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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책이 Sep 20. 2024

#엄마1 -엄마구독료

같은 엄마, 다른 엄마 (짧은 에세이적소설 모음집) 

#1


"딸랑" 

"나 왔어~"

신발을 벗기도 전에 보이는 건 현관문 앞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상자 한 꾸러미.  

각종 채소들과 과일들이 질서 정연하게 담겨 있다. 단단한 것들은 아래에 그 위로는 깨지기 쉬운 계란과 

나물 종류들이 한 주먹씩 담겨 봉지에 소분되어 있다. 

제철과일과 채소들을 챙겨 먹을 수 있는 건 일주일에 한 번 정기적으로 셀프배송받는

엄마의 시장표 상자  꾸러미 덕분이다. 

부담스러우면서도 고맙고, 이걸 다 어찌먹나 하면서도 마음편히 들고 갈 수 있는 건 

달마다 엄마에게 보내는 용돈을 가장한 '먹거리 구독료' 덕택이다. 


딸에게 해주고 싶은 건 많지만 경제적으로 여력이 안되는 엄마를 위한 배려. 


내 돈으로 엄마가 내게 주고 싶은 먹거리를 장만하면, 서로가 부담없을 거라는 계산으로 건넨 '구독료' 

물론 구독료 안에는 엄마의 사랑의 노동값도 포함되지만  아빠 모르게 모을 수 있는 예비비까지 계산했다. 

일부로 2주에 한 번 엄마집을 찾아가기도 한다.  넉넉히 엄마가 사적으로 돈을 썼으면 하는 마음에서. 

그리고  엄마에 대한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서다. 


가까이 산다고 자주 보면 탈나는게 우리 관계다.

서로가 조금 애틋해지기 위해서는 한동안은 보지 않는 휴지기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순식간에

초심을 잃어버린다. 내가 그려왔던 '이상적인 엄마'를 찾다 대화 도중 엄마에게 미친듯이 화를 내다 친정에서 도망치듯 나온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초심은 단순하다. '내가 바라는 이상적인 엄마는 없다'

지난한 과정을 거쳐 난, 마음속에서 엄마에 대한 '재 정의'를 내렸다. 

내가 그리워하고 보고싶어하는 '엄마'는 이상적인 엄마일 뿐. 

현실의 엄마와 다르다는 걸. 그런 엄마는 없다는 걸. 

이 사실을 스스로 받아들이기까지 수많은 시간을 엄마랑 싸웠다. 


엄마에게 절대로 용납되지 않는 내 기호와 가치관들은 의외로 많다. 그렇다고 내가 잘못한 건 아니라고 스스로 인정하기까지도 참 오래 걸렸다. 엄마의 심리적 통제에서 벗어나기까지 내 20대와 30대의 반절을 보냈음에도 여전히 내 초심은 심지가 얕고 자주 흐트러진다. 

30대가 되도 여전히 엄마를 미워하다니. 


그래도 경제적 독립을 이뤄냈기에 이 초심은 지킬 수 있다. 그리고 나만의 방식대로 엄마를 향한 사랑을 표현하는 건 매달 꼬박 꼬박 자동이체되는 '엄마 구독료'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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