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장 아시아의 현대건축(상)

낯선 풍경 속에서 우리가 배우는 공간의 감정

by 찬 용

도시의 감정을 이해한다는 것은 결국 그 도시가 어떤 속도로 움직이고, 어떤 방식으로 숨을 쉬며, 어떤 리듬으로 하루를 흘려보내는지를 아는 일이다. 한국의 도시에서 감정을 찾아온 우리는 이제 잠시 시선을 바깥으로 돌려 아시아의 도시들이 품고 있는 또 다른 감정의 결을 바라보려고 한다.


아시아의 도시들은 처음 마주하는 순간부터 우리에게 묘한 낯섦을 선물한다. 그 낯섦은 단순한 풍경의 차이가 아니라, 도시가 만들어내는 시간의 밀도에서 느껴진다. 하루가 다른 방식으로 흘러가고, 밤의 온도가 다르고, 길이 품고 있는 공기조차도 서양 도시에서 만나던 것과는 전혀 다른 색을 띠고 있다. 아시아의 도시는 마치 서로 다른 시대가 얽혀 있는 거대한 직물처럼 한눈에 이해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의 결을 가지고 있다.


아시아 도시는 규칙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서구 도시들이 선과 면, 비례와 질서로 도시의 성격을 만들어왔다면 아시아의 도시들은 밀도와 생활, 소리와 냄새, 혼잡과 여백이 서로 엉켜가며 도시의 감정을 만든다. 여기서는 계획이 도시를 주도하지 않는다. 오히려 도시가 계획을 압도한다. 사람의 흐름, 상점의 온도, 시장의 냄새, 밤거리에 깔린 습기, 길 끝에서 들리는 작은 소리들. 아시아의 도시는 이 모든 살아 있는 요소들이 서로 간섭하며 움직인다.


그래서 아시아 도시를 처음 걷다 보면 도시가 ‘완성된 구조’라기보다 끊임없이 형성되고, 변하고, 증식하는 생명체처럼 느껴진다. 홍콩의 좁은 골목이 수직으로 뻗어 올라가는 순간, 싱가포르의 정교한 녹지와 수열 시스템이 거대한 구조를 부드럽게 감싸는 순간, 상하이의 낡은 벽돌 건물이 초고층 빌딩의 그림자 아래서 묘한 조화를 이루는 순간, 도시는 말 그대로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만들어지고 있다.


이런 아시아 도시의 특징은 감정을 느끼는 방식에도 영향을 준다. 서구의 도시들은 시간을 통해 감정이 깊어진다면 아시아의 도시들은 흔적과 층위를 통해 감정이 쌓인다. 여기서 시간은 단순히 오래된 건축이 말하는 시간이 아니라 같은 공간에 서로 다른 시대가 겹쳐진 ‘복합된 시간’이다. 과거와 현재가 나란히 걷고, 낡음과 새로움이 충돌하면서도 묘하게 서로를 인정하는 방식. 이 복잡한 공존 속에서 아시아의 도시는 독특한 감정의 층을 만들어낸다.


예를 들어 도쿄의 골목은 과거의 질감과 현재의 생활이 함께 움직이는 곳이다. 상하이는 역사적 건축물과 미래적 스카이라인이 하나의 풍경처럼 겹쳐 보이고, 홍콩은 산업적 구조물과 생활의 체온이 아슬아슬하게 공존하는 장면을 연출한다. 싱가포르는 철저한 계획 속에서 오히려 자연이 감정의 중심에 자리 잡는다. 이 모든 장면들이 서구 도시에서는 보기 어려운 아시아만의 감각적 경험이다.


아시아의 도시는 종종 ‘혼잡하다’고 표현되지만 그 혼잡 속에서만 느껴지는 감정들이 있다. 삶의 흔들림, 사람들의 온기, 길의 불규칙한 형태, 낡은 건물의 표면을 타고 흐르는 빛. 이 작은 요소들이 모여 도시의 감정을 만든다. 아시아의 도시에서는 건축이 기능을 넘어 삶의 이야기, 존재의 흔적, 감정의 결로 재해석된다.


우리가 이 장에서 하려는 일은 아시아의 현대건축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아시아 도시를 바라볼 때, 어떤 리듬으로 걸어야 하는가 어떤 장면에서 감정이 반응하는가 건축을 어떻게 이해해야 이 도시와 깊게 연결되는가를 이야기하려 한다.


