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사라지지 않는 것들

by 미라니

기억은 참 이상하다.

놓아버렸다고 믿는 순간 다시 돌아오고,

가장 오래 붙잡고 싶은 순간은

먼저 바래진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개의 장면을 흘려보낸다.

말하지 못한 말,

마주치지 못한 얼굴,

끝내 고백하지 못한 마음.

그리고 어느 순간,

그 모든 것을 ‘기억’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어떤 기억은

시간이 지난다고 저절로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더 선명해진다.

마치 오래된 상처에 손이 자꾸 가듯,

그 기억을 반복해서 꺼내보고, 다시 덮는다.

잊고 싶은데,

잊지 못한 채 살아간다.


이곳은,

그런 사람들을 위한 카페다.


작은 골목, 간판도 없는 이곳.

낡은 나무문을 밀면

한 사람의 기척이 들리고,

그 사람을 위한 차 한 잔이 조용히 준비된다.


이곳에선 무엇도 묻지 않는다.

당신이 어떤 기억을 품고 있는지,

왜 그걸 놓고 가려 하는지,

무엇을 잃었고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그저 자리에 앉으면

차 한 잔이 말을 건다.

온도와 향기, 그리고 잔의 무게로.


기억을 지우는 대신

감정을 남기고 가는 곳.

말하지 못했던 속마음이

차의 향처럼 천천히 흩어지는 공간.


누군가는

첫사랑을,

누군가는 가족을,

또 어떤 이는 죄책감을 남긴다.


그리고 나는,

그 모든 기억을 조용히 바라본다.

기억을 먹는 이곳에서,

손님들을 보내고,

차를 따르고,

나의 차례를 기다리며 앉아 있다.


나는 아직

내 기억을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언젠가,

그날이 오면

나도 나의 차를 마시고

이곳에 나를 남기고 떠날 것이다.


그러니 당신도—

그 기억,

버리고 가세요.


이곳은

당신의 기억이

잠시 머물다 갈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