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계약으로 관계를 맺는가?

자본주의와 신뢰의 형식

by 남상석

민주주의는 권력이 설명을 통과해야 유지될 수 있는 정치 구조였다. 권위는 더 이상 그 자체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반복적으로 이유를 제시해야 한다. 그렇다면 정치의 장을 넘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경제적 관계는 무엇 위에서 유지되는가.

그 자리에서 등장하는 형식이 계약이다. 계약은 단순히 기록된 조항이 아니라, 관계를 조직하는 하나의 구조다. 누군가는 제안하고, 누군가는 동의하며, 조건이 명시되고, 약속은 기록된다. 계약은 지위에 의해 자동으로 형성되지 않는다. 경제적 관계는 합의된 조건 위에서만 성립한다.

계약은 시장에서 교환을 안정시키기 위해 등장했지만, 자본주의에서는 생산과 협력을 조직하는 형식으로 확장되었다.

계약하는 관계에서 힘은 다르게 작동한다. 명령 대신 제안이 오고, 복종 대신 동의가 요구된다. 관계는 더 이상 일방적 선언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상대의 수락 없이는 아무것도 성립하지 않는다. 노동, 거래, 투자와 협력은 신분이나 배치가 아니라, 합의된 조건 위에서 형성된다. 관계는 명령으로 유지되지 않고, 제안과 동의를 통과하며 성립한다. 이때 힘은 더 이상 일방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참여와 수락을 요구하는 구조 속에서 유지된다.

여기에서 말하려는 것은 체제의 우열이 아니라, 관계가 조직되는 방식이다. 계약을 중심으로 하는 질서는 관계를 참여와 동의에서 출발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경제적 관계는 미리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하기로 한 선택을 통해 형성된다.

반대로 공동의 목적을 중심에 두는 질서는 관계를 동의의 결과가 아니라, 미리 설정된 역할과 계획에서 출발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관계는 참여자의 선택보다 기능과 배치를 통해 구성된다. 예를 들어, 하나의 목표를 위해 조직된 팀에서 사람들 사이의 관계는 선택보다 역할의 필요에 따라 형성된다.

계약의 질서가 작동하기 위해서는 신뢰가 필요하다. 약속이 이행될 것이라는 기대가 없다면 관계는 지속될 수 없다. 그러나 계약의 질서는 신뢰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실제의 거래는 불신을 관리하는 장치들을 함께 갖는다. 사람들은 약속을 문서로 기록하고, 서명하며, 조건을 명시한다. 하지만 이러한 장치들 역시 최소한의 기대 없이는 작동할 수 없다. 계약은 신뢰의 표현이라기보다, 동의가 지속되도록 조직하는 형식이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는 서로를 낳은 제도가 아니다. 그러나 동일한 조건 위에서 작동한다.

사람은 판단하는 존재다.

이유를 요구한다.

참여 여부를 선택한다.

관계를 정당화한다.

민주주의는 정치에서, 자본주의는 경제에서 이 조건을 제도화한 형식이다.

민주주의는 권력이 설명을 요구받는 구조다. 자본주의는 관계가 동의를 요구받는 구조다.

민주주의에서는 설명 없는 권력이 유지될 수 없고, 자본주의에서는 동의 없는 관계가 성립될 수 없다. 이 구조 안에서 사람은 단순한 복종자가 아니다. 그는 참여하거나 거절할 수 있고, 협상하거나 철회할 수 있다. 관계는 자동적으로 주어지지 않는다. 계약은 자유를 보장하는 형식이지만, 책임을 공동에 분산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을 개인에게 돌려보낸다.

설명을 통과한 권력과 동의를 통과한 관계가 만나는 자리에서, 사람은 스스로를 결정하는 존재로 선다. 계약의 사회에서 자율은 왜 점점 더 무거워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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