한국에서 감정의 도시를 다시 읽어냈다면 아시아에서 우리는 그 감정이 어떻게 다른 방식으로 움직이고 다른 밀도로 쌓이는지를 경험한다. 아시아의 도시는 우리에게 새로운 감각을 열어주고, 공간을 이해하는 또 다른 언어를 제공한다.


이제 우리는 그 도시들 속으로 들어가보려 한다. 먼저, 가장 압축된 감정의 도시 홍콩이다. 도시는 수직으로 쌓여 있고, 감정은 좁은 골목의 틈에서 살아남는다. 아시아의 도시를 이해하는 첫 장면으로 이보다 더 적절한 출발점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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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을 처음 마주하는 순간 사람은 묘한 압력을 느낀다. 그 압력은 단순히 빌딩이 높아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도시 전체가 수직으로 쌓아 올려진 하나의 거대한 구조물 같기 때문에, 걸음을 내딛는 순간부터 이미 도시의 리듬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든다. 홍콩은 ‘높다’기보다 ‘쌓였다’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리는 도시다.


홍콕의 골목을 걷다 보면 두 건물 사이가 너무 좁아 하늘이 길게 찢긴 선처럼만 보인다. 불규칙하게 붙은 창문들, 베란다의 에어컨 실외기, 빽빽하게 늘어진 간판과 전선들, 그리고 건물 벽면을 가득 채운 생활의 흔적들. 이 도시에서 건축은 단독의 오브제가 아니라 사람들의 삶이 매달린 거대한 ‘덩어리’에 가깝다.홍콩의 건축을 바라볼 때 중요한 것은 건물의 형태나 디자인보다 그 건물들이 서로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이해하는 일이다. 여기서는 건축과 건축 사이의 ‘틈’이 도시의 감정을 결정한다. 낮은 건물과 높은 건물이 충돌하고, 새로운 구조물이 오래된 골목 위에 얹혀지고, 사람들의 생활이 그 틈새를 비집고 스며든다. 이 도시의 감정은 바로 그 비좁은 틈에서 피어난다.


수직의 밀도는 언뜻 보기에는 감정을 없애는 것처럼 보인다. 높은 아파트 단지, 좁은 골목, 겹겹이 쌓인 간판들, 그리고 밤에도 꺼지지 않는 불빛들. 그러나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하루는 놀라울 만큼 따뜻하고, 인간적이며, ‘생활의 냄새’가 난다. 홍콩의 도시 풍경은 차갑지만 그 안의 감정은 뜨겁다. 이 모순이 홍콩 건축의 본질이다.


특히 홍콩의 오래된 아파트 단지들은 도시가 가장 솔직한 상태로 스스로를 드러내는 장면이다. 균일하게 반복되는 외피, 패턴처럼 찍힌 창호, 시간이 만든 얼룩과 녹. 이 단지들은 과거의 정책적 선택과 도시의 생존 방식이 어떻게 결합했는지를 그대로 보여준다. 그러나 그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 창가에서 식사를 준비하는 냄새, 낮은 층을 스치는 사람들의 발자국, 저녁마다 창문 앞에 잠시 머무는 누군가의 그림자. 이 모든 요소들이 이 단지를 단순한 기능적 공간이 아니라 생활이 살아 있는 거대한 건축으로 만든다.


홍콩 건축에서 가장 흥미로운 장면은 ‘시간’이 건축을 어떻게 바꾸는가이다. 도시는 빠르게 재개발되지 않는다. 새로운 빌딩이 들어서도 바로 옆에는 40년, 50년 된 낡은 건물이 그대로 버티고 있다. 이 겹침은 ‘정리되지 않은 도시’처럼 보일 수 있지만 오히려 그 비정형의 층위가 도시의 감정을 가장 깊게 만든다. 완벽하게 치장된 도시보다 시간이 남긴 흔적이 더 정직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홍콩의 현대건축 역시 이 도시의 밀도 속에서 새로운 해석을 시도한다. ICC, HSBC, 치중센터 같은 초고층 빌딩들은 홍콩의 기술적 자신감과 국제금융 도시로서의 정체성을 보여주지만 도시 전체를 지배하지 않는다. 이 건물들은 압도적인 규모에도 불구하고 골목에서 살아가는 생활의 결을 지워버리지 않는다. 오히려 그 대비 속에서 도시는 더 풍부한 감정의 층위를 만든다.


