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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정희 Sep 03. 2022

깨어난 노트

  

 바쁜 하루였다. 엘리베이터에 간신히 올라탄 후에도 가쁜 숨을 고르느라 한 공간에 있는 사람들을 둘러볼 여유가 없었다.


 “어머, 반갑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대신 눌러준 고마운 여인이 나에게 알은체를 했다. 머리를 단정하게 묶고 긴 원피스를 예쁘게 차려입은 내 또래의 여인이 나를 보며 웃고 있었다. 이름을 그렇게 서슴없이 부르는 것으로 보아 적잖은 친분이 있었던 것이 분명한데 이런 낭패가 있나. 나는 그녀가 누구인지 도통 떠오르지 않았다.


 기억하는 척 위선을 떨어볼까 잠시 고민했지만 전혀 감을 못 잡은지라 솔직하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정말 미안한데…. 누구…?”

 그녀의 눈에 설핏 서운함이 스쳤다.

 “가시내, 잘 가라.”

 그 여인은 아쉬움을 남긴 채 먼저 내렸다. 세심히 얼굴을 살폈음에도 기억이 나지 않으니 친한 사이는 아니었을 것이라고 스스로 위안했다. 미안한 마음이 조금은 가셨다.

 

 그날따라 하늘 한 번 올려다볼 여유가 없었다. 어둠이 내린 지 오래되어서야 나는 낮에 만난 그 여인을 떠올렸다. 여전히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나와 그녀는 내 인생의 어느 지점에서 함께 했던 것일까.

 

 며칠 전부터 어질러진 책장에 신경이 쓰였다. 책 정리를 하다가 서랍 깊숙한 곳에서 긴 잠을 자고 있던 상자 하나를 꺼냈다. 나의 젊은 시절, 그저 혼자 끄적거렸던 글들이 빼곡한 노트며 친구들과 오갔던 편지들, 그런 잡다한 것들로 상자가 비좁았다. 하얀 표지에 큐피드 화살이 그려진 노트 한 권이 수줍게 나를 보고 웃었다. 네가 여기 있었구나. 잊고 있던 친구를 찾은 듯 반가웠다. 


 고2. 머잖아 수험생이 될 우리는 각자의 긴 터널을 지나고 있었다. 왔던 길을 후회하며 자꾸만 뒤를 돌아보는 아이도 있었고, 오직 앞만 바라보며 터널 끝을 향해 나아가는 아이도 있었다.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가 우리를 점점 옥죄어 갔다. 그해에는 학교 증축공사를 해서 우리들은 수업시간 내내 소음에 시달려야 했다. 게다가 날까지 더워지면서 교실의 공기는 참을 수 없는 불쾌감으로 부풀었다. 누구든 콕 찌르기만 하면 오십여 명의 아이들이 한순간에 폭발할 것만 같은 그런 긴장감이 계속되었다. 

 

 나는 쉬는 시간만 되면 창가로 달려갔다. 답답한 마음이 조금이나마 풀렸다. 창문 너머 밀려오는 아까시의 향기를 맡고 나면 다음 수업시간을 견딜 수 있었다. 달콤한 향기를 품고 자리에 돌아오면 내 짝꿍은 항상 수학 문제를 풀고 있었다. 그 아이는 오직 앞만 바라보며 나아가는 부류 중의 하나였다. 짧은 커트머리에 좀처럼 웃지 않는 그 아이는 종종 나를 질리게 했다. 그저 그런가 보다 하면 되었는데 그날은 순간 분노가 치밀었다. 자연에 대해 예를 갖출지도 모르는 못된 것 같으니라고.

 

 “너는 저 향기가 안 느껴져? 아까시가 흐드러지게 피었는데 수학 문제가 눈에 들어와? 네가 사람이야?”

 

  그 아이가 다른 책만 보고 있었어도 그렇게 심한 말을 하지는 않았을 텐데. 당시에 나는 수학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던 차라 그 화풀이를 짝꿍에게 해버렸다. 대뜸 쏘아붙일 만도 한데 그 아이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나는 허공에 대고 혼잣말을 한 것인 양 머쓱해졌다. 

 

 갈팡질팡 한 해를 보내고 새 학년의 반 배정을 받은 고2의 마지막 날이었다. 어느 늦은 봄날에 내 화풀이를 받아주었던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그날 내가 뱉었던 심한 말에 대해 사과를 하고 싶었다. 내 마음이 전해진 것인지 그 아이가 먼저 나에게 왔다. 종이가방 하나를 내밀며 그 아이가 말했다. 

 

 “잘 가라, 가시내.” 

 

  그 아이였다.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그 여인. 달라진 겉모습에 속아 그녀를 알아보지 못했다. 

 

  미안한 마음으로 하얀 노트를 넘겼다. 오래전 그 아이가 내민 종이가방 속에 들어있던 노트. 그해 봄부터 겨울까지 일기 쓰듯 내게 쓴 그 아이의 마음이었다. 어떤 날은 시로, 어떤 날은 그림으로, 또 어떤 날은 편지로…. 아까시를 보러 뛰어나가지 않아도 이미 그 아이의 마음은 꽃으로 가득했는데 나는 그것을 알지 못했다.


 살면서 자존감이 떨어질 때마다 이 하얀 노트가 나를 위로해 주었다. 날카로운 시선이 가득한 곳에서도 누군가 나를 따뜻한 눈으로 보고 있다는 생각이 내 기운을 북돋워 주곤 했다. 

  

 세상에 익숙해져서 그랬을까. 어느새 그 아이도 노트도 잊고 살았다. 서랍 속에서 잠자던 노트는 내게 다시 위로를 건네려고 깨어난 것인가. 아니면 ‘날 선 눈빛이 가득한 세상에서 너마저 그렇게 사나운 눈빛을 하고 있느냐’고 일침을 놓으려고 깬 것인가.   

 

 졸업 앨범에서 그 아이를 찾았다. 단번에 알아보았다. ‘이렇게 환하게 웃으며 사진을 찍었구나.’ 그제야 그 아이의 웃는 얼굴이 얼마나 예쁜지 알았다. 미처 전하지 못한 고마움을 손끝에 담아 그 아이의 사진을 쓰다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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