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즈음 마을 한 바퀴 길엔 온 들판이 가을꽃으로 가득하다. 눈엔 가을빛이, 코엔 가을내음이 무시로 들어온다. 고개 한 번 돌리면 쑥부쟁이, 구절초, 취(나물)꽃, 산국, 오이풀, 바위솔, 해바라기, 조개풀, 고들빼기, 억새…
보면 절로 손이 가 만지고 싶어 진다. 아니면 코 갖다 대 냄새 맡아보든가. 지나가다 이쁜 애기 보면 손 한 번 잡아보고 싶은 마음 같다고 할까. 가을꽃 가운데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역시 이 계절 귀요미 코스모스다. 코스모스(cosmos)란 이름에 걸맞게 온 '우주'를 뒤덮고 있다.
코스모스란 말에는 우주 말고도 ‘질서’란 뜻도 담겨 있어 ‘혼돈’을 뜻하는 카오스(kaos)와 대립된다. 그러니까 원시 지구의 혼돈 상태를 코스모스가 피면서 질서가 유지되어 안정됐다는 식으로 읽으면 될까.
달내마을에도 코스모스가 만발한 곳이 있다. 아랫마을로 내려가면 빨강, 분홍, 하양, 자주가 알맞게 섞여 그저 바라봄만으로도 평화롭다. 헌데 거기는 길가도 아니고 풀밭도 아닌 논이 주욱 펼쳐진 곳이다. 즉 코스모스 만발한 곳이 논이라는 말. 논에 코스모스라니?
재작년 이맘때는 벼가 황금물결을 이뤘건만 올핸 코스모스로 그득한 꽃밭이 됨은 그곳을 전원주택지로 만들려 논을 갈아엎었기 때문. 땅의 형질을 새로 바꾸면 꽃도 바뀐다. 한 예로 봄엔 망초꽃, 여름엔 달맞이꽃, 가을엔 코스모스가 핀다고 보면 된다.
우리 마을뿐 아니라 주변 ‘머든마을’ ‘늘밭마을’에서도 몇 년 전부터 삽차 - ‘포클레인’의 우리말 순화어 - 엔진 소리가 요란했다. 대낮에 낮잠 한 번 자려고 해도 방해될 정도로. 그 소리가 그치자마자 논, 밭, 산이 택지로 바뀌었고.
바로 시골 토박이들이 사정상 자기 생명 같은 땅을 팔 수밖에 없게 되자 낌새를 챈 부동산업자가 하나둘 드나든 결과다. 그 땅을 헐할 때 사들인 뒤 토목공사 조경공사 해서 팔려고 다시 내놓는다. 허면 땅값이 예전보다 높아질 터.
모르긴 몰라도 우리 마을 땅의 2/3 이상은 울산 등 도시 사는 이들에게 넘어갔는데 그중에도 부동산업자들 손에 들어간 게 꽤 된다. 개인에게 넘어간 땅이라면 그래도 괜찮다. 다시 마을 사람들에게 논에 벼를 심도록 하고 밭에 농작물을 심게 해 주니까.
이분들이 시골땅을 산 목적이야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대체로 나중에 직장 은퇴할 즈음 들어올 생각에서라 본다. 주말마다 와서 농사짓는 이도 몇 있지만 극소수. 그러니 자기들이 들어올 동안만이라도 마을 어른에게 농사짓도록 맡긴다.
허나 부동산 업자들에게 넘어간 땅은 다르다. 언제 팔릴지 모르기 때문에 농사짓게 해주지 않는다. 혹 짓게 해 주더라도 채 거두기도 전에 다른 주인에게 넘어가면 죽 쑤어 개 주는 꼴이 되니 그런 땅은 먼저 토박이가 피한다.
처음에는 삽차로 곱게 다듬어 상품 되게 만드는데 부동산 경기가 안 좋으면 쉬 팔리지 않아 시간 지나면서 풀꽃이 자리 잡는다. 마을 한 복판에 코스모스 꽃밭이 형성된 까닭도 거기 있다. 하필 거기 코스모스가 깔린 이유는 모르겠지만. 집이 들어섰다면 달라졌을 터.
택지로 닦은 채 놔두면 한두 해는 몰라도 해가 갈수록 보기 흉하다. 가끔씩 들러 예초기라도 돌리면 나으련만 그냥 둔다. 내 땅인데 하며. 벼나 밭작물 대신 잡초가 자라도록 내버려진 논과 밭도 보기 흉하지만, 더욱 볼썽사나운 건 산을 깎아 택지로 닦아놓은 곳이다.
논과 밭에는 코스모스ㆍ 개망초ㆍ 쑥부쟁이가 자라지만, 산을 개발한 곳은 그냥 맨흙이 다 드러난다. 이런 곳은 비 많이 오면 큰일이다. 산사태의 위험은 물론 미관상 보기도 좋지 않다. 누런 흙빛이 그냥 드러나 조금 무섭기까지 하니.
오가며 볼 때마다 누구든 진짜 필요한 사람들이 빨리 땅 사서 집을 짓는다면 좋겠지만 얘기를 들어보니 쉬 나설 것 같지 않다. 부동산 업자가 만든 택지는 그들이 샀던 가격보다 훨씬 높은 값이 매겨져 있어 당연히 팔기가 쉽지 않다.
오늘 글이 택지 조성한 뒤 내버려 둔 곳에 코스모스가 피어있다는 식의 주제를 잡았으니 코스모스에 대한 좋지 않은 점도 적어야 하는데... 볼 때마다 이쁘니 주제와 어긋난 방향으로 치달음을 어찌할까. 마치 여성해방운동의 기치를 올린 입센의 [인형의 집]처럼.
입센은 처음 신문에서 남편의 이중적 태도에 반기를 들고 가정을 버리고 뛰쳐나온 '노라' 닮은 여자에 대한 기사를 읽고 분노했다고 한다. ‘어디 남자가 좀 실수했다고 여자가 집을 나가! 비록 남자가 잘못해도 모른 척해야지. 그만 일로 집을 나가! 이런 여자는 본때를 보여야 해.’ 하는 마음에서 펜을 잡았다.
헌데 소설을 써나가면서 주인공인 노라를 사랑하게(이해하게) 되면서 전혀 다른 내용의 글이 되었고, 그 덕분에 여성해방 소설의 효시로 추앙받는다.
오늘 나도 벼가 자라야 할 논에 핀 코스모스를 나쁘게 묘사하려 했는데 끝이 다가올수록 사랑에 빠져 처음 의도완 달리 어긋난 길로 간다. 코스모스는 한 가지 빛깔로만 모여 피는 경우는 없다. (다만 지자체에서 인위적으로 만든 경우는 제외)
하양 노랑 분홍 자주, 아니면 두 가지 색이 섞인 빛깔로 꽃이 핀다. 그 모습 보면 역시 꽃은 여러 빛깔이 어우러져 피어야 더 아름답다고 느끼게 되니. 그런 점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여러 인종, 여러 성격, 여러 신분의 사람들이 어울려 행복하게 잘 살라는 뜻으로.
게다가 코스모스의 아름다움은 바람이 불 때 더 빛난다.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리는 모습을 보고 우리말 '살살이꽃'이라 이름 붙였는데 정말 잘 어울린다. 그 흔들림이 단순히 겉모습의 아름다움에 그치지 않고 줄기 허약한 코스모스가 바람에 견디는 힘도 된다.
이러니 내가 코스모스를 미워할 수 있을까?
*. 마지막 사진은 하동군 북천면 '코스모스 메밀꽃 축제장' [경남연합일보](2023년 9월 26일)에서 퍼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