홍콩의 아름다움은 화려함에서 오지 않는다. 오히려 불완전함, 비좁음, 혼합, 흔들림 같은 요소들이 이 도시만의 감정을 만들어낸다. 건축을 ‘감상하는’ 방식이 아니라 그 안에 숨어 있는 삶을 ‘읽는’ 방식으로 바라보면 홍콩은 세계에서 가장 솔직한 도시 중 하나가 된다.이제 우리는 이해하게 된다. 왜 아시아 도시를 이야기할 때

홍콩이 첫 장면으로 적합한지. 이 도시는 감정이 억눌린 공간이 아니라 압축된 감정이 끓어오르는 공간이다. 수직의 압력 속에서도 사람들의 삶은 끝까지 흔들리지 않고 자리를 지킨다. 홍콩의 건축은 그 삶의 흔적을 가감 없이, 왜곡 없이, 그대로 보여준다.


그리고 이 도시는 아시아가 가진 가장 중요한 메시지를 전한다. 건축을 보는 것이 아니라 건축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의 감정을 읽는 것, 그것이 아시아 도시를 즐기는 첫 번째 방법이다.이제 우리는 아시아의 또 다른 장면 싱가포르로 향한다. 이 도시는 홍콩의 복잡함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도시와 감정의 균형을 완성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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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는 아시아의 도시 중에서도 처음 걸어보는 순간부터 공기가 다르다. 홍콩이 도시의 압력과 밀도를 온몸으로 느끼게 하는 도시라면, 싱가포르는 도시가 사람의 호흡에 맞추어 자신의 속도를 조절해주는 듯한 느낌을 준다. 아시아에서 보기 어려운 ‘부드러운 도시’라는 표현이 이곳에서는 이상하게도 자연스럽다.


싱가포르의 도시를 걷다 보면 무엇 하나 우연히 놓여 있는 것이 없다는 사실을 곧 알게 된다. 나무 한 그루, 벤치 하나, 횡단보도 앞의 그늘, 그리고 건물 외벽을 타고 흐르는 녹지까지. 도시는 철저한 계획으로 움직이지만 그 계획이 사람을 압박하지 않는다. 오히려 도시가 사람을 위해 미리 자리를 깔아놓고 “괜찮아, 여기서 잠시 쉬어가도 돼” 하고 말하는 듯하다.


싱가포르는 도시계획을 ‘기능’이나 ‘질서’로만 다루지 않는다. 이 도시는 계획의 목적을 “사람이 행복하게 머무는 순간”에 두고 있다. 그래서 도시 곳곳에서 자연이 건축을 부드럽게 감싸며 흐른다. 파크로열(PARKROYAL COLLECTION)이 대표적이다. 이 호텔은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임에도 마치 건물이 자연을 위해 비켜서 준 것처럼 보인다. 층층이 쌓인 녹지 테라스는 자연이 도시의 외피를 직접 설계한 듯한 형태로 흘러가고, 사람은 그 안에서 ‘건축에 들어간다’는 느낌보다 ‘자연의 그늘 아래로 들어간다’는 감정을 먼저 느낀다.


싱가포르의 건축은 자주 ‘친환경’으로 설명되지만 그 말로는 부족하다. 이 도시에서 자연은 단순한 장식이나 기능이 아니라 건축의 중요한 감정적 요소다. 식물을 많이 심어서가 아니라 식물이 건물의 리듬, 형태, 표면, 그림자를 바꿔놓기 때문이다. 바람이 건물 사이를 지나가며 나뭇잎을 흔드는 소리까지 도시의 분위기 일부로 느껴진다. 이 모든 요소가 싱가포르를 “감정적으로 부드러운 도시”로 만든다.


마리나베이샌즈는 싱가포르의 기술적·경제적 자신감의 상징이지만 여기에도 도시의 부드러움이 배어 있다. 세 개의 타워가 수직으로 서 있음에도 도시는 그 사이에 거대한 녹지를 끼워 넣으며 바다와 도시가 만나는 지점을 편안하게 연결해준다. 야경은 화려하지만 그 화려함이 사람을 압도하지 않는다. 오히려 멀리서 바라보면 수면에 비친 불빛이 하루의 마지막을 조용히 감싸주는 듯한 인상을 준다.


