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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throot Mar 04. 2022

[인터뷰] 묵은 일상 속 내가 말하고 싶은 이야기

일상 속 빛나는 틈새를 보는 태현의 이야기


배우, 기획자, 심리상담사···. 저의 모토를 표현하는 방식일 뿐이거든요. 하나의 뿌리에서 문화를 통해 이야기하느냐, 교육을 통해 이야기하느냐 이 차이일 뿐, 구별시킬 필요가 없다는 걸 느껴요. 결국 모두 연결되어 있으니까요.


무슨 일 하세요? 누군가가 말합니다. 무심코 내뱉는 대답 속에는 수많은 단어들 중 가장 많은 시간을 걸치고 있는 것들을 말하곤 합니다. 가령 '직장인인데요' 같은 말들이요. 배우, 기획자, 심리상담사. 그 사이 연결고리를 찾으려 해도 물음표가 가득인 일들 사이를 건너는 한 사람이 있습니다. 배우로 시작했지만 새로운 판을 만들고 자신의 이야기를 말하고자 문화 기획자의 일상을 시작했고, 연극으로 치유받은 많은 사람들을 보고 난 후 연극 심리상담을 배우게 됐다는 태현. 다양한 활동 영역 속에서 그가 궁극적으로 말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일까요? 묵은 일상 속 그가 발견한 틈새와 그 사이 속 연결고리에 대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안녕하세요. 태현님!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웃음) 문화예술로 다양한 짓들을 벌이고 싶은 윤태현입니다.



요즘엔 어떻게 지내셨나요?

보통 문화예술분야는 1,2월에 일을 계획하는 단계잖아요. 

 


그렇죠  

올해 1,2월에는 “마음 편하게 쉬자, 이때 아니면 언제 쉬겠느냐” 이런 마음으로 쉬면서 올 한 해를 어떻게 계획할지 틈틈이 고민하고 있어요. 제가 연극 심리상담사로도 활동하고 있어서 매주 발달장애인 분들을 만나 활동하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 계획한 대로 제대로 못 쉬는 것 같네요. 일과 쉼의 균형을 찾는 게 참 쉽지가 않은 것 같아요. 하하.

[출처=윤태현 인스타그램 @tang_yun_ann]


연극 심리 상담은 저희가 알고 있는 심리 상담과 방식이 많이 다를 것 같아요.

맞아요. 말 그대로 연극이 기반인 거예요. 일반적인 심리 상담은 언어를 통해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미술 치료는 말 그대로 미술을 매개로 치료하는 거죠. 연극 치료도 같은 메커니즘으로 이해하시면 되는데요, 연극심리치료의 장점은 놀이를 기반으로 한다는 거예요. 만약 갑자기 “과거에 어떤 아픔이 있었어요?" 이런 불편한 질문을 하면 답하기 어렵잖아요. 근데 연극 치료는 자연스럽게 우리가 어떤 이야기를 가지고 논다는 생각으로 출발해요. 놀이를 통해 사람을 진정 시키는 거죠. 



아주 세밀한 작업이네요.

지금은 이헌재 연출님과 함께 이헌재앤컴퍼니를 운영을 하고 있지만, 사실 저는 배우가 직업이었어요. 이헌재앤컴퍼니에서는 공연 창작을 주로 기획하는데요. 창작 작업을 하면서 배우들의 심리가 치유되는 모습들을 보게 됐어요. 그리고 그 속에 연극의 치료적 속성이 있다는 것을 체감했고요. 그때부터 연극심리치료를 배우기 시작해서 한국연극치료협회에서 전문적으로 연극심리를 배우고 자격을 취득하게 됐어요. 매니저님은 연극과는 친하게 지내시는 편인가요?



연극 좋아해요. 지난 연도에는 직접 연극을 해봤어요. 정말 어렵더라고요.

맞아요. 연극을 처음 접하는 분들에게는 몸으로 하는 작업이니까 엄청 부담인 것 같아요. 그래서 상담 작업도 첫 만남에는 무조건 연극이랑 편해지고 친해지도록 해요. 



태현님은 언제부터 문화예술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나요?

