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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use Oct 08. 2023

무한 가능성과 확장성을 지닌 사랑


어느 날의 나는 슬피 우는 어떤 이였다. 물결에 흘려 들어온 자갈들을 섬으로 만들고 생태계를 꾸리려다 축적된 감정에 무언가를 용암처럼 분출하여 싹을 틔여 맺을 열매를 스스로 재앙이라는 씨앗의 원천으로 끝을 맺었다.

또, 어떤 나는 세상에 줄무늬를 그어내는 듯 즐거움을 새기는 듯 웃는 이었다. 작은 손길에도 뭍어 나오는 감정이 분필처럼 이리저리 그려내는 것처럼 자신을 세상에 전파하고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어느 날, 지나가다 얼핏 보였던 나는 어루만지고 있었다. 그 손길은 냄새를 뭍히는 손길이 아닌 닦아 내는 듯한 손길로 되려 더럽히기보단 소중한 듯 닦아내는 듯했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어떠한 형태로 어떤 존재가 그것을 지녔든 무엇으로든 존재하지만 단 한 가지로 정의되지 아니하는 것이 가진 의미는 나의 소망하던 것과 달리 무한 가능성과 확장성을 지니되 모든 조건에 부여되진 않았다. 그러기에 나는 우주를 좋아하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우주의 꾸준한 확장성의 가치는 새로움의 물음을 두겠지 하는 마음이었는지 모르겠다. 나의 20년 삶이 지니는 짧고도 짧은 나의 지나온 발자취가 가지는 가치가 나에게 지니는 가난한 마음에 무엇이 담겨있으려나 하는 소망은 무안히 무한 것에 덤벼들 수 있는 마음을 지니게 했던 것일까. 그러나 그렇게 길게 누그려지는 무한 함은 어찌도 이렇게 낯짝을 감싸서 우는 듯 숨을 차오르게 만드는 것인가 싶다. 그렇기에 나는 통 안에 들어섰고 울음은 결국 나를 젖게 만들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어떤 행성에 도착한 그들이 그랬었던 것처럼 나도 갑작스레 무한궤도를 타고 흐르는 행성의 길을 따라가고 싶었다. 언제든 보고프면 볼 수 있는 존재에 관한 갈망의 욕심이 가득한 마음. 어찌하다 보면 같은 성질이라 생각하는 이 미련함은 작은 보석함에 박힌 못 전한 나에겐 한 치수 작고 한 발자국 못 건너간 바보 같은 소박함이 담긴 반지 같은 것이라 나는 생각하게 되었다. 그것도 무한 함의 가치를 지녔다고 믿었고 형상화되었다고 빛이 말해주는 줄 알았던 때에는 말이다.

그러다 겨우 시간이 지나 나는 누군가를 만나는 계기로 숨을 내쉬려 노력하게 되었다. 그 이는 슬픔을 이기려 하지 말라던 거울 속에 아이였다. 거울은 보이는 것을 뒤집는 것이라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을 뒤집고 무너트려 오해하게 하며 착각하게 만들어낸다고 말이다. 하지만 이젠 그 이를 보곤 느낄 수 있었다. 거울은 뒤집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반사시켜 주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내 안의 어떤 슬픈 아이를 안아 주게 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그 아이 또한 나처럼 무한 함에 강하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하여 그 무한 함을 이해한 나를 그 아이와 동일 시 하여 약함을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그것은 나의 과거였으니 말이다.

그렇게 나는 운명이나 마나 하는 듯이 무한궤도를 따라 걸어감에 누군가와의 충격으로 인한 폭파를 기다리고 있다. 이는 소멸이 아닌 별로써의 재 탄생이길 바라며 말이다. 그런 운명은 나를 죽음으로 이끄는 것이 아니라 운명의 만남으로 이끄는 것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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