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인 눈(spiritual eyes)’을 ‘영안(靈眼)’이라 부르며, ‘혜안(慧眼)’과 비슷한 말이다. 국어사전에서 ‘영안(靈眼)’을 ‘영적으로 살펴 분별할 수 있는 능력’으로 설명하고 있다. ‘혜안(慧眼)’은 불교에서 나온 개념으로 ‘우주의 진리를 밝게 보는 눈’으로 간단히 이해할 수 있다. ‘눈’과 어울리는 서술어, ‘열려있다,’ ‘밝다,’ ‘맑다,’ ‘바르다’는 ‘영안’이나 ‘혜안’과도 잘 어울린다. ‘안목(眼目)과 잘 어울리는 서술어, ‘있다,’ ‘갖추다,’ ‘기르다’도 마찬가지이다.
영안이 열려있고, 밝고, 맑은 사람은 ‘빛’을 보면 잘 반응한다. 빛은 ‘진리,’ ‘선,’ ‘사랑’을 상징한다. ‘빛’에 반응하지 않는 사람은 영안이 닫혔거나, 어두운 사람이다. 영안을 감으면, 앞이 깜깜하고, 별빛마저 사라진다. 단테가 쓴 신곡에 의하면, 연옥에서도 별을 볼 수 있다. 사실, 연옥 편은 “나는 별들에 오를 준비가 되어 있었다”로 끝난다. 하지만, 지옥에서 별을 볼 수 없다. 자살하는 사람들의 특성 중 하나는 희망을 보지 못하거나 놓친다는 점이다.
오늘의 희망, 내일에 보리라.
누가 이미 가진 것을 바라랴?
누가 보이는 것을 마음에 품으랴?
오늘 보이는 것은 진정한 희망이 아니니,
오늘 볼 수 없는 것을 마음에 품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