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다리 아저씨
어릴 때 읽은 『키다리 아저씨』에서
유난히 오래 남은 장면이 있다.
주디가 후원자가 준 용돈으로
이것저것을 사고,
마음에 들었던 것과
별로였던 것을
편지에 그대로 적어 내려가던 대목이다.
그 글을 읽는 재미가 있었다.
주디는 물건을 단순히 소비하지 않았다.
써보고, 살아보고,
그 물건이 자기 일상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를
기쁘게 기록했다.
그 글에는
“샀다”보다
**“함께 지냈다”**가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마 그것이
내가 처음 만난
‘내돈내산 리뷰’였을 것이다.
주디의 편지는
감사 인사로만 채워지지 않았다.
마음에 들지 않은 물건은
그대로 별로였다고 썼고,
괜히 산 선택도
숨기지 않았다.
돈을 받았지만
선택의 주체는
끝까지 자기 자신이었다.
그 태도가 좋았다.
주디는 보호받는 아이처럼 보이지 않았고,
자기 삶을 직접 쓰는 사람처럼 보였다.
돈을 쓰는 방식이
그 사람을 드러낸다는 사실을
나는 그 소설에서
이미 배웠는지도 모른다.
카드 내역서는
단순한 지출 목록이 아니다.
그건
내가 무엇을 선택했고,
그 순간 어떤 감정과 욕망에
끌렸는지를 고스란히 담은 기록이다.
숫자 사이사이에는
망설이던 나,
설레던 나,
괜히 사고 나서
조금 후회하던 나까지
모두 살아 있다.
그래서 카드 내역서는
무미건조한 데이터가 아니라
생생한 캐릭터다.
주디의 글이
무려 4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는 이유는,
일상의 소비를
자기 이야기로 풀어냈기 때문일 것이다.
때로는 무리해서 샀다.
그땐 분명 과한 선택이었지만,
오랫동안 쓰고 나니
그 무모함마저
유쾌한 추억이 되었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다.
기대만 컸고
조용히 사라진 물건들.
그럼에도 어떤 물건은
쓰임보다
가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만족감을 준다.
그 물건은
한 시절의 나를 대표한다.
그때의 취향과 마음,
그때의 나 자신까지
함께 담고 있어서.
해보니 소비는
아주 좋은 경험이다.
물론
천 원짜리 커피 앞에서도
곤란한 얼굴로
돈을 모으던 시절이 있었다.
그래서 지금
갖고 싶은 것을
내 힘으로 살 수 있게 된 이 경험이
더 특별하고, 더 소중하다.
돈을 쓰는 일은
사치가 아니라
시간을 통과해 온 나에게 주는
작은 증명처럼 느껴진다.
지금 생각해도
주디의 그 편지는
정말 좋은
내돈내산 리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