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쫀쿠로 보는 우주의 수축

에크파이로틱 우주론

by 헤론 베누

힉스 입자를 알고 있는가? 신의 입자, 또는 빌어먹을(Goddamn) 입자라고 불리는 그것 말이다. 힉스 입자는 물체가 질량을 어떻게 얻는가에 대해 답하기 위해 물리학자들이 만든 개념이다. 그리고 힉스 입자가 상호작용하는 것이 힉스장이다. 장(Field)이라는 단어가 낯설게 느껴질 수 있지만, 사실 우리는 이미 비슷한 것을 알고 있다. 자석 주변에 철가루를 뿌리면 특정한 패턴을 그리며 배열된다. 자석이 만드는 "자기장"이 공간을 채우고 있고, 철가루는 그 장의 영향을 받아 움직인 것이다. 힉스장도 비슷하다. 우주 전체를 채우고 있는 보이지 않는 마당 같은 것이고, 입자들은 그 마당을 지나가며 상호작용한다. 어떤 입자는 힉스 장과 강하게 상호작용해서 무겁고, 어떤 입자는 약하게 상호작용해서 가볍다. 입자가 뛰어노는 마당. 지금은 장을 이 정도로만 이해해도 된다.

힉스장이 있다면, 다른 장도 있을 수 있지 않을까? 실제로 우주론학자들은 또 하나의 마당을 제안했다. 인플라톤(Inflaton)이라는 이 장은 우주 초기에 작동했던, 일종의 임시 무대 같은 것이다. 인플라톤이라는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 장은 인플레이션 우주론과 관련이 있다.

인플레이션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경제학이 떠오를 것이다. 2000년대 중반 짐바브웨는 역사상 최악의 초인플레이션을 겪었다. 빵 한 덩이의 값어치가 100조라는 숫자로 뻥튀기되고, 그마저도 그날 저녁에는 더 값이 뛰어 100조 짐바브웨 달러로 사지 못할 정도의 폭발적인 물가 상승. 우주론에서 말하는 인플레이션도 비슷한 이미지다. 빅뱅 직후, 우주는 극도로 짧은 시간 동안 기하급수적으로 팽창했다. 찰나보다 짧은 시간 동안에 공간은 원자핵보다 작은 크기에서 은하계 크기로 늘리는 것보다 더 극적으로 팽창했다.

왜 이런 급격한 팽창을 가정해야 했을까? 우주는 너무 평탄하고, 너무 균일하기 때문이다. 우주의 어느 방향을 봐도 그 온도는 2.725K로 거의 똑같다. 정밀하게 측정하면 10만 분의 1 정도의 아주 미세한 차이만 있을 뿐이다. 그런데 우주는 너무나 광활하다. 두 개의 지점이 같은 온도이기 위해서는 서로 온도를 주고받아 같은 온도가 되어야 하는데, 우주의 반대편에 있던 두 지역은 서로 연결될 수 없다. 만약 우주의 양 끝이 서로 영향을 주지 않았다면, 우주가 차갑게 식는 건 지금과 비슷하더라도 지금보다는 온도가 균일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두 지역의 온도가 똑같을 수 있을까?

이것이 지평선 문제(Horizon problem)다. 그리고 인플레이션은 이 문제를 아주 우아하게 해결한다. 급팽창 이전에는 지금 우주 전체가 아주 작은 영역에 모여 있었다면, 그 작은 영역 안에서는 충분히 정보 교환이 가능했고, 따라서 온도가 균일해질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상태로 급팽창이 일어나면서, 이미 균일해진 영역이 지금 우주 크기로 늘어난 것이다.

평탄성 문제도 있다. 우주의 형태에는 크게 세 가지 가능성이 있다. 양의 곡률(구처럼 휘어진 공간), 음의 곡률(안장처럼 휘어진 공간), 또는 곡률이 0(평평한 공간)인 것 말이다. 관측 결과 우주는 놀라울 만큼 평평하다. 그런데 평평한 상태는 불안정하다. 조금만 초기 조건이 달랐어도 우주는 크게 휘어졌을 것이다. 인플레이션은 이것도 설명한다. 급팽창이 일어나면 어떤 곡률이든 국지적으로는 평평해 보인다. 풍선을 작게 불었을 때는 표면의 휘어짐이 눈에 보이지만, 엄청나게 크게 불면 표면이 거의 평평해 보이는 것처럼.

