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윽한 눈빛

날 보러 와요

by 채송화

너무나도 그윽했던 보더콜리 눈빛을 받아 본 적이 있다.


하얀 눈 속에 올라온 노란 복수초까지 보고 왔던 어느 겨울이었다.

언니가 다니는 절에서 단체로 삼사 순례를 했다. 언니가 같이 가자고 해서 따라갔었다.

어느 사찰에 갔을 때 턱시도 고양이가 소원성취 글자를 깔고 앉아 햇빛을 쬐고 있었다.

사람들이 귀엽다며 사진을 찍어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도도함 마저도 귀여운 고양이라니.

나도 소원성취 하고 싶어 사진을 찍어 놨다.


신도들이 백팔배를 올렸다. 언니옆에 끼어 나도 같이 따라 했다.

저린 다리를 절뚝이며 나오니 절 마당에 많은 사람들이 둥그렇게 모여 웅성거렸다.

뭔데 뭔데 언니와 가보았다. 스님과 큰 개 한 마리가 있다.

보더콜리다. 개도 고양이 못지않게 도도하게 굴었다. 도도함이 이 절의 콘셉트인가?


이 개로 말하자면,

아무한테나 가지 않는다. 부른다고 덥석 따르지 않는다.

아무한테도 관심이 없다. 개에 대한 스님의 소개 말씀이다.

개는 마치 다 알아듣는 듯 스님의 손길에 쓰다듬을 받으며 비스듬히 누워있었다.


유난히 개를 좋아하는 듯한 한 아주머니가 다가가 친한 척 노력해도 개는 외면했다.

사람들은 어머어머 어쩜 진짜네 하며 그 모습 또한 대견한 듯 웃어댔다.

그때 내가 무심코 곁에 있었다. 사진 한 장 찍으려고 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보더콜리가 먼저 쓰윽 내 곁으로 왔다. 그뿐 아니라 몸을 내 다리에 슥슥 비비기까지 했다.

나도 쓰다듬었다. 개는 가만히 내 손길을 느껴주었다.


사람들이 와아 탄성을 내지른다. 스님마저도 이런 경우는 거의 없다며 추켜세운다.

아까 그 아주머니가 재도전하러 왔지만 역시나 탈락했다.

"야! 너는 왜 나는 거부하냐!" 화까지 내봐도 보더콜리 관심은 끌지 못했다.


나는 그 주목받음이 어색하면서도 뿌듯했다.

개한테 선택받은 것이 이토록 오래 간직되는 감정이라니.

개와 스님과 나는 사진까지 찍었다.

사진의 구도마저도 신기하기 그지없다.

스님은 개를 보며 쓰다듬고 있고

개는 너무나도 그윽한 눈빛으로 나를 보고 있고

나는 언니가 찍어 주는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다.


그 시기 내 인생을 돌이켜 보았다.

내 인생 가장 찬란했던 봄날이었고 혹독한 겨울이었다.

아름다웠지만 고통스러웠고 진실이었지만 거짓이기도 했던, 사십 대.


절에 사는 개가 득도를 했는지

내 복잡한 심정을 알아보고 그런 그윽한 눈길을 보내 준 것만 같다.




개들 가운데 가장 영리하고, 가장 리더십 있고,

가장 주인을 독점하려는 특성이 있다는 종, 보더콜리.


가끔 동네 산에서 보더콜리를 만날 때가 있다.

나는 그때의 생각이 나서 "와 보더콜리다. 나는 보더콜리가 제일 좋더라"하면서 지나가면,

그 개 또한 그윽한 눈으로 나를 보는 것이 아닌가.

하 참 희한하다. 어째서 보더콜리들은 다 나를 좋아할까.

그러다 우연히 동네 공원에서 아직 어린 보더콜리를 또 봤다.

아니 그런데 고 작은 녀석 조차 나를 그윽하게 보는 것이 아닌가.

그제야 알았다. 보더콜리는 원래 눈빛이 그윽하다는 것을.


개와도 고양이와도 살아봤다.

세상사 꿰뚫어 보는 듯한 통찰이 깃든 그들의 눈빛은

언제나 위로이자 내가 기대었던 어떤 큰 존재였다.

그 말랑하고 부드럽고 따뜻한 털존재는 형언할 수 없는 기쁨 그 자체였다.


작가의 이전글하이브리드 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