싱가포르는 계획된 도시임에도 기계적인 느낌이 들지 않는다. 그 이유는 도시 전체에 흐르는 ‘감정의 완충 장치’ 때문이다. 도로 옆에 놓인 작은 식물원 같은 녹지, 고층 건물이 주는 차가움을 중화하는 수경시설, 주거 단지 사이사이에 배치된 어린이 놀이터와 공원들. 이곳에서 건축은 사람을 위한 거대한 틀일 뿐만 아니라 사람의 감정을 오랜 시간 지켜주는 풍경이 된다.싱가포르의 도시 성격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곳은 ‘주롱 호수(Jurong Lake)’ 주변이다. 이곳은 도시의 성장과 확장 속에서도 자연을 중심에 두려는 의지가 드러나는 공간이다. 물이 도시의 핵심이 되고 건축이 그 물을 바라보며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다. 도시는 중심이 아니라 자연의 주변부를 차지하며 조용히 흐른다. 그 장면은 아시아의 수많은 도시들 사이에서 싱가포르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감정의 풍경이다.


한국의 도시가 기능과 효율을 중심으로 달려왔다면 싱가포르는 기능을 유지하면서도 사람을 위한 ‘부드러운 틈’을 남기는 방식으로 발전해왔다. 이 도시를 걷다 보면 건축이 설명이 아니라 감각으로 이해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림자, 온도, 바람, 식물, 물결. 이 모든 요소가 건축의 일부가 되고 도시는 그 안에서 사람에게 가장 자연스러운 상태로 자신을 내어준다.


싱가포르는 결국 이렇게 말하는 도시다. 계획의 디테일이 많아질수록 도시의 감정도 함께 정교해질 수 있다고. 자연을 건축의 장식으로 다루는 것이 아니라 건축의 구조와 리듬에 자연을 끌어들일 때 도시는 비로소 사람에게 머무를 자리를 만들어준다고.그래서 홍콩이 ‘감정의 압축’을 보여주는 도시였다면 싱가포르는 ‘감정의 완충’을 보여주는 도시다. 이 두 도시의 대비는 아시아의 감정적 스펙트럼이 얼마나 넓은지를 우리가 정확히 이해하게 한다.


이제 우리는 아시아의 또 다른 방향으로 이동한다. 상하이다. 이 도시에서는 과거의 질감과 미래의 속도가 하나의 장면으로 겹쳐져 있으며, 아시아 도시가 어떤 방식으로 시간을 품는지 가장 직관적으로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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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는 도시를 걷는 사람에게 아시아의 시간이라는 것이 얼마나 복잡한 층위를 갖는지 가장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도시다. 처음 상하이에 도착하면 도시는 압도적인 속도로 미래를 향해 달려가는 것처럼 보인다. 푸둥의 초고층 건물들이 뿜어내는 에너지, 빛으로 뒤덮인 야경, 도시를 가로지르는 넓은 도로와 강. 모든 것이 선명하고, 빠르고, 거대하다.


하지만 조금만 발걸음을 돌리면 도시는 갑자기 다른 시간을 꺼내 보여준다. 낡은 벽돌 건물들이 늘어선 골목, 20세기 초반의 흔적이 남아 있는 와이탄의 건축군, 거칠게 벗겨진 외벽 위를 따라 흐르는 오래된 시간의 흔적들. 상하이는 ‘과거’라는 단어를 소중히 간직하는 도시다. 그러나 그 과거는 박제된 유물이 아니라 지금도 도시의 표면 위에서 자연스럽게 호흡하고 있는 살아 있는 시간이다.


상하이를 걷다 보면 가장 매력적인 장면은 과거와 미래가 서로에게 그림자를 던지는 순간이다. 낡은 주택가의 골목 끝에서 상하이 타워가 하늘을 뚫고 솟아 있는 모습이 보일 때, 도시는 두 개의 시간이 겹쳐진 거대한 사진처럼 느껴진다. 이 감정은 상징적이면서도 현실적이고, 낯설면서도 짙게 인간적이다. 도시가 성장하면서도 자신이 지나온 시간을 버리지 않았다면 그 풍경은 이렇게 느껴지지 않았을 것이다.


