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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정희 Sep 06. 2022

그곳에서 별을 보다

 바람과 햇볕이 힘겨루기를 하고 있는 작은 도시 아를. 그곳에서 포도농사를 짓는 젊은 부부의 집에서 이틀 밤을 묵었다. 파란 대문 너머 눈에 선 꽃들이 이방인을 반겼다. 아담한 이층 집 앞에 서자 내 안에 작은 전율이 일었다. 그 작은 도시를 방문하는 것은 나의 오랜 버킷 리스트 중의 하나였다. 

 

 오래전, 내가 살던 고향집 앞마당에는 밤마다 어린 딸의 손을 잡고 별을 세주던 아빠가 있었다. 하나 두울 세엣…. 아빠가 박자에 맞춰 별을 세면 딸도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처음에는 까맣기만 하던 하늘에 점점 반짝이는 별들이 눈 안 가득 들어왔다. 아빠는 지금 어느 별을 세고 있을까. 열둘열셋…. 어린 딸은 열심히 아빠가 세고 있는 별을 찾았다. 별과 눈이 맞았다고 좋아하는 딸과는 달리 별을 세는 아빠의 얼굴은 즐거워 보이지 않았다. 재미도 없으면서 아빠는 왜 매일 밤 별을 세는 걸까. 딸은 아빠의 손에서 자꾸 힘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아빠가 올려다보던 별. 아빠를 내려다보던 별. 그 별을 그리고 싶었다. 내 눈에 별은 둥글기도 하고 세모나기도 하고 또 어떤 것은 점같이 보였다. 하늘에 촘촘히 둥근 점을 그려 넣은 내 그림을 학교 선생님은 이해하지 못했다. 크리스마스트리 위에 다섯 개의 반듯한 선을 이어 별을 그린 친구는 반 아이들 모두에게 박수를 받았다. 

 

 어느덧 나도 습관적으로 다섯 개의 선을 이어 별을 그리고 있을 즈음이었다. 별에 대해 재해석을 한 그림 한 점을 만났다. 빈센트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이었다. 그림 속의 별들은 그동안 보아 온 별 모양과는 달랐다. 밤하늘에서 조용히 반짝이고 있는 평온한 별의 이미지를 완전히 깨는 모습이었다. 회오리치는 구름 사이에서 터질 듯 위태로워 보이는 별. 화가는 어디에서 그런 별을 보게 됐을까. 그에게 별은 어떤 의미였을까.

 

 그의 삶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부터 그 작은 도시에 가보고 싶었다. 짧은 그의 삶에서 가장 행복했던 한 때를 보냈다는 아를은 햇살은 뜨겁고 바람은 세찬 독특한 곳이었다. 해와 바람이 내기를 하면 도무지 승부가 나지 않을 것 같았다. 머릿속을 헤집는 바람에 맞서며 도시 곳곳에서 고흐의 흔적을 찾았다. 봄의 매력을 한껏 뽐내는 아를의 과수원은 그가 그곳에서 행복했던 이유를 충분히 짐작케 했다. 

 

 그의 행복이 조금만 더 길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랬다면 참 좋았을 텐데. 부질없는 안타까움이 쏟아지는 햇살 위에 흩어졌다. 키 큰 나무들이 과수원 주위를 에워싸고 있었다. 강한 바람을 막기 위해 심어놓은 병풍 목 같았다. 아를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나무 사이프러스. 고흐의 작품 속에서 보았던 그 나무였다. 터질 듯 위태로워 보이는 별을 향해 목을 뻗던 나무. 별을 올려다보던 아빠가 나무가 되어 서 있는 것 같았다.

 

 어린 딸은 해 질 녘이면 아빠를 마중 나갔다. 고갯길 앞에서 토끼풀을 뜯고 있으면 얼마 되지 않아서 아빠의 발소리가 들렸다. “아빠!” 달려오는 딸을 가볍게 들어 올린 아빠는 목말을 태우고는 콧노래를 불렀다. 별이 하나 둘 아빠의 콧노래를 들으러 나왔다. 아빠는 어린 딸도 별도 알아들을 수 없는 어려운 시를 가락에 실어 부르곤 했다. “시조란다.” 아빠가 알려줬다. 딸은 잊지 않으려고 여러 번 되뇌었다.

