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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정희 Sep 08. 2022

자장면

  

 처음엔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구부정한 어깨를 잔뜩 웅크리고 불안한 시선을 여기저기로 옮기고 있는 그 사람과 눈을 마주쳤을 때도 내가 아는 어떤 사람과 많이 닮았다고만 생각했다. 그가 내 이름을 불렀을 때에야 나는 그를 확실하게 알아보았다. 오빠였다. 몰라볼 만큼 변했다고 티를 내는 것도, 왈칵 치솟는 눈물을 여과 없이 보이는 것도 오빠의 맘을 아프게 할 것 같아서 잠시 숨을 골랐다. 


 “오빠!” 이상하게도 눈물은 참을 수 있는데 목소리의 떨림은 감출 수가 없었다. 환하게 웃는 얼굴 뒤에 감춰진 울고 있는 마음을 들키지 않으면 좋으련만. 봄을 앞둔 햇살이 제법 따뜻했음에도 오빠는 추위에 떨었다. 잠시도 가만히 앉아있을 수 없다며 이리저리 왔다 갔다 몹시도 산만했다. 곱상한 선비 스타일로 옷맵시가 좋았던 예전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사람이 망가지는 게 한 순간이구나….” 한숨을 내쉬는 오빠. 위로의 말을 찾을 수 없는 동생. 그렇게 한참을 길 위에 서 있었다.

 

 중학교를 다니던 어느 해 아침, 군 입대를 앞둔 오빠와 짧은 작별 인사를 했다. 오빠의 선한 눈이 무언가를 말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지만 나는 돌아서 나왔다. 쉬는 시간에 복도에 나와 엉엉 우는 내게 친구가 몇 마디 위로를 건넨 것 같은데 내 귀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그저 오빠가 군대에 갔다는 생각뿐이었다. 그것은 우리가 잠시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것 이상의 의미로 내게 다가왔다. 오빠와 나는 각자의 길을 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하자면 이제 오빠는 나와는 다른 어른이 된 것이었다.

 

 열 두세 살 남짓까지 나는 오빠라는 호칭을 쓰지 않았다. 제법 나이차가 나는데도 항상 이름을 부르는 나를 엄마는 못마땅해하셨다. 오빠 환갑잔치에 가서도 이름 부를 거냐며 나무라시고 그럼 뭐 어떠냐고 받아치는 어린 딸의 말에 어이없어하시곤 했다. 오빠와 내가 나이가 들어 할아버지 할머니가 된들 우리 사이에 허물이 있겠나 싶었다. 그땐 그랬다.   

 

 집 떠나 낯선 곳에서 시작된 내 고교생활이 어느 정도 익숙해질 즈음이었다. 교문 앞에 한 사람이 서 있었다. 평소 관찰력이 부족한 탓도 있겠지만 설마 나를 찾아올 사람이 있겠나 싶어서 그냥 지나치려고 했는데 그 사람이 나를 불렀다. 오빠였다. 어른이 되는 과정이 쉽진 않았는지 햇볕에 그을린 까만 얼굴에 쌍꺼풀진 큰 눈이 꿈벅꿈벅하는 모양이 꼭 일에 지쳐 쉬고 싶은 황소 같았다. “내 동생, 자장면 한 그릇 사주려고 왔다.”며 내 가방을 옮겨 메는 오빠에게서 가족을 느꼈다. 엄마한테 혼났다느니 언니와 싸웠다느니 수다를 떠는 친구들 사이에서 가족과 떨어져 지내던 나는 적잖이 우울함을 느끼던 차였다. 앞서 가는 오빠를 보며 고작 자장면 한 그릇에 힘이 났다. “그래 나도 오빠가 있지. 자장면 사주러 올 오빠가 있어.” 

 

 오빠는 요즘 요양원에 들어가면 어떨까 고민 중이라고 했다. 남에게 신세 지기를 끔찍이도 싫어하는 오빠가 자신 때문에 애쓰는 가족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내놓을 법한 해결책이었다. 정작 자신은 힘들어 죽을 지경인데 의사조차도 꾀병 인양 고개를 갸우뚱하니 답답한 마음을 어디에 호소할 곳도 없다는 오빠. 신경계의 이상이라는 진단뿐, 딱히 원인도 알 수 없는 고통이 시작된 것은 꽤 오래전이라고 했다. 

 

 일곱 살 즈음이었을까. 고열로 끙끙 앓던 여자 아이는 잠시 단잠에 빠져있었다. 갑자기 방문이 덜컹 열리는 소리가 나더니 찬바람이 함께 들어왔다. 짜증스러워하는 여자 아이의 손에 따끈한 약병을 쥐어주던 까까머리 아이. 문 밖엔 흰 눈이 발목까지 쌓였는데 걸어서 삼십 분 거리에 있는 약국까지 뛰어갔다 왔을 오빠의 노고 따위는 안중에도 없이 여자아이는 쓰디쓴 약을 먹어야 한다는 현실에만 화가 났다. 칭얼대는 동생을 방 한구석에서 말없이 바라보던 까까머리 아이. 늦게까지 밖에서 함께 눈 놀이를 했던 전 날을 떠올리며 자신의 탓인 양 미안해했을 그 아이. 동생의 아픔까지도 자신의 잘못 같아 괴로워하던 그 착한 아이가 이제 자신의 아픔은 남에게 짐이 될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

 

 오빠는 저 아래에 주저앉아 있었다. 육체의 단단함이 무너져 내린 충격은 오빠를 쉽게 일어나지 못하게 했다. 내 팔은 아무리 뻗어도 오빠에게 닿기에는 턱없이 부족해 보였다. 

 

 “오빠, 자장면 먹으러 갈까?”

 

 오빠는 오래전 자장면 한 그릇에 힘이 났던 동생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희미하게 웃었다. 낯선 병마의 세상에 오빠 혼자 두지 않으려는 가족의 마음이 느껴졌을까. 그래서 오빠도 이렇게 힘이 나면 좋을 텐데.

 “그래, 나도 자장면 사 주러 올 동생이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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