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윰에게
뭘 그리 적고, 또 적었는지. 하루종일 적어도 적을 말은 끝이 없다고 했던 네 온기가 기억나.
글을 쓰는 것을 그윽하게도 사랑해서였을까 ? 정말 글 쓰는 것이 익숙하게도 좋아서일까 ?
혹 네 찰나의 착각이 만들어낸 허상은 아닐지 걱정하며, 그 모든 감정들을 모두 종이에 써내려가는 너를 바라봤어. 어디까지 자신을 믿어야하는지 모르겠다고 했었잖아.
'너의 기록만이 유일하게 온전한 너의 것이야.' 한없이 적어올려가는 너를 맞은편에서 바라보며 한기를 담아 읊조렸던 안녕 때문일까?
너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너만의 머리로 떠올린 것들은, 손으로, 네 언어로, 네 표현으로 너만의 들은 작은 숨소리와 거대한 물소리까지 적어낸거잖아.
누군가는 그저 나무 껍데기라고 지나쳤을, 누군가는 버려진 조각이라며 혀를 찼을, 누군가는 시끄럽다며 조소를 날렸을, 누군가는 부드럽다며 소름끼쳐 했을 장면들은 너의 온전한 감각으로 느끼고 생각하고 경험하며 마주한 순간들로 그려낸거잖아.
글을 쓰며, 결국 네 삶의 모든 발걸음을 이해하게 될 거야.
너를 바라보며 생각해. 지금 이 말을 적어내리기 위해 네가 지금까지 이 길들을 달려왔구나.
영화를 마주하며 바라본 장면들에 깃들어가고, 음악을 들으며 감상에 적셔졌다가도 시선으로 건조시키고, 문득 스치는 드라마의 장면들이 내 머릿속을 춤추게 두고, 책들을 읽으며 배웠던 이야기와 다양한 표현과 어휘들까지.
수 없는 실수와 실패를 거쳐 왜인지 모르겠던 널 마주하고, 아름다운 찰나를 보내며 그때만의 행복인줄 알았던 순간을 다시 떠올리고. 그렇게 무언가를 적어올려가는 시간을 투영하면, 어딘가의 대지와 대기 사이에서 한기와 온기를 내뿜는 네가 보일거야. 뒤섞인 한숨 가운데 선 네가 애정어린 사람이 되고, 꿈인지 나비잠인지에서 쑤구러들어 살아온 네 삶이 정당화 되는 순간이 찾아올거야.
그러니 더 실컷 적어도 돼. 더 맘껏 써내려가도 좋아. 아무도 응원하지 않는 것 같아도 난 너를 응원할게.
너만의 이야기를, 너만의 표현을, 너만의 세상을 온전히 모두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네 피어나는 새싹들에 물을 줄게. 떨어질 네 낙엽들의 순간을 미리 기억해 나무 앞에서 서있을게. 푸르게 해 맞을 네 곁에서 함께 푸르러져 볼게.
계속 네 말을 써줘. 글이라 칭할 수 없는 자국들도, 책이라고는 더더욱 할 수 없을 미만한 글씨의 모임도 좋으니 그냥 무언가를 써내려 갈 수 있는 순간을 선물하고 싶어.
내 마음 속 산길의 메아리가 되어 아직도 맴도는 응원들을, 기억하고, 새겨서, 애틋하게 어루만지고 쓰다듬어주길 바랄게.
추신. 무언가를 기록하는 것이 좋다고 행복해하던 장면이 지워지지 않는다. 그 때의 네 미소는 윤슬이었어.
네가 써내려갈 때 건너편에서 써올려지는 글을 바라보며, 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