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를 떠난 지 일주일이 지났다.
진이는 여전히 같은 길을 걸었지만, 세상이 전과 다르게 보였다.
같은 나무, 같은 건물, 같은 하늘인데도 어딘가 낯설었다.
그날 카페 문을 나설 때의 자신은 조금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버스 창밖으로 스치는 풍경을 바라보며,
진이는 문득 그날 은이의 말을 떠올렸다.
“기억은 버리는 게 아니라, 돌려보내는 거예요.”
그 말이 이제야 이해되기 시작했다.
버려진 것은 사라지는 게 아니었다.
그저 제자리를 찾아 돌아가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그 자리로 다시 돌아갈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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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근처 카페에 앉아 있던 어느 오후,
진이는 문득 손목을 감싸는 향을 느꼈다.
그 향은, 그날 카페의 커피 향과 닮아 있었다.
커피를 주문하고, 습관처럼 창가 쪽에 앉았다.
밖에는 봄비가 가늘게 내리고 있었다.
그 순간, 진이는 자신이 아직도 그곳 ― ‘기억을 먹는 카페’ ― 에 남아 있다는 걸 깨달았다.
몸은 나왔지만, 마음은 아직 문 뒤편에 머물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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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조금 더 세차게 내리기 시작했다.
진이는 휴대폰을 열었다.
연락처의 맨 아래, 이름 없는 번호 하나가 있었다.
‘은이.’
저장된 이름은 없었다. 단지,
“기억을 버리러 오세요”
라는 문자가 남겨진 채였다.
그녀는 손가락을 올렸다가, 멈췄다.
지우지도, 누르지도 못했다.
그때였다.
문득 머릿속에 오래된 한 장면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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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득한 여름날의 길.
그날, 진이는 비를 맞으며 인형을 품에 안고 걸었다.
그때 자신을 부르던 목소리가 있었다.
‘괜찮아, 금방 지나갈 거야.’
그 목소리가 은이의 목소리와 겹쳤다.
어쩌면, 그 모든 시간이 연결되어 있었던 걸지도 몰랐다.
그때의 아이와 지금의 자신,
그리고 그 아이를 기다려준 누군가의 마음.
모든 건 ‘기억’을 넘어선 감정의 순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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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었다.
우산을 펴지 않았다.
차가운 빗방울이 얼굴을 적셨지만, 이상하게 따뜻했다.
“괜찮아.”
그녀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이제 돌아가지 않아도 돼.”
그건 단념이 아니라, 수용이었다.
돌아갈 수 없는 길 끝에서야,
비로소 자신을 용서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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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되자, 진이는 작은 노트를 펼쳤다.
거기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기억은 사라지지만, 감정은 남는다.
그래서 우리는 같은 하늘 아래, 다른 시간 속에서 다시 만난다.”
그녀는 펜을 들고 그 아래에 한 줄을 덧붙였다.
“다시, 마음.”
그리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
창문 밖의 빗소리가 잦아들었다.
그 소리 사이로, 은이의 목소리가 아주 멀리서 들려오는 것 같았다.
“어서 오세요. 마음을 다시 찾으러 오셨군요.”
진이는 미소 지었다.
다시 가야 할 이유가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