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이야기 #연작소설 #겁보선생님 #에세이적소설 #눈 온다고요
우다다다다다다 -
1층에서부터 다급하게 들려오는 이 소리는 분명 우리 반 아이다.
한 번도 쉬지 않고 와다다다 계단을 올라오는 이 발소리는 분명 그 아이다.
항상 신나게 뛰어오는 그 소리 덕분에 나는 교실에서 적어도 30초 동안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다.
오는구나-
실내화도 갈아 신지 않은 채, 교실 앞문을 활짝 연 그 아이는 나에게
큰 소리로 외친다.
"선생님! 눈 와요!"
언제나처럼, 한결같은 모습으로 반겨준다.
"00이 왔구나~"
" 눈 온다니까요 눈 와요!"
새벽부터 온 눈, 세상 사람 다 알고 있는 그 사실을
빠르게 알리고 싶어 우다다다다 뛰어왔을 그 아이가 흥미롭다.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는 눈을 모를 리 없다.
난 너보다 한참 전에 일어나서, 한 시간 가까이 출근했단다 ^_________^
속으로 혼잣말하니라 잠시 멍을 때렸나 보다. 2초?
"쌤!! 눈이 온다고요!!"
한참이나 자랑한다. 등굣길이 마치 소인 영웅담이다.
바람이 많이 불었다, 눈이 펑펑 온다, 장갑을 꼈다, 모자도 챙겨 왔다 등
3월 첫날, 콧방귀를 뀌며 여자 선생님은 싫다던 그 아이는
학교에서 마음대로 안 되는 일 투성이었다.
그래서 1년 동안 울기도 많이 울고, 화도 실컷 내보고
소리도 질러보고, 구석에 들어가 한참 웅크리기도 했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웅크리고 어디에 들어가 있어도, 그 아이 귀는 항상 쫑긋이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엿듣는 것처럼,
자기에게 관심을 언제 줄지 기다리는 것처럼 있었다.
억지로 아이를 저 안에서 꺼낼 수도 없고
그렇다고 무작정 혼을 내기에도 버겁고
다른 애들에게 낙인이 될 텐데 걱정이 되면서도
실질적으로 교사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는 걸
체감하면서
꿋꿋하게 수업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수업이 재밌어 보이면, 흥미로워 보이면
이제는 책상 아래에서, 청소함 안에서 알아서 나온다.
꼭 티를 내면서 나온다.
" 저 알아요! "
" ~거 아니에요?"
때로는 무관심이 그 아이에게 통했고
때로는 힘주어 이야기하는 게 통하기도 했고
때로는 호소가 통하기도 했다.
그래도 어찌 됐건
언제나 매일 아침, 우다다다다다- 올라오는 걸 보면
기분 좋게 등교하는 그 아이도 기특하다.
깜빡하고 잠바를 두고 하굣길 지도를 하던 날,
유일하게 그 아이는 "제가 가져올게요!" 하면서 뒤도 안 돌아보고
내 잠바를 찾으러 갔다. 어딨 는지도 모르면서 달려가는 그 아이를 보며
아무도 나를 기억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속으로 애원하던
슬픈 교사의 마음이 조금은 사라졌다.
너는 나를 기억 못 해도
그래도 나는 내 잠바를 찾으러 가는 네가 기억날 것 같다.
엄하게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는다.
항상 힘주어 이야기한다고 표현한다.
엄한 선생님은 민원의 위험이 있으니까.
쫄보, 겁보, 울보 다 된 경력 10년이 넘어가는 교사라
눈이 와도 애들과 쉽게 운동장에 나가지 못한다.
이 와중에,
감기 걸린 아이가 눈에 보이고,
장갑이 없는 아이들이 보여서
덜 따뜻하게 입은 아이들이 눈에 걸려서 나갈 수가 없다.
여기서 한 명이라도 감기가 악화되거나, 감기에 걸리면
감당할 수 없는 민원이 들어올까 봐
이미 난 겁에 질려있으니까-
그런 비슷한 일을 너무 많이 겪었으니까-
하루종일 내 옆에서 밖에 나가 놀자고 하던 어제의 그 아이는
휴교령이 내려진 오늘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나보고 내일 눈 안 오면 어쩔 거냐고 따지던 그 아이는
오늘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내일도 눈이 오면 눈사람 만들기하자.
근데 조건은 장갑, 따뜻한 옷, 감기 걸린 친구들은 마스크까지 따뜻하게 안 입으면 안 돼!라고 말했는데..
눈오리 가져와도 되냐, 털모자 써도 되냐, 목도리 해도 되냐, 귀마개 해도 되냐는
정말 어린아이 같은, 아니 정말 어린아이들의 질문을 받았다.
근데, 오늘은 학교를 갈 수 없었다.
출근하다 객사할 수 있겠다 싶을 정도로 눈이 많이 내린 오늘.
빨리 휴교령을 내려줘, 도로에 갇히지 않게 해 준 학교에 감사하며 글을 쓴다.
한국은 교사를 너무 많이 미워하는 것 같아 서글프지만
그래도 난 내일 출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