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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라야 남자 Jun 30. 2022

엔데믹의 시작과 함께 사라진 디지털 노마드

2시간 통근러들을 위한 시대는 언제 올까?

출근길이다. 강남으로 가는 9호선 급행열차가 서서히 다가온다. 안전선 뒤로 줄 서 있던 사람들은 어느새 스크린도어가 몸에 닿을 정도로 줄을 바짝 서기 시작한다. 곧 문이 열린다. 앞차를 보내고 맨 앞의 열에 서 있던 나는 후다닥 뛰어 들어가 1초만에 빈좌석을 훑은 후 재빠르게 지하철 first class 자리인 양측 가장자리 좌석 중 하나에 골라 앉는다. 회사까지 음악이나 들으며 잠이나 자야지 싶은 마음으로 이어폰을 빼드는 순간 갑자기 눈앞에 시퍼런 질감의 낯선 물체가 시야를 덮친다. 그리고 곧 내 무릎에 그 물체의 무게감이 전해진다. 맙소사 내 뒤에 줄 서 있던 여성분이 다짜고짜 자리에 앉으려고 엉덩이부터 내밀고 앉아 버린 것이다. 그 여성분은 화들짝 놀라 민망했던지 사람들 틈을 비집고 멀리멀리 도망가 버렸다. 매일 펼쳐지는 평일 7~9시 사이 김포공항역의 풍경이다. 쿼드러플 역세권인 김포공항역에서 출발하는 9호선 열차는 김포와 서구에 거주하는 인천시민들이 강남으로 출퇴근 할 수 있는 유일한 지하철이다. 지금은 6량이 되었지만 내가 다닐 때만 해도 4량이었던 9호선 급행열차는 서울 한강 이남지역을 서에서 동으로 가로지르는 열차 치고는 칸수가 너무 적어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서울 중심으로 가는 열차 답게 정차할 때마다 미여 들어오는 사람들로 인해 서 있는 사람들은 안그래도 좁은 열차 안에서 붕붕 떠다니다시피 40분의 지옥을 참아야 한다. 그러니 어떻게 든 엉덩이를 들이 밀고서라도 자리에 앉으려는 진풍경이 벌어지는 것이다. 


인천에서 서울 논현까지 1시간 반 거리를 이렇게 매일매일 출근했다. 논현에서 인천으로 되돌아가는 퇴근길은 되려 2시간으로 더 늘어났다. 강남에서 집으로 가는 퇴근객들에게 밀려 지하철을 2번 정도는 족히 보내야 했기 때문이다. 직군이 영업이기 때문에 자차를 갖고 출근할 때는 더 고역이었다. 꽉 막히는 올림픽대로 안에서 2시간은 견뎌야 회사에 겨우겨우 도착했다. 눈이 올 때는 3시간이 넘게 걸린 적도 있었다. 회사에는 나와 같은 장거리 통근족이 적지 않았다. 일산에서 오시는 분들은 나보다 30분은 더 걸렸고 이 분들은 아예 새벽에 출근을 했다. 하루 왕복 80km를 일산에서 오가는 영업직군은 유류대만 통근비로 25만원은 족히 썼을 것이다. 태어나 나고 자란 곳이 서울인 동료들은 이런 출퇴근 시간을 이해하지 못했다. ‘기껏해야 door to door로 30분이면 오갈 거리인 회사를 1시간반에서 2시간이나 걸려 온다고?.’ 악의는 없었겠지만 그들의 말과 눈에서는 ‘세상에 이런일이? ‘ 라는 메시지가 한결같이 뿜어져 나왔다.

(출처 : 2020인구주택총조사_수도권 통근흐름)


위 자료는 < 2020인구주택총조사 수도권 통근흐름>  이미지이다 . 인천과 경기도에서 서울로 출퇴근 하는 사람들은 129만명인데 서울에서 경기도나 인천으로 출퇴근 하는 사람은 53만여명 밖에 되지 않는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서울에 주요 직장이 몰려 있고 서울 주거비는 비싸니 계란으로 치면 흰자 땅인 인천과 경기도에 거주하며 생계를 위해 통근 왕복 4시간을 감내하며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삶이 만족스러울 리 없다. 아래 <한국고용정보원> 자료를 보면 통근시간과 직장만족도는 반비례하고 이직의사는 비례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나 역시 장거리로 통근했던 당시 6시에 칼퇴근을 해도 집에 오면 8시인 경우가 태반이었다. 그 시간에 저녁을 먹으니 살도 찌고 밤에 속도 불편했다. 늘 컨디션이 최악인 상태로 회사를 다녔던 기억이 난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출퇴근으로 인한 체력소모가 상당했다. 그런 상태의 남편과 아빠를 상대해야 하는 가족도 고역이라 퇴근 후 소파에 누워있는 나를 가족들은 터치하지 못했다.


(출처 : 한국고용정보원)


그런데 이러한 장거리 출퇴근족들의 삶에 변화를 준 사건이 생겼으니 바로 ‘COVID19’이다. ‘COVID19’는 재택근무라는 소수의 사회적 방향성을 반강제적으로 속도감 있게 구현해 낸 원인이 되었다. 대다수의 회사들, 특히 사람이 많이 모이고 몰리는 유통회사부터 앞장서서 재택근무를 시작했다. 홈쇼핑 특성상 방송 전에 대면으로 만나 제품을 만져보고 특장점에 대해 설명을 듣는 시간이 꼭 필요한데 이 마저도 원격으로 회의를 진행했다. 방송 전에 쇼호스트의 코로나 확진으로 스튜디오가 폐쇄되기까지 하는 상황이 도래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대기업들도 일주일에 2~3회 재택을 권장했고 일부 외국계 회사는 ‘COVID19’ 기간 내내 재택지침을 내려 1년간 회사에 한 번도 나오지 않은 직원들이 있을 정도였다.