 

 학교에서 선생님이 신문을 읽는 집 아이는 손을 들라고 했다. 교실 뒤 게시판에 붙일 수 있도록 일주일에 한 번씩 중요기사를 정리해 오라고 했다. 아이에게 내는 숙제였으나 기실 부모의 숙제였다. 부모의 학력란을 확인한 선생님은 나를 지목했다. 나는 괜한 일거리를 가져온 게 아닐까 걱정을 했다. 농사일에 바쁜 아빠에게 숙제를 내밀면서 아빠의 얼굴을 살폈다. 다행히 아빠의 얼굴엔 싫은 내색이 없었다. 신문을 오려서 붙이고 그 밑에 기사를 요약한 후 아빠의 생각을 덧붙이는 다소 귀찮을 수 있는 그 일을 아빠는 한주도 빼먹지 않았다. 월요일 아침이면 어김없이 8절지 크기의 종이를 패널에 붙인 아빠의 숙제가 내 책가방 옆에 놓여있었다.

 

 어느 날, 심부름으로 동네 작은 점방에서 막걸리 한주전자를 받아 오는 길이었다. 낯익은 마을 아저씨가 낮술에 취했는지 나에게 시비를 걸었다. “네 애비도 막걸리를 먹나베? 우리랑은 태생이 다른 사람이라 먹는 것도 다른 줄 알았제.” 뒷걸음치다 주전자가 기울어지는 바람에 막걸리를 한 대접은 쏟았다. 아빠는 “막걸리 값이 올랐나? 양이 줄었네.” 하셨다. 나는 모른 체했다. 내내 술 취한 아저씨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아빠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나는 더 이상 어린애가 아니니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빠, 그 뭐였지? 무슨 산에 낙락장송 된다던….” “시조?” “아, 맞아. 그거. 아빠도 그러고 싶어?” 아빠는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아빠가 즐겨 읊던 시조는 대개 우울한 느낌이었다. 죽어서 뭐가 된다느니 그것도 모자라 골백번을 죽는다느니. 아빠는 왜 그런 시를 좋아했을까 궁금했다. “학교에서 오빠들한테 가르쳤던 것들이라 입에 배서….” “아빠가 선생님이었어?” 아빠는 고개를 끄덕였다. 더 묻고 싶었지만 그만뒀다. 왠지 아빠가 더 말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느꼈다. 나도 말하고 싶지 않은 것을 자꾸 물어보면 싫었다. 

 

 “아빠는 농사가 재미있어?” 나는 그것은 꼭 알고 싶었다. 아빠의 말없는 미소를 나는 긍정의 답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아빠는 재미있어서 농사를 짓는다고. 그래서 불행하지 않다고….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나는 집을 떠나 객지로 나왔다. 아빠가 그 후에도 별을 셌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늦은 하굣길에 별들이 촘촘히 박힌 밤하늘을 보는 날이면 고향집 앞마당에 서 계시던 아빠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빠에게 별은 어떤 의미였을까.

 

 아를에서의 마지막 밤 젊은 농부의 집 앞마당에서 가만히 눈을 감았다. 상상 속에서 나는 고흐의 별이 되어 부풀어 올랐다. 내 안에 꿈과 열정이 꿈틀대더니 어느덧 좌절과 분노가 엉겨 붙어서 내 몸에 펌프질을 해댔다. 터질 듯 높아지는 압력을 견디지 못해 눈을 떴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여전히 둥글기도 하고 세모나기도 하고 점 같기도 한 별들이 조용히 빛나고 있었다. 아빠가 그랬던 것처럼 박자를 넣어 별을 세어 보았다. 하나 두울 세엣…. 부풀어 오른 내 몸에서 조금씩 바람이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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