대학 가자마자요. 저는 연극과는 관련이 없는 완전히 다른 전공이었는데요. 연극은 극회로 대학에서 시작하게 됐어요. 그땐 주변에 연기하는 친구들이 정말 많았어요. 그래서 자극을 많이 받았죠. 연기가 도대체 뭘까? 머릿속에 떠오르는 의문을 해소하고자 연기를 시작했는데, 나중에 우연히 학교에서 하는 공연에 나가게 됐고, 현직에서 활동하고 계신 선생님을 알게 되어 대학교 2학년 때부터 외부 작업을 하게 된 거죠.



외부 작업이라고 하면 학교 밖에서 하는 연극인 거죠.

그렇죠. 그런데 그 시기 즈음에 남자는 군대를 가잖아요. 군대에 있을 동안에 진로에 대해 깊이 고민을 하고 싶은 계획이 있었는데, 막상 군대에 들어가니 제가 그 안에서 연극 동아리를 만들고 있더라고요. (웃음)

태현은 연극 <달>에서 김영민役을 맡았다. 연극 <달>의 원작은 유시민 작가의 동명 소설이다. ⓒ예술협동조합 타래


군대에서도 연극을 포기하지 못하신 거네요. 하하.

네. 그래서 그때 연극의 길로 가야겠다 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제대를 하고 난 후엔 대학로에서 작업을 계속했어요. 그러다 어느 순간 스스로 새로운 판을 만들어보자.라는 생각에 그때부터 배우뿐만 아니라 기획자 활동을 시작하게 됐어요.



그 고민 들었던 찰나에 이헌재앤컴퍼니를 할 수 있게 된 계기가 생긴 거네요.

그렇죠.



이헌재앤컴퍼니에선 어떤 일들을 하고 계신가요?

저는 이헌재앤컴퍼니에서 배우, 문화기획자, 연극 심리상담사로 활동하고 있고요. 이헌재앤컴퍼니에는 앤컴퍼니라는 기관이 하나 더 있어요. 각자 다루는 영역이 조금씩 차이가 나요. 이헌재앤컴퍼니에서는 공연 창작에 관한 일들을 주로 다루고, 앤(ann)컴퍼니에서는 지역 문화 네트워크 사업들을 진행해요. Ann이 art and network라는 뜻이거든요.



공연 창작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저희는 조금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하는 공연들을 창작해요. 연극 ‘우이천에 누군가 살고 있다’ 같은 경우도 무대가 있는 곳에 관객이 찾아오는 일반적인 방식에서 벗어나 일상적인 공간인 우이천에 배우들이 직접 찾아가는 방식으로 공연을 창작했어요. 학생부터 80대 노인까지, 정말 다양한 관객들과 만날 수 있는 장을 만든 거죠.

연극 <우이천에 누군가 살고 있다>  中  ⓒ이헌재앤컴퍼니


찾아가는 연극이라니! 신선해요. 이헌재앤컴퍼니에서 기획자와 심리상담사. 두 가지 역할을 하고 계신거군요.

네 맞아요. 방금 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연극 심리상담사로 발달장애인 분들을 만나고 있고요. 또, 공연 창작 기획 이외에도 도봉 문화재단, 무중력 지대, 지역문화진흥원과 함께 다양한 지역 문화 기획들도 진행하고 있죠. 그러고 보니 작년 1월에 청년뿌리에서 주관한 묵 2동 로컬 콘텐츠 공모전에도 참여했고요. 이렇게 활동한 지도 벌써 3년이나 됐네요.



방금 전, 묵2동 로컬 콘텐츠 공모전에도 참여했다고 이야기하셨는데요. 그때 기획한 로컬 콘텐츠가 <묵은 공간에 얽힌 이야기>라고 알고 있습니다. 콘텐츠 기획은 어디서부터 출발하게 됐나요.

‘묵은 공간에 얽힌 이야기’는 지역의 이야기를 주민들의 추억과 입을 통해 구성한 인터뷰 집이에요. 처음 묵 2동 로컬 콘텐츠 공모전을 통해 제작하게 됐는데, 이후에 도봉 무중력지대와 함께 도봉구에 대한 이야기를 담으면서 시리즈 물로 낼 수 있게 됐고요.


이 기획은 ‘지역에 대한 매력은 지역에 오래 사신 분들이 가장 잘 알고 있지 않을까?’는 생각으로 출발하게 됐어요. 사람마다 오래 산 곳에 대한 저마다의 흔적과 추억이 있기 마련이니까요. 저만 해도 동네 골목골목에서 친구들과 땅따먹기를 했던 기억들이 있으니까요. 그 기억들이로컬 콘텐츠를 매력적으로 만들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했고요. 