놀라웠다. 2017년 한 강의에서 ‘디지털 노마드(Digital nomad)’란 정의에 대해 처음 들었던 기억이 난다. ‘디지털(Digital’)과 ‘유목민(nomad)’을 합성한 신조어인데, 말 그대로 인터넷 접속을 전제로 디지털 기기를 이용해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재택과 이동근무를 하면서 자유롭게 생활하는 사람들을 뜻하는 말이다. 강사는 중국에서 유학한 이후 서울의 작디 작은 월세방에 살며 콩나무 시루보다 빽빽한 지하철 통근길이 인생에서 제일 힘든 경험이었다고 햇다. 그리고는 워킹홀리데이로 떠난 호주에서 근무일의 절반을 재택근무를 하며 다양한 글로벌 인재들과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였다(『디지털노마드』, 남해의봄날, 도유진 글).  당시 강의를 들었을 때 우리나라에서는 말도 안되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한국이 아무리 디지털 강국이라도 사람들의 고정관념은 절대 변하지 않기에 회의는 무조건 만나서, 근무는 팀장이 보는 앞에서 해야 직성이 풀리는 대한민국 직장생활 문화는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COVID19’는 이 모든 것을 강제적으로 변화시켰다. 그리고 ‘COVID19’가 우리 삶에 영향을 주었든(안 좋은 의미로) 재택근무 또한 우리 삶에 또 다른 변화를 일으켰다. 대다수 회사들이 원격이 가능한 소프트웨어 기술들을 통해 화상으로 회의를 진행하기 시작했고 회의 자료도 화면으로 공유하며 소통에 문제가 없음을 경험하기 시작했다. 회사라는 공간으로 모이는 가장 큰 이유는 함께 모여 일하기 위함인데 그것이 디지털로 대체 가능하다는 경험을 처음으로 하기 시작한 것이다. 심지어 회식 또한 화상으로 하기 시작했다. ‘COVID19’가 한창일 때 이직한 현재 회사에서도 환영회를 원격으로 했고 간담회나 런치미팅도 원격으로 진행했다. 심지어 동료 중 일부는 ‘COVID19’가 극성이었던 2021년 봄에 아예 지인이 아는 농장에서 몇 개월간 피난살이를 하며 근무했는데 일적으로 전혀 문제가 없었다고 했다. 출퇴근 횟수와 출근 시간에 제약 받지 않는 삶은 업무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더 풍족한 삶을 선사했다. 나의 경우도 재택근무를 하며 아이셋의 등하원이 가능해지자 아내가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흐드러지게 늦잠을 잘 수도 있게 되었고 6시에 칼퇴근 하고 방문을 열면 아내와 아이들이 거실에서 쫑알거리는 모습을 바로 볼 수 있게 되었다(이건 장점인지 아직은 모르겠다). 


물론 재택근무는 파라다이스가 아니다. 단지 정해진 공간으로 출퇴근을 하지 않을 뿐이다. 내가 원하는 공간에서 일하는 만큼 더 많은 책임감과 자기관리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이미 인재들은 연봉이나 복지 못지 않게 이러한 재택이나 유연근무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회사인지의 여부가 입사를 결정짓는 데에 중요한 척도가 되었다. 실제 내가 아는 메이저 유통사 MD도 재택근무와 유연근무를 한다는 이유로 과감히 이직한 경우를 봤다. 물론 직군마다 재택근무가 불가능한 곳도 많기에 내 의견이 다소 일방적일 수 있으나 대다수에게 이 지옥 같은 통근시간을 해방시켜 줄 수 있는 현실적 대안은  재택근무라고 여전히 생각한다. 살인적인 서울의 주거비와 교통혼잡, 그로 인해 생기는 각종 사회적 비용 등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다.


(출퇴근 시간을 년으로 환산한 표)


 예전에 호기심으로 내 통근시간은 인생에서 어느 정도를 차지하는지 계산 해본 적이 있다. 하루 24시간 중 왕복 통근시간이 4시간이면 1년으로 환산 시 1,460시간이고 30년 근무 시에 43,800시간이나 된다. 이는 내 인생 30년 중 5년에(17% 비중) 해당할 만큼 큰 시간이다. 아직도 도처에는 이렇게 출퇴근하는 분들이 많으시다. 몇 십년 걸리는 GTX가 그물처럼 다 깔리면 해결될까? 지역균등 발전이 되면 가능할까? 어느 세월에? 그 사이에 우린 노인이 되어있을 것이다. 내가 사는 곳이 나의 품격을 말하는 곳이 되어버린 이 시대에 눈에 불을 켜고 서울 입성을 꿈꾸는 게 근본적인 해결책일까? 중요한 것은 새로운 삶의 방식이다. 삶의 방식이 바뀌면 그것이 길이 되고 문화가 되고 변화가 된다. ‘COVID19’는 그런 삶을 잠시나마 꿈꾸게 해줬다(난 COVID19 예찬론자가 아니다 절대!).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올해 3~4월 엔데믹으로 전환되며 기업들은 다시 사람들을 회사로 불러들이고 있다. 안착되었던 것 같던 재택근무는 다 사라지고 모두를 일상으로 돌려놓았다. 간혹 인사팀의 30% 재택근무 방침이 있더라도 부서장 재량이기에 대다수가 회사로 나오고 있다. 꿈꾸었던 변화는 아직은 이른 것이었을까? 재택근무가 한창이던 때에 일산에서 강남으로 2시간 이상 출근하던 이사님이 40분만에 회사에 왔다며 싱글벙글 해하던 얼굴은 갑자기 왜 생각나는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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