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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가람 Feb 16. 2024

공동체 속 연대와 확장 가능성을 연구하는 작가 김병준

우리는 결국 모두 이방인일 뿐이다.


지난 2월 8일, MMCA(국립현대 미술관)는 SBS문화재단과 공동 주최하는 '올해의 작가상 2023' 최종 수상자로 권병준 작가를 선정됐다. ‘올해의 작가상’은 2012년부터 시작한 대한민국의 대표 미술상으로 동시대의 미학적, 사회적 이슈를 다루는 시각예술가 4인을 선발해 신작 제작과 전시 기회를 제공하고 그중 한 명을 최종 수상자로 선정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여기서 권병준 작가는 신작 '외나무다리를 건너는 로봇 (Robot Crossing a Single Line Bridge)'(2023)과 '오체투지 사다리봇(Ochet uiji Ladderbot)'(2022), '부채춤을 추는 나엘(Nael Performing the Fan Dance)'(2021), '장승(Jangseung) (2023) 등 인간사회의 소수자이자 동반자로서의 ‘로봇’을 매개로 삼아 공연 형태의 작품을 선보였다.


MMCA 측 심사위원단은 권병준의 작업이 기술을 통해 인간성에 질문을 던지고, 이를 통해 감동을 전하며 사람들 간의 이해에 관한 날카로운 울림을 준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고 밝혔다.


MMCA 권병준 작가 전시 이미지

권병준 작가의 음악적 시작은 싱어송라이터였다. 그는 1990년대 얼터너티브 록에서 미니멀 하우스를 포괄하는 6개의 앨범을 발표했다. 이후 2000년대부터는 영화 사운드 트랙, 패션쇼, 무용, 연극, 국악 등 다양한 문화 영역에서 자신의 음악적 재능을 선보였다. 그리고 2005년 그는 네덜란드에 거주하며 실험적인 전자악기 연구개발 기관인 스타임(STEIM)에서 하드웨어 엔지니어로 일하며 본격적으로 사운드 하드웨어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는 2011년 귀국하여  현재까지도 사운드 하드웨어 연구자로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또한 새로운 악기와 무대장치 개발을 통해 극적 '장면'을 연출함으로써 음악과 연극, 미술을 아우르는 뉴미디어 퍼포먼스를 기획 연출하는 동시대 작가로서 활동하고 있다.


“저는 귀가 눈보다 더 민감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눈은 이 자본주의 사회, 시각의 홍수 속에서 무언가를 사고 싶다는 욕망을 자극하지만 귀는 마음속으로 들어가는 입구와 같습니다. 눈을 감고 순수하게 소리에 집중할 때, 우리는 잠시나마 일상에서 벗어난 자유를 느낄 수 있습니다. “  _권병준 2023 <올해의 작가상> 인터뷰 중



권병준  <유령극단 "심각한 밤을 보내리">

권병준 작가는 사운드와 로봇을 매개로 한 퍼포먼스 연출을 통해 공동체 속의 인간 연대와 확장 가능성에 관한 실험을 꾸준히 해온 작가이다. 그의 이번 전시 작품 외에도 <유령극단 "심각한 밤을 보내리">는 소리를 전달하는 위치 인식 헤드폰을 이용해 보이지 않는 존재들의 이야기를 찾아가는 관객 참여‧이동형 퍼포먼스를 한 작업이 있었다. 끝에는 관객이 로봇들과 마주하며, 그들의 사연을 듣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를 통해 작가는 먼저 청각적 경험을 한 알 수 없는 정체와 관객 사이에 공감과 연대를 형성하고 끝에는 기계를 만나게 되면서 인간과 기계, 그 사이에 경계를 모호하게 해 버린다. 작가는 이와 같은 경험을 제공함으로써 관객에게 깊은 인상과 생각할 거리를 남긴다. 참고로 이번 전시 작품 중

 '오체투지 사다리봇‘은 ’ 오체투지‘ 즉 인간의 종교적 행위를 기계적으로 재현하는 작품이다.


권병준 <오묘한 진리의 숲 4 : 다문화 가정의 자장가>

또, 2017년부터 2019년까지 4개의 프로젝트로 진행된 <오묘한 진리의 숲>는 역시 위치인식 시스템(Local Positioning System)이 장착된 헤드폰을 이용한 장소 특정적 작업으로, 관람자는 전시공간을 이동함에 따라 소리의 변화를 경험할 수 있다. 작가는 제주도에 입국한 예멘 난민의 노래, 분단선 가까이 위치한 교동도 소리 풍경, 다문화 가정의 자장가 등을 담아 그 소리를 듣는 경험을 통해 잠시나마 특정 집단의 ‘공동체’가  되는 것을 경험하게 한다.  작가는 이와 같은 작품을 통해 우리 사회가 그들과 공존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서로를 얼마나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있는지 되돌아보고 싶다고 전했다. 이 작품은 올해의 작가상 2023 전시에서는 한 공간 안에서 지난 4번의 작업을 압축하여 진행하며, 이번 전시에는 이주민들의 목소리를 담았아냈다고 전한다.


권병준 <입 닥치고 춤이나 춰>

이번 전시 작품 ‘부채춤을 추는 나엘(Nael Performing the Fan Dance)’ 외에도 1998년 출간된 동명의 책 ‘입 닥치고 춤이나 춰'에서 타이틀을 가져온 권병준 작가의 ‘입 닥치고 춤이 나 춰’는 3명의 안무가와 함께 협업한 로봇이 춤추는 작품이 있다. 자유와 해방을 꿈꾸던 90년대 말 한국의 홍대 클럽들을 중심으로 빠르게 퍼저나 간 테크노 비트에  춤추던 젊은 영혼들을 로봇으로 대체한 작품이다. 세기말의 몽환적 분위기는 로봇들의 유려한 움직임과 영상 합성에 의한 대형 군무의 판타지로 재탄생되었다. 이 작품은 작가의 클럽문화에 대한 노스탤지어를 짐작케 하는 요소들을 엿볼 수 있으며 어두운 현실 속에서도 합을 맞춰 하모니를 이루고, 서로를 빛나게 해주는 그 시절의 모습을 로봇으로 표현해 냈다.


MMCA 올해의 작가상 포스터


지금까지 권병준 작가의 과거 작품 몇 가지에 대해 돌아보며 그가 현재까지 이어온 작품에 대한 철학과 가치관에 대해 알아봤다. 이제는 권병준 작가의 신작과 다양한 작품들을 직접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 가서 보고 느끼는 일만이 남았다. 권병준 작가 외에도 후보작가에 오른 갈라 포라스-김과 이강승, 전소정의 작품을 볼 수 있으니 3월 31일 전 친구 또는 연인, 가족과 함께 문화생활을 즐기며 사색의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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