운동 경기에서는 경쟁의 상대자를 가리키기도 합니다.

그에 비해 賊을 파자(破字)하면 무기를 들고(戎 : 무기 ‘융’) 재물(貝 : 조개 ‘패’)을 훔치는 무리가 됩니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강도입니다. 賊에겐 단 한 치의 아량도 배려도 없습니다. 오직 상대를 무너뜨려 내 것으로 만드는데 목적이 있을 뿐.




그럼 우리나라에서 서로를 잡아먹을 듯이 피 터지게 싸우는 진보와 보수 같은 이념 대립은 ‘적’ 가운데 어디에 속할까요? 언뜻 보면 賊이 아니라 敵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처음엔 敵이었을지 모르나 지금은 賊입니다. 상대를 무너뜨리는데 목적을 둠으로.

명분은 이념의 대립이지만 밑바닥엔 개개인의 신념보다 내 것을 빼앗기지 않고 남의 것을 빼앗고자 하는 욕심이 깔렸다고 봅니다. 두 진영에선 이념은 신념이라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정권과 권력을 쥐려 함에 목적을 뒀다는 사실 모르는 사람 있을까요.


오늘 짐승과 인간 사이,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敵과 賊을 들춰보았습니다. 어디까지나 제 생각일 뿐 옳다는 뜻은 아닙니다.


*. 첫째 사진은 잣 까먹는 다람쥐, 둘째는 멧돼지가 고구마밭을 원래 뭘 심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작살낸 흔적, 셋째는 무선호출기 폭발로 헤즈볼라 사망자 37명, 부상자 약 3000명[뉴시스 9.18], 넷째는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에서 가장 피해를 본 어린이 모습[경향신문](2022년 3.13)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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