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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일권 Nov 22. 2024

이제 그만 酒님과 헤어지려 합니다

고래가 사는 세상

새벽녘 해장 삼아 캡슐커피 두 잔을 연거푸 마시고 나안개 낀 앞산이 한심스럽다는 눈초리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래 나도 아방가르드의 삶을 살아보고 싶었는데 세파에 길들여 지내다 보니 내가 누구인지, 지금 어디에 있는지도 잘 모르는 나라고 속으로 소리치고 말았다. 그러기에  이제는 그냥 세상 한구석에 웅크리고 조용히 살다 거라고 앞산 신령에게 전하고 나니 아침부터 긴한 숨만 짓게 되는 날이다. 어제도 한잔 했지만 그나마 술자리를 함께 했던 친구들 마저 점점 술과 멀어지는 걸 보면 그들도 기운이 다한 듯 이젠 나도 어쩔 수 없이 혼술의 세계로 들어갈 준비를 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집에서 혼자 마시는 술, 그 모습을 상상하니 궁상맞기도 하고 정신 사나울 것도 같았다. 그렇다고 밖에서 마시자니 그럴만한 장소를 찾기는 어려울 거라는 생각이 앞선다. 주모와 시시덕거리며 농담 짓거리를 나눌 수 있을 것 같은 시골마을 주막 같은 곳이 남아있기나 한지는 모르지만 생각만으로도 그립고 부럽다.  이럴 때 일본처럼 동네 어귀에 붙은 조그만 이자카야(居酒屋) 같은 그런  술집이 있으면 혼자 가서 아무 말 없이 마실 수 있을 텐데 라는 생각이 들어 그런 게 아쉽다. 일본 이자카야에 가면 혼자 무표정하고 시무룩한 얼굴로 외로이 술잔과 친구 하며 대화를 나누다 조용히 사라지는  그런 낯선 습들을 본 적이 있는데 그런 곳에서 혼자 마시는 술은 힐링도 되고 마음도 안정된다고 들었. 앞으로는 10년 이상 젊은 친구들과 사귀도록 노력해 보라는 일본 친구의 조언, 크게 와닫지는 않았지만 그러고 싶지 않은 노땅들이 어디 있겠는가. 더위를 피하려 지하철로 몰렸는지는 몰라도 노인들의 신음 소리에 섞여 함께 보냈던 지겨운 여름이었다. 그러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갑자기 느껴지는 한기가 독한 술 한잔 생각나게 만드는 계절로 만들어 버렸다. 그러다 보니 모든 게 춥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뭔가 허해지는 이유는 지난날 名酒들과 함께했던 기억 때문일지도 모른다.  귀티 나고 화려한 자태의 아름다운 술병들 이젠 그들과 가까이하기엔 벅찬 상대이기에 모두와 헤어졌다고 볼 수밖에 없다. 예전엔 이술이 어디서 온 건지 이름이라도 알아본 뒤 혀끝으로 그 감촉을 느껴 보았지만 이제 친구들 모임에서  어쩌다 마주치게 되는 경우 허겁지겁 그 맛을 음미할 여유도 없이 바삐 입안에 털어놓고 마는 나였다. 내 곁에 머물던 수많은 들, 멋과 맛만 남기고 점점 추억 속으로 사라져 다. 아직 몇몇이 장식장을 채우며 그 자태를 뽐내고  있지만 미이라나 마찬가지인 투탕카멘 같은 존재라 눈으로만 바라볼 뿐 차마 건드리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결국 만만한 조강지처인  두꺼비만 찾게 되는 요즘이지만 새해에는 그와도 별거나 졸혼을 생각하고 다. 혼술 하는 것도 마음에 내키지 않지만 그렇다고 건강을 위해서는 아니다. 모든 게 위축되고 시들해지는 기분 때문일지도 모른다. 일 년 정도 휴지기를 갖는 것이 내게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궁금하고 과연 술과 헤어질 수 있는지를 시험하려는 거다. 계절이 변할 때마다 점점 심하게 느껴지는 내 몸의 파열음 속에서 이제야  디오니소스나 바쿠스를 뇌까리며 그들과도 가능한 멀리 떨어져 점차 잊으려 다. 어찌 됐던 모두와의 이별을 생각하다 보니 이제 내가 누울 자리는 어디가 될지 모르지만 집에서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한 해의 마지막 장이 되었다. 그러면서 기왕이면 눈 덮인 추운 겨울날 벽난로에 기대어 술 한 모금 머금 조용히 퇴장하고 싶은 꿈은 꼭 간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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