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그게 바로 너야.
학창 시절부터 허물없이 지내온 60대 나이의 친구 몇 명이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었다. 비슷한 나이였고 친했기 때문에 공통점이 많았다. 크고 작은 일에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잘 통하는 사이였다. 하지만 각자 살아온 이력이 달라 어떤 부분에서는 이런저런 차이를 보였다. 그래도 분위기는 유쾌하였다.
쾌락주의 성향의 한 친구가 자기 생각을 말하였다.
“세상에서 제일 큰 재미를 주는 것은 맛있는 음식과 섹스가 아닐까?”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말이 말을 부르고 미처 정리되지 않은 말들이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방향도 초점도 없이 말잔치가 벌어졌다.
“에이, 사람이 그리 단순한가? 다른 재미있는 것도 많잖아?”
“나는 아내와 각방 쓴 지 오래됐어. 섹스보다 더 좋아하는 것이 생겼지. 요즘 난을 키우는 재미에 빠져서 지낸다고.”
“골프, 그것 참 재미있던데.”
여러 가지 취미 이야기가 나왔다. 그러다가 누군가가 갑자기 돈 이야기를 하였다.
“다들 아주 건전하구나. 나는 요즘 돈 욕심이 생겼어. 돈 좀 벌어볼까 하고 주식을 하는데, 그거 쉽지 않네. 그런데도 마치 게임중독처럼 쉽게 손을 놓지도 못하겠어.”
주식으로 큰 손해를 본 적이 있는 친구가 말했다.
“너는 무주식(無柱式) 상팔자라는 말을 몰라? 주식시장에서 재미를 보는 사람은 전문가나 내부정보를 가진 자들이야. 일반인에게는 말 그대로 개미지옥이라고. 곁에 가지 마. 모르는 자에게는 그저 도박이라고.”
인생 말년에 위험한 일을 벌이면 안 된다는 신중론자의 의견에 동조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반박하는 말도 이어졌다.
“어차피 인생은 도박이 아닌가? 자기 뜻대로 되는 것이 별로 없잖아.”
“맞아 맞아. 세상은 우연(偶然)이 지배하지. 부모도 우연이고, 내가 남자로 태어난 것도, 이 모양 이 꼴로 사는 것도.”
이런 숙명론자와 달리 자유의지를 강조하는 친구가 반대 의견을 꺼냈다.
“자신이 선택한 것도 많지 않나? 내가 여기 온 것도 그렇고.”
조금 비관적인 태도를 가진 친구가 말하였다.
“시장에서 물건을 자유롭게 사는 것 같지만, 어디까지나 시장에 나온 것 중에서, 또 주머니가 허락하는 범위 안에서 고르는 것 아닌가? 선택의 자유라는 것도 주어진 조건 속에서의 선택일 뿐. 실제로는 나는 자유롭지 못해.”
설득력이 있는 말이었다. 하지만 다른 의견도 들을 만했다.
“네 말은 그럴듯해 보이지만 비현실적이고 조금 비관적인 냄새가 난다. 어차피 우리는 절대적인 자유를 누리는 신이 아니야. 자기 멋대로 살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없다고.”
현실을 객관적으로 보려는 친구의 말에 아무도 반박하지 않았다. ‘모든 사람은 제한된 자유만을 누린다는 점에서 평등하다.’는 사실에 동의하는 분위기였다. ‘불완전의 평등’에 위안을 받는 듯했다. 한 친구가 인생의 깊은 의미를 깨달은 것 같은 표정으로 한 마디를 하였다.
“이러나저러나 한 번 살다 죽기는 마찬가지 아니냐?”
말이 끝나자마자 다른 말이 나왔다.
“너는 달라이 라마와 전두환의 삶이 마찬가지라고 생각해?”
“밥 먹고 똥 싸며 사는 것은 같지 않나? 먹고사는 방식이 다를 뿐이지.”
두 의견이 모두 그럴듯해 보였다. 그렇지만 얼른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표정들이었다. 반박이 쉽지 않아 보였다. 그때 누군가가 이렇게 말했다.
“사람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고. 너 역시 복잡한 존재야. 잘 생각해 봐. 네가 하고 싶은 것이 몇 가지나 되나.”
“음. 하고 싶은 것이 정말 많지. 이것저것.”
“하고 싶은 것 중에서도 진짜 하고 싶은 것이 있고, 굳이 안 해도 되는 것도 있고.”
갑자기 말들을 멈췄다. 자신들이 진짜 무얼 하고 싶은지 생각해 보는 듯했다.
“네가 하고 싶은 것들을 꼽아 봐. 우선순위도 정해보고. 그게 바로 너야.”
내가 누군가를 알고 싶으면 대개 현재 그의 사회적 지위와 역할을 알아볼 것이다. 좀 더 알고 싶으면 그의 지난 과거의 이력을 찾아볼 것이다. 지위, 역할, 이력으로 그가 누구인지를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그가 어떤 삶을 살아왔고, 또 살아가려 하는지를 이해하는 것이다.
사장, 과장, 의원, 장관 역할은 껍데기다. 역할은 도구이다. 완장은 완장일 뿐이다. 그것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 의원 완장을 차고 도둑질에 혈안이 되어 있다면, 그는 의원일까 아니면 도둑일까? 그가 추구하고 꿈꾸는 세상이, 그의 마음이 인격의 핵심이다. 삶의 본질은 삶을 대하는 태도에 있다.
석가와 예수가 우리의 빛인 까닭은 무엇일까? 진실하고 아름다운 세상을 향해 걸었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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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구를 충족하면 만족하고
좌절하면 분노한다.
어떤 욕구를 맨 위에 두고 있는가?
어느 욕구에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가?
욕구 내용이, 서열이, 수준이
곧 ‘나’의 존재 수준이다.
사람은 마음의 존재이다.
청소가 돈벌이가 될 수도 있고
수행이 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