인플레이션 우주론은 성공적이다. 관측 데이터와 잘 맞고, 여러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한다. 그래서 현대 우주론의 표준 모델이 되었다. 그런데 한 가지 질문이 남는다. 왜 하필 팽창인가? 같은 결과를 수축으로 얻을 수는 없을까?

급격한 팽창 대신, 느린 수축을 상상해 보자. 우주가 천천히 수축하다가 어느 순간 반등해서 다시 팽창하기 시작하는 시나리오. 이렇게 해도 균일성과 평탄성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질문에서 출발한 것이 에크파이로틱(Ekpyrotic) 우주론이다.

에크파이로틱이라는 이름은 그리스어 'ekpyrosis'에서 왔다. '큰 불로 타오름'이라는 뜻이다. 고대 스토아 철학에서 우주는 주기적으로 큰 불에 타서 재생된다고 믿었는데, 이 우주론이 비슷한 순환 구조를 가지고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에크파이로틱 우주론의 핵심 아이디어는 우주의 수축이다.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 그 유명한 끈 이론의 막(Brane)이라는 개념이 등장하는데, 이것은 지금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우리 우주가 과거에 서서히 수축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수축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우주가 다시 팽창하기 시작한다. 우리가 빅뱅이라고 부르는 사건은 사실 이 순간이었다는 것이다.

수축 단계에서 우주는 서서히 압축된다. 이 느린 수축이 핵심이다. 급팽창처럼 폭력적이지 않고, 천천히, 조용히 일어난다. 그리고 이 과정이 균일성을 만들어낸다.

요즘 유행하는 두바이 쫀득 쿠키를 생각해 보자. 있는 힘껏 잡아 늘렸다가 천천히 뭉치면 카다이프와 피스타치오 스프레드가 균일하게 섞인다. 처음에는 재료들이 덩어리 져 있었지만, 늘리고 뭉치는 과정을 거치면서 점점 고르게 분포하게 된다. 에크파이로틱 우주도 비슷하다. 수축 과정에서 공간의 불균일성이 점점 줄어든다. 마치 압축되면서 매끄러워지는 것처럼. 그리고 이미 균일해진 상태가 팽창하면서 지금 우주가 된다. 빅뱅은 시작이 아니라 반등이다. 균일성은 폭발의 결과가 아니라 이전 수축의 흔적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인플레이션 우주론이 설명하던 현상들이 완전히 다르게 해석된다. 급팽창 없이도 평탄성을 설명할 수 있다. 수축 과정에서 공간은 자연스럽게 평탄해진다. 지평선 문제도 해결된다. 우주가 수축하면서 서로 다른 지역들이 인과적으로 연결될 수 있게 되었다.

에크파이로틱 우주론의 강점은 질서가 폭발에서 나온다는 관점을 뒤집는다는 점이다. 폭발은 보통 무질서를 만든다. 폭탄이 터지면 파편이 사방으로 흩어지고, 각 파편의 속도와 방향은 제각각이다. 그런데 빅뱅 이후 우주는 놀라울 만큼 질서 정연하다. 인플레이션은 이 역설을 "폭발 직전에 이미 균일했다"는 방식으로 해결한다. 에크파이로틱은 더 근본적인 해답을 제시한다. 질서는 폭발의 결과가 아니라 정렬의 흔적이다. 천천히 압축되는 과정이 불균일성을 제거했고, 그 상태로 반등한 것이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정직해져야 한다. 에크파이로틱 우주론에도 문제가 있다. 가장 명백한 비판은 이것이다. "왜 수축을 일으키는 장이 있어야 하지?" 에크파이로틱 시나리오가 작동하려면 특정한 성질을 가진 무언가가 필요하다. 이 무언가는 우주가 일정 수준 이상 커지면 느린 수축을 유도하고, 충분히 수축하면 다시 팽창시켜야 한다. 이건 그냥 필요에 따라 만든 임시방편 아닌가?

