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희동에서 빠르게 걷기

by 후후

빠르게 걷고 싶어도 못 걷는 곳.

여기서는 빨리 걷다간 차에 치일지도 모른다.

여기저기 사진을 찍느라, 사사로운것에 대한 대화를 나누느라 눈과 귀 모두가 바쁜 이들 사이로

이유 없이 바쁘게 걸어가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엘레베이터가 없어 괜시리 사나운 계단 40개를 지나야 내가 고대하던 곳에 도착한다.

문을 마주하고 서서 얘는 내가 반가울까, 생각해본다.

얼마 전엔 흙당근 5개를 사서 깨끗하게 씻기고 닦고 깎고를 반복했다.

씽크볼 사이로 흙이 흘러내려갈때마다 불안했다.

그래서 씽크대가 막혔을까 그래서 세탁기에서 물이 넘쳐버려 자는 내 침대 앞까지 물이 참방참방 했던건지

원인 모를 문제에 땀을 쥐어보기도 한다.


아마도 서울에 오고 나서 이유 없이 진땀을 쥐었던 일이 많았다.

그렇기에 별 거 아닌 일에도 손에 자주 진땀을 쥐는건지도 모르겠다.

언제는 땀을 흘리면 내가 살아있는 것 같다며 끓어넘치는 김치찌개 앞에서 자주 말을 꾸며보곤 했는데

지금 흘리는 땀은 거추장스럽기 그지없다.

사는 것도, 살아있는 것도 아닌 불안.


삶을 대변하듯 흘려왔던 땀은 이제 불안을 대변한다.

원치 않을 때 걸려오는 전화, 자주 낯설게 느껴지는 자취방까지.

살아가는 건 시간을 죽이는 것 말고도 땀을 소진시켜야 하는 목표까지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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