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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정희 Sep 13. 2022

프라하에 핀 개나리

 낯선 이국땅에서 본 개나리는 여행객의 긴장을 풀어주기에 충분했다. 프라하 공항을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차 창밖 풍경 속에서 발견한 노란 꽃. 개나리에 대해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날 그곳에서 나는 그리운 벗을 만난 양 반가움을 느꼈다.

 

 그녀와의 만남도 그랬다. 여행을 준비하면서 체코는 와인의 역사가 깊은 나라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프라하 가까이에 와이너리가 있다는 것도 흥미로웠고 현지의 소믈리에가 직접 와인을 소개해준다는데 매력을 느껴서 와이너리 투어를 신청했다. 체코어를 쓰는 소믈리에와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 통역 가이드가 필요했다. 그 가이드가 바로 그녀였다.

 

 바츨라프 광장 기마상 앞에서 만나자는 메시지 하나에 의지해 일찌감치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그 광장은 과거 체코슬로바키아의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던 곳으로 ‘프라하의 봄’으로도 잘 알려져 있는 곳이다. 유명세만큼이나 관광객들로 붐볐다. 당시에 넓은 대로를 가득 메웠을 군중들과 그들을 제압하려는 소련군의 충돌. 그 아비규환을 상상하니 우리나라의 민주화 역사와 오버랩되며 가슴이 먹먹해졌다. 


 인파 속에서도 저만치 미소를 띠며 다가오는 그녀를 나는 한눈에 알아보았다. 마치 크고 화려한 꽃잎을 자랑하는 서양화들에 둘러싸여 있어도 제 멋을 잃지 않는 개나리처럼, 그녀는 우리보다 두 뼘은 더 커 보이는 장신들 사이에서도 단연 내 눈에 띄었다. 차분하면서도 부드러운 말투였으나 무르지 않은 강단을 가진 사람이었다. 현지에서 십 년 넘게 살고 있다는 그녀는 나에게는 너무도 어려웠던 ‘트램 타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몹시 고마워하는 내가 오히려 이상한 듯 바라보는 그녀에게 나는 창피한 고백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를 만나기 전날, 숙소에 짐을 풀고 나니 어둠이 내렸다. 야경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을 것 같아서 피곤한 몸을 추스르며 까를교를 향했다. 여행 첫날인 데다 어두운 밤길을  트램이나 메트로로 이동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결국 택시를 불렀고 도착해서야 내가 머무는 집에서 차로 십 분도 안 되는 거리라는 것을 알았다. 체코 돈으로 이백 코루나, 우리 돈으로는 약 만원 정도였다. 까를교의 야경은 역시 들은 대로였지만 강한 강바람에 피곤이 겹쳐 오래 머물 수는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다시 택시를 타야만 했다. 모든 것이 낯선 곳. 택시 타는 곳이 정해져 있는지 아니면 길가에서 그냥 잡아도 되는지조차 막막해하고 있는데 택시 한 대가 내 앞에 섰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었다. 

 

 택시 기사는 유쾌한 사람이었다. 한국은 날씨가 어떤지, 인구는 얼마나 되는지, 물가는 어떤지 등 여러 가지를 묻기도 하고 프라하의 사정 얘기를 하기도 했다. 그리곤 뜬금없이 다음에는 노란 택시를 이용하라며 현지에서 가장 저렴한 택시라는 정보도 주었다. 일을 즐겁게 하는 사람 같았다. 십분 거리니 금세 집에 도착했다. 이백 코루나를 주며 “맞죠?” 했더니, 계기판을 가리켰다. 숫자 2에 동그라미가 세 개나 붙어있었다. 이천 코루나. 왜 이리 비싸냐는 내 말에 그는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쁘라이빗 땍시!”라고 말했다. 노란 택시 운운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일명 ‘택시 사기’를 당한 내 사연을 들은 그녀는 종종 일어나는 일이라며 그런 택시의 기사는 체코 사람이 아닌 경우가 많다고 했다. 타는 사람이 알아서 조심해야 하는데 멋모르고 올라타서 가격 흥정도 없이 “갑시다!” 하는 관광객을 만났으니 그 기사는 얼마나 신이 났겠는가.

 

 그녀는 메트로와 트램을 갈아타면서 와이너리로 나를 안내했다. 가는 동안은 이런저런 소소한 생활 이야기를 나누며 주부로서의 공감대를 형성했다. 그러나 와이너리에 도착하자 그녀는 프로로 변했다. 소믈리에의 말을 통역하는 내내 그녀는 우아했고 멋졌다. 긴 머리를 한 갈래로 묶고 튀지 않는 스카프에 카키색 점퍼, 그리고 운동화 차림의 그녀는 우아한 드레스를 차려입은 어느 귀부인보다도 더 멋스럽게 와인을 음미했다. 와인의 맛보다도 와인을 대하는 태도의 멋스러움에 나는 취했다.

 

 취기에 적당히 달아오른 내 볼을 차가운 밤공기가 어루만져주었다. 돌아오는 길, 그녀와 한참을 걸었지만 나는 그녀의 이름조차 물어보지 않았다. 이름을 알아서 무엇하리. 그저 먼 타국 땅에서 개나리 같은 이를 만나 잠시 행복했으면 족했다. 다시 트램을 탔다. 그녀는 내가 묵고 있는 집 앞 트램 역의 이름이 ‘후시네츠카’라고 몇 번이나 알려주더니 익숙하지 않은 발음이라 듣고 잊어버리기를 반복하는 내가 못 미더운 듯 휴대폰에 메모해 주었다. 남은 내 여정이 달콤하기를 바란 것인지 초콜릿을 건네며 그녀는 먼저 내렸다.

 

 이후 며칠 동안 나는 트램을 타고 거리를 누비며 ‘현지인 놀이’를 했다. 하루에도 서너 번은 지나치게 되는 바츨라프 광장에서 근처에 사무실이 있다던 그녀를 한 번쯤은 마주치지 않을까 작은 기대를 해보았지만 그러기엔 대로가 너무 넓었다.  

 

 인천 공항에 도착한 후, 그녀에게 문자를 보냈다. 덕분에 즐거운 여행을 했음에 감사하며 여행 첫 날 보았던 프라하의 개나리처럼 그녀 역시 내게는 개나리 같았다고…. 그녀에게서 답글이 왔다.

 “개나리 꽃말이 '정'이라지요? 그새 정이 들었나 봅니다.”


 그런가 보다. 나는 프라하에서 정을 느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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