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편 : '허공에 서다'
♤ 목우씨의 두줄시(11) ♤
- 허공에 서다 -
발 디딘 아래는 천길 낭떠러지
버티고 서 있기가 참 아프다
<함께 나누기>
언젠가 고층빌딩 아래를 지나가는데 길가는 사람들이 모두 위를 쳐다보고 있어 저도 고개를 들어 보았습니다. 세상에! 그 높은 빌딩에 사람 둘이 매달린 채 무슨 일인가 합니다. 가만 보니 유리창을 닦고 있더군요.
한 사람이 겨우 엉덩이 붙일 정도의 안전의자를 조금씩 옆으로 아래로 이동해 가며 닦는 모습에 저절로 제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갔습니다. 바람 한 점 없어도 그 정도 높이에선 흔들리는데 그날따라 조금 세게 부는지 사람이 왔다 갔다 하는 모습에 더욱 땀이 났고.
좀 더 오래 보고 싶었지만 너무 아슬아슬해 결국 빨리 지나쳤습니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저는 절로 두 손이 모아졌습니.
“하느님, 정말 고맙습니다. 제게 저 직업 안 갖게 해 줘서 너무너무 고맙습니다.”
제법 멀리 떨어져 그쪽을 바라보니 이제는 매달린 존재가 사람인지 물체인지 모를 정도로 작아졌습니다.
우리나라 최고 123층(555m)인 롯데타워에도 한 번씩 창문을 닦는다 합니다.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높은 그곳에 누군가는 올라가야 합니다. 창문 개수만 4만2천 장이라는데 누군가는 닦아야 합니다. 또 그 일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롯데타워만큼 높지 않은 5층만 돼도 곤돌라에 의지해 작업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저 같은 사람은 돈 아무리 준다 해도 엄두도 내지 못할 일. 사람이 가장 공포를 느끼는 높이가 11m(5층 정도)라 합니다. 그러면 그 이상은 나을까요? 아뇨, 공포감은 그보다 더 높아도 줄어들지 않는다고 합니다.
우연히 까마득한 허공 좁은 발판에 디디고 서 작업하는 노동자들을 그린 그림을 보았습니다. 창작할 솜씨는 없어도 베낄 능력은 있는지라 펜을 잡고 따라 그렸습니다. 그리면서 솔직히 손이 떨렸습니다. 마치 제가 그 자리에 선 듯하여.
한때 뉴스를 달궜던 부산 모 중공업 타워크레인에 올라가 고공농성하던 노동자도 텔레비전에서 보았습니다. 어릴 땐 럭키회사 굴뚝 청소하러 꼭대기로 오르던 사람도 보았습니다. 그땐 초등학교 다니던 때라 얼마나 무서웠는지...
우리네 삶엔 늘 고비가 있습니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고, 내리막이 있으면 오르막이 있다고 들으며 삽니다. 헌데 오르막뿐인 삶이라면? 늘 허공에 매달려 밧줄 하나에 매달려 살아야 한다면? 희망이 보이지 않는 삶이라면?
주변에는 오르막만 있는 사람들이 꽤 보입니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다는 말은 산을 오르는 사람들에게나 쓰는 말인 듯이 여기는. 할딱고개를 넘으면 평지가 나오는 줄 알았건만 웬걸 더 심한 깔딱고개가 기다리고, 깔딱고개 넘는다 하여 정상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저께 소설가 한강의 수상 소식이 들려오기 전에 사실 몇 신문사에서 우리나라 문인 가운데 노벨문학상 받는다면 누가 가장 가까울까 하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습니다. 거기서 본 이름이 ‘김혜순 시인’. 이분은 현재 외국에 가장 많이 알려진 우리나라 시인이랍니다. 해외 유명 시문학상을 여러 번 받아 주목받는 시인이기도 합니다.
그분의 시 가운데 「고층 빌딩 유리창 닦이의 편지」 일부를 옮기면서 마무리 짓습니다.
“해가 지는 아침에 / 유리산을 오르며 / 나는 바라봅니다. / 깊고 깊은 산 아래 계곡에 / 햇살이 퍼지는 광경을// 해가 뜨는 저녁엔 / 유리산을 내려오며 / 나는 또 바라봅니다.
(중략)
이윽고 두 개의 밤이 오면 / 나는 한 마리 풍뎅이가 됩니다. / 그리곤 당신들의 유리창문에 달라붙었다가 / 그 창문을 열고 / 들어가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