그래서 지역에 오래 사신 분들을 섭외하고, 지역 안에 의미 있는 공간을 선정해 공간과 그분들의 이야기를 함께 엮어 <묵은 공간에 얽힌 이야기>를 제작하게 된 거예요. 진행하면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들이 많아요. 그중에 지금은 철거하고 없어진 산부인과에 대한 이야기를 가장 좋아하는데요. 아이를 낳았던 산부인과에 대한 기억과 추억들을 함께 이야기하면서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없어진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이 콘텐츠를 통해 전했어요. 

<도봉구의 묵은 공간에 얽힌 홍은정의 묵은 이야기> 의 세화산부인과 에피소드 ⓒ이헌재앤컴퍼니



도봉구에서는 두 분의 이야기를 담으셨죠.

맞아요. 도봉구에 20년을 거주한 청년과, 48년을 거주하신 주민분. 두 분의 이야기를 담았어요. 



<묵은 공간에 얽힌 이야기>를 제작한 후에 태현님이 찾아낸 지역의 매력은 어떤 것인지 궁금하네요.

본인에게 있어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찾는 게 <묵은 공간의 얽힌 이야기>의 기획 의도였어요. 일단, 인터뷰 집을 제작하고 나서는 의도했던 그 지점들을 좀 찾은 것 같아요.


특히, 도봉구에서 48년을 거주하신 주민 분께서 이 프로젝트가 자신에게 엄청 큰 의미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공간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48년의 자기 인생을 돌아보게 된 셈이니까요. 저에게 인생 책을 만들게 되어 고맙다는 말을 전하시더라고요.



어떻게 보면 이분의 자서전 같은 느낌인 거네요.

맞아요. 지역 자서전 같아서 충분히 자기 매력을 찾으셨다고 생각을 해요.



배우, 문화기획자, 연극심리상담사 활동들을 하면서 각자 필요한 역량이라던가, 체감하는 차이점도 많을 것 같은데요.

일을 하면서 가지고 있는 모토가 하나 있어요. ‘문화예술을 통한 주체적인 사유와 치유’ 예요. 결국엔 문화든 교육이든 하나의 맥락으로 연결돼 있다고 생각이 들더라고요. 혹시 크립 캠프라고 아시나요?



크립 캠프요? 처음 들어봐요.

미국 장애인 인권 운동의 시초가 된 캠프예요. 미국에서 열렸던 캠프인데요. 지금은 흔히 볼 수 있지만, 장애인들이 조금 더 편히 이동할 수 있는 길이라던가 시설들을 법으로 제정된 게 이 시기부터이거든요. 넷플릭스에서도 다큐멘터리로 다뤘고요.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크립 캠프: 장애는 없다> 스틸컷. ⓒ넷플릭스

이 캠프에선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지내며 누군가의 도움 없이 스스로 요리하고, 놀고, 배웠어요. 도움은 필요할 때에만 받았고요. 장애인을 보호해야 할 대상, 치료의 대상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 그 자체로 대하고 움직일 수 있게 한 거예요. 이 다큐멘터리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대목이 있었어요. 사랑에 대해 알려주는 수업이었는데, 그 수업을 받은 뇌병변 장애인분이 자신이 살면서 받아 본 물리치료 중 최고였다고 말을 했어요. 여기서 알려 준 내용이 키스였거든요. 이 시간을 계기로 그분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게 됐고, 사랑을 경험할 수 있게 됐어요.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본 사람들과 함께 한 그 시간들을 통해 장애인들이 ‘나에게도 인권이 있구나’라고 느끼게 된 거예요. 그리고 그 권리를 찾아야겠다는 생각들이 모여 미국 장애인 인권 운동의 시작이 된 거고요. 

저는 이 일련의 과정들이 치료나 교육보다는 문화의 힘이라고 생각해요. 배우, 기획자, 심리상담가. 제 활동 영역도 마찬가지예요. 제가 가지고 있는 모토를 표현하는 방식일 뿐인 거죠. 하나의 뿌리에서 문화를 통해 이야기하느냐, 교육을 통해 이야기하느냐 이 차이일 뿐, 구별시킬 필요가 없다는 걸 항상 느껴요. 결국 모두 연결되어 있으니까요.