이 겹침의 미학은 상하이 자연사박물관에서 절정을 이룬다. 자연을 닮은 유선형의 형태, 땅을 파고들며 공간 품어내는 구성, 건축과 조경이 하나의 흐름처럼 이어지는 장면. 이 건축은 새롭지만 차갑지 않고, 기술적이면서도 인간적이다. 마치 상하이가 가진 다층적인 시간의 결을 하나의 구조로 번역한 듯한 느낌을 준다.


롱뮤지엄(Dragon Museum) 역시 상하이라는 도시의 양면성을 가장 아름다운 방식으로 드러낸 건축이다. 기존 벽돌창고와 새로운 콘크리트 구조물이 거친 질감 그대로 맞물려 있다. 과거는 새로운 건축의 하부 구조가 되고, 새로운 구조물은 과거의 시간을 부드럽게 들어 올린다. 이 결합 방식은 상하이가 가진 정체성을 단 한 장면으로 압축해 보여준다. 시간이 건축을 갈라놓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서로를 지탱하는 방식으로 작동하는 도시.


한국의 도시가 재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을 명확히 분리해왔다면 상하이는 그 둘을 오히려 ‘겹쳐 놓는 방식’으로 해결한다. 그래서 도시를 걷는 사람은 시간이 단절되지 않은 느낌을 받는다. 과거의 냄새를 맡으며 미래의 풍경을 동시에 바라보는 경험. 이 두 가지가 충돌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상하이를 더욱 매력적인 도시로 만든다.


상하이의 감정은 그 도시의 밀도에서 태어나는 것도, 초고층 건물이 주는 위압감에서 태어나는 것도 아니다. 이 도시의 감정은 ‘시간’이라는 요소가 서로 겹쳐지며 만들어내는 작은 울림들에서 온다. 지역 시장에서 들리는 사람의 목소리, 골목 끝에서 비치는 네온사인의 빛, 오래된 건물 벽에 남은 습기, 강을 따라 흐르는 바람의 냄새. 이 모든 감각의 층위들이 도시 전체의 시간을 하나로 묶어낸다.


상하이는 이렇게 말하는 도시다. 시간은 새로움의 적이 아니라 새로운 것의 근거가 될 수 있다고. 과거를 보존하는 것이 뒤처짐이 아니라 도시를 더 깊고 넓게 만드는 방식일 수 있다고. 그래서 상하이를 걷는 사람은 건축을 바라보는 동시에 시간을 바라보게 된다. 그리고 그 시간 속에서 자신의 감정도 함께 층위를 가진다.


홍콩이 수직의 압력 속에서 감정이 터지는 도시였다면, 싱가포르는 부드럽게 감정을 품는 도시였다. 그렇다면 상하이는 시간의 층을 통해 감정을 만드는 도시다. 아시아의 도시들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 감정을 다루고 있다는 사실을 상하이는 가장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이제 우리는 아시아 감정의 또 다른 방향으로 이동한다. 이번에는 계획된 미래도시도, 높은 빌딩의 숲도 아닌 시간을 가장 조용하게 품고 있는 곳. 도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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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를 처음 걸으면 이 도시가 왜 이토록 독특한 감정을 만들어내는지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이상한 안도감이 느껴진다. 도시는 거대하고 복잡하고, 사람은 많고, 건물도 많고, 골목도 복잡하게 얽혀 있지만 그 복잡함이 사람을 쫓아내지 않는다. 오히려 도시가 조용히 말한다.


“천천히 걸어도 괜찮아.”


도쿄의 도시 구조는 홍콩처럼 압축되어 있지도, 싱가포르처럼 부드럽게 정리되어 있지도 않고, 상하이처럼 거대한 양극의 시간 위에서 움직이지도 않는다. 도쿄는 그 모든 것들을 조금씩 섞어 도시와 일상을 동일한 레벨에서 흘러가게 만든다. 그래서 이 도시는 ‘거대한 도시의 리듬’을 느끼지 않고도 그 속에서 자연스럽게 섞여 들어갈 수 있다.