이 비판은 정당하다. 에크파이로틱 우주론은 관측 데이터를 설명하기 위해 특정한 장을 도입한다. 그 장의 존재를 독립적으로 확인할 방법은 없다. 왜 그런 장이 있어야 하는지 근본적인 답을 보여주지 못한다.

이 점에서는 현재 대세인 인플레이션 우주론도 예외가 아니다. "왜 급팽창을 일으키는 장이 있어야 하지?" 인플라톤이라는 장도 관측 데이터를 설명하기 위해 도입된 것이다. 그 장의 존재를 독립적으로 확인할 방법은 없다. 왜 그런 장이 있어야 하는지, 더 근본적인 이론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지 보여주지 못한다.

거칠게 요약하면 이렇다. “일단 터졌다고 치자. 그래야 관측한 것이 설명이 된다.”가 인플레이션 우주론이라면, “일단 수축했다고 치자. 그래도 관측한 것이 설명이 된다.”가 에크파이로틱 우주론이다.

차이는 '가정을 했느냐'가 아니라 어디까지 설명하려고 하느냐다. 인플레이션은 급팽창을 통해 균일성과 평탄성을 설명한다. 에크파이로틱은 느린 수축을 통해 같은 것을 설명한다. 둘 다 "왜 하필 그런 장이 있었는가"라는 질문에는 답하지 못한다. 둘 다 초기 조건을 가정하고, 그 가정 위에서 우주의 진화를 설명한다. 한쪽만 임시방편이라고 비판하는 건 공정하지 않다.

인플레이션이 표준 모델이 된 이유는 그것이 어떠한 가정을 하지 않고 논리를 전개해서가 아니다. 먼저 제안되었고, 관측과 잘 맞았고, 많은 물리학자들이 연구했기 때문에 표준이 된 것이다. 에크파이로틱은 나중에 나온 대안이다. 하지만 현상을 설명하는 방식은 인플레이션과 대등하다. 어떤 의미에서는 더 나아갔다. 빅뱅 이전의 역사를 허용하기 때문이다.

왜 이러한 가정을 할 수밖에 없는가? 이 질문은 우주론의 한계를 보여준다. 우리는 우주를 관측하고, 그 관측을 설명하는 모델을 만든다. 하지만 모델은 항상 출발점을 필요로 한다. 어떤 초기 조건, 어떤 장, 어떤 에너지 상태. 그것이 왜 그렇게 주어졌는가는 그 윗 단계의 질문이다. 인플레이션도, 에크파이로틱도, 이 질문의 한 단계 앞까지만 설명한다.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하다. 과학은 모든 것을 설명할 필요가 없다. 한 단계씩 더 깊이 들어가면 된다.

에크파이로틱 우주론이 던지는 진짜 질문은 이것이다. 빅뱅이 정말 시작이었을까? 우리는 오랫동안 빅뱅을 절대적인 출발점으로 생각했다. 시간도 공간도 그 순간 시작되었다고. 하지만 에크파이로틱은 다른 가능성을 연다. 빅뱅은 시작이 아니라 경계 사건이다. 이전 단계와 이후 단계를 나누는 극적인 전환점이자 이전 우주의 정보를 다음 우주로 전달하는 통로다. 수축 단계의 균일성이 팽창 단계로 이어진다. 빅뱅은 끝이자 시작이다.

인플레이션과 에크파이로틱, 둘 중 무엇이 옳은지는 아직 모른다. 둘 다 관측과 양립 가능하고, 둘 다 결정적인 반증은 없다. 언젠가 중력파 관측이 이 둘 중 하나를 배제할지도 모른다. 아니면 둘 다 틀렸다는 사실이 드러날 수도 있다. 그것 역시 과학이 앞으로 나아가는 방식이다.

지금 우리가 확실히 아는 것은 이것이다. 우주는 평탄하고 균일하다. 그리고 그 균일성은, 우주가 지금 모습이 되기 전에 어떤 과정을 거쳤다는 사실을 강하게 암시한다. 그 과정이 급격한 팽창이었는지, 느린 수축이었는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빅뱅이 모든 이야기의 첫 시작일 필요는 없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