내가 말하고 싶은 생각이 있다면 어떤 방식으로 풀어내도 상관없다는 말이네요.

네 맞아요. 연극은 예술 창작 작업이잖아요. 직접적으로 말하기 힘든 것들, 예를 들어 철학서같이 어려운 얘기일 수도 있는 거를 오히려 연극적으로 풀어내면 좀 더 유희적인 기능도 생기고 또 미학적인 기능이 생기는 거죠. 말로만 풀어냈을 땐 쉽게 지나칠 수 있지만, 연극으로 표현한다면 사람들이 집중해서 보고 주제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될 수 있는 거예요.



태현님이 문화기획자와 심리상담사, 그리고 배우로 말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일까요.

조금 오글거릴 수도 있겠는데..



하하 편하게 말해주세요.

저는 ‘인간적 존중’이라고 생각해요. 사람 간의 만남, 여가 시간에 대한 중요성….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것들이 있거든요. 우리가 일상에서 쉽게 잊어버릴 수 있는 소중함 들을 제가 할 수 있는 활동들로 전하고 싶어요. 제가 대면을 추구하는 이유도 그중 하나예요. 코로나 이후에 비대면이 많아졌잖아요. 사실, 비대면으로 진행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 것들도 많지만. 너무 필요한 이야기들만 나누게 되는 거예요. 그렇지만 인생이라는 게, 항상 필요한 이야기만 나눌 순 없잖아요. 가끔은 불필요한 이야기도 하면서 서로에 대해 알아가야 관계라는 것이 지속된다고 생각하거든요.



맞아요. 비대면이 편하지만 전 보단 일상이 삭막해졌다고 많이 느껴요. 태현님은 일을 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무엇인가요?

책 <아빠는 모르는 거리감 연구소> 中 ⓒ이헌재앤컴퍼니

당사자성이요. ‘아빠들은 모르는 거리감 연구소’라는 책을 기획해서 발간한 적이 있어요. 아버지와 심리적인 거리감으로 어려움을 느끼고 있는 2030이 모여 아버지와 심리적 거리감을 좁히기 위해 아버지에 대해 탐구하는 내용을 담은 책인데요. 사실 제가 이 책을 기획하게 된 이유가, 어느 날 생각해 보니 아버지랑 밥 한 끼를 먹지 않았던 시간이 1년이나 된 거예요. 우리 사이에 거리감이 이렇게나 많이 생겼구나. 아버지에게 전하지 못한 말들도 정말 많았구나. 싶더라고요. 이 책을 기획하고 제작하면서 아버지에 대해 깊이 생각할 수 있는 시간들이 생겨났고, 아버지께서도 책을 읽고 난 후에 저를 이전보단 더 존중하려 노력하시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묵은 공간에 얽힌 이야기’도 지역에 대한 매력을

몸소 느낄 수 있었어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스스로 지역에 대해 새로운 시각에 대해

알게 됐고요. 일을 하면서 저부터 바뀌기 시작한 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스스로 바뀌어야 제 기획과 활동을 통해 타인에게도 제 의도를 전할 수 있으니까요.



배우, 기획자, 심리상담사···. 저의 모토를 표현하는 방식일 뿐이거든요. 하나의 뿌리에서 문화를 통해 이야기하느냐, 교육을 통해 이야기하느냐 이 차이일 뿐, 결국 모두 연결되어 있으니까요.


마지막 질문입니다. 태현님은 앞으로 어떤 사람으로 성장하고 싶은가요.

매니저님도 많이 공감하실지 모르겠는데, 솔직하게 말하고 싶은데 그럴 수 없는 상황과의 싸움이 많았던 것 같아요. 나보다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 앞에서 불편한 이야기들을 꺼낼 때도 그렇고요 그래서 저는, 제가 하고 싶은 것들이 생겼다면 타협보단 저의 길을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지금까진 잘 걸어오신 것 같으세요?

지금은 그런 것 같아요. 지금 돌이켜 보면, ‘진짜 쉽지 않았구나’란 생각도 많이 들고요. 그렇지만 앞으로도 그렇게 나아가겠다고 생각해요.




청년들의 다양한 삶을 조명합니다. 내 주위 가까이, 삶의 근육을 기르는 사람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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