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극성 분자는 극성이 없는데 어떻게 응집하는가?

원리를 쉽게 설명하는 변호사

by 박진현 변호사

1. 무극성 분자의 상태 변화에 따른 의문


“극성도 없는 분자들은 왜 서로 떨어지지 않고 액체나 고체가 될까?"


전하의 쏠림이 없다면, 서로를 끌어당길 이유도 없어 보인다. 그런데 현실은 다르다. 산소나 질소처럼 무극성 분자들도 조건이 맞으면 분명히 액체가 되고, 때로는 고체로 존재한다. 이처럼 전하의 치우침이 없는 무극성 분자들 사이에도 분명 인력이 존재한다. 영구적인 전하 쏠림(쌍극자)이 없는 분자들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에 대한 해답은 전자의 동적 특성에 있다.


2. '순간 쌍극자'의 형성과 '유도 쌍극자'의 발생


분자 내의 전자들은 특정 위치에 고정되지 않고 끊임없이 운동한다. 이러한 전자 구름이 외부의 영향이나 확률적 움직임에 의해 한쪽으로 쏠리며 변형되는 성질을 '편극'이라 한다. 이 편극 현상으로 인해 균등했던 전자 분포가 무너지면, 극히 짧은 순간 분자의 한쪽은 음전하를, 반대쪽은 양전하를 띠는 불균형 상태가 된다. 이처럼 편극이 원인이 되어 일시적으로 생성된 극성 상태를 '순간 쌍극자'라 정의한다.


한 분자에 형성된 순간 쌍극자는 인접한 다른 분자에 전기적 영향을 미친다. 순간 쌍극자의 음전하 부분에 가까운 이웃 분자의 전자들은 반발력에 의해 밀려나게 되고, 결과적으로 이웃 분자에도 전하의 쏠림이 유발된다. 이를 '유도 쌍극자'라고 한다. 이처럼 정지해 있던 분자들이 연쇄적으로 극성을 띠게 되면서 분자들 사이에는 정전기적 인력이 형성된다.


3. 분산력의 보편성과 힘의 세기


이와 같이 순간 쌍극자와 유도 쌍극자 사이의 상호작용으로 발생하는 힘을 '분산력(Dispersion Force)' 또는 '런던 힘(London Force)'이라 한다. 분산력은 쌍극자-쌍극자 힘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하고 일시적이지만, 전자를 가진 모든 원자와 분자에서 예외 없이 발생하는 가장 보편적인 인력이다.


분산력의 크기는 분자의 크기와 전자 수에 비례한다. 분자가 크고 전자 수가 많을수록 전자 구름의 부피가 커지며, 외부 자극에 의해 전자 분포가 쉽게 변형되는 '편극성'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동일한 무극성 분자군 내에서도 분자량이 커질수록 끓는점이 상승하는 이유는 바로 이 분산력이 강화되기 때문이다.


4. 결론: 찰나의 불균형이 만드는 물질의 상태


무극성 분자에서 '극이 없다'는 것은 고정적이고 영구적인 극성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일 뿐, 미시적인 시간 단위에서는 끊임없는 전하의 동요가 일어난다. 찰나에 발생하는 전자의 불균형과 그로 인한 연쇄적인 유도 현상이 분자들을 결속시키는 힘의 실체다. 결국 물질의 거시적인 상태는 전자의 미세하고 역동적인 움직임이 만들어낸 논리적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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