그 비밀은 여백에 있다.도쿄는 건물과 건물 사이, 도시와 사람 사이, 길과 골목 사이에 꼭 필요한 만큼의 여백을 남겨둔다. 이 여백은 단순히 비어 있는 공간이 아니라 사람의 감정을 ‘누르지 않는 공간’이다. 도시는 밀도 높지만 사람은 그 밀도에서 압박을 느끼지 않는다. 여백이 감정을 지켜주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장면은 오모테산도다. 수백만 명이 오가는 거리지만 길을 따라 늘어선 건축은 화려함보다 ‘숨 쉴 틈’을 먼저 만든다. 앤도 다다오가 설계한 오모테산도 힐스는 그 대표적 사례다. 길과 건물, 상점과 보행자의 관계를 무리하게 밀어붙이지 않고 부드럽게 이어놓는다. 곡선을 따라 이어지는 내부 동선, 자연광을 받아들이는 천창, 건물의 깊이를 이용해 만들어낸 복도식 여백. 이 모든 요소는 도시의 복잡함 속에서 사람에게 필요한 감정적 완충을 제공한다.


도쿄의 골목은 더욱 인상적이다. 좁은 길, 낮은 건물, 작은 이정표. 그런데 그 안에 사람이 살아가는 모든 감정이 들어 있다. 조용히 흐르는 음악, 카페 문 앞에 놓인 작은 화분, 작업실에서 흘러나오는 따뜻한 빛. 도쿄의 골목은 과장되지 않으면서 사람의 하루를 조용히 받아들이는 공간이다. 그 감정은 ‘소리 없는 배려’에 가깝다.


‘도쿄 국립신미술관’ 같은 현대 건축도 도시의 복잡함 속에서 감정을 지켜주는 여백의 역할을 한다. 쿠마 켄고의 건축에서 자주 보이는 목재의 결, 격자, 바람, 그림자가 도시의 강한 자극을 부드럽게 걸러낸다. 이 건축들은 ‘거대한 오브제’라기보다 사람의 체온을 흡수하는 그늘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도쿄는 건축 요소 하나하나가 사람에게 불필요한 압박을 주지 않도록 설계되어 있다. 도시의 건축이
사람을 향해 밀려오지 않고, 사람이 도시 속에서 자연스럽게 녹아들도록 만든다. 이 사소한 배려의 누적이
도쿄를 ‘감정이 편안한 도시’로 완성한다.


도쿄를 걷다 보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도시가 거대해도, 사람이 작아지지 않을 수 있구나.”


도쿄는 그 비결을 알고 있는 도시다.


홍콩, 싱가포르, 상하이, 도쿄. 네 도시는 모두 아시아에 있지만 각자가 품은 감정의 방식은 놀라울 만큼 다르다.


홍콩은 수직의 압력 속에서 감정이 살아남는 도시다. 밀도와 혼잡함이 사람을 압박하는 듯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틈새에서 가장 인간적인 감정이 솟아오른다.


싱가포르는 계획과 자연의 정교한 균형 속에서 감정이 회복되는 도시다. 도시가 사람의 호흡을 먼저 고려하고 자연이 도시의 여백을 감싸 안으며 감정이 부드럽게 흐르도록 만든다.


상하이는 겹쳐진 시간이 감정을 만들어내는 도시다. 과거와 미래가 서로의 그림자가 되어 도시 전체가 거대한 시간의 층위를 이루며 감정은 그 층위 사이에서 자연스레 깊어진다.


그리고 도쿄는 복잡함 속에서도 사람을 압박하지 않는 도시다. 여백을 남겨두는 기술을 통해 도시와 사람이 무리 없이 공존하는 방법을 보여준다.


아시아의 도시들은 기능을 위해 건축을 만들었다가 기능 속에서 감정을 잃기도 했으며 다시 그 기능의 잔해 속에서 감정을 회복했다. 그러나 그 과정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도시가 만들어내는 감정의 결도 모두 다르다.그래서 아시아의 현대건축을 즐긴다는 것은 단순히 건물을 보는 일이 아니라 도시가 감정을 품는 방식을 이해하는 일이다. 한 도시의 감정은 하나의 건축이 아니라 수많은 건축과 삶의 흔적이 만들어낸 복합적인 리듬 속에서 생겨난다. 그 리듬을 느끼기 위한 첫걸음이다.


도시의 형태가 아니라 도시의 감정을 읽는 법.

건축의 외형이 아니라 건축이 품은 생활의 잔향을 듣는 법.

그리고 무엇보다 아시아의 도시에서는 감정이 어떻게 살아 있고,

어떤 방식으로 흔적을 남기는지를 이해하는 법.


이제 아시아의 감정은 더 작은 공간들, 더 삶에 가까운 건축들, 더 낮고 따뜻한 장소들에서 어떻게 스며 나오는지 살펴볼 차례다.

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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