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사랑의 눈물은 가슴의 말이다.
신랑이 먼저 입장했다. 주례에게 인사를 한 뒤 조심스럽게 뒤로 돌아섰다. 신부를 맞을 준비를 하였다. 식장 안은 조명이 낮은 상태에 있었다. 사회자가 ‘신부 입장’을 알리자 닫혔던 출입문이 열렸다. 실내로 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문이 만든 환한 빛의 사각형 공간으로 눈들이 쏠렸다. 그 빛 가운데 새하얀 드레스를 입은 신부가 아버지의 손을 잡고 행진을 예고하고 있었다.
바그너의 결혼행진곡이 식장 구석구석까지 울려 퍼졌다. 음악이 하객들의 박수소리와 어우러졌다. 신랑이 연단을 내려섰다. 신부의 아버지에게 절을 한 뒤 신부의 손을 잡고 연단으로 다시 올라섰다.
신랑과 신부가 맞절을 하였다. 신랑은 미리 준비했던 사랑의 서약서를 펼쳤다.
“나는 오늘 이 자리에서 당신을 평생의 반려자로 맞이하고 영원히 사랑할 것을 맹세합니다. 세상은 바람처럼 변하고 꽃은 피었다 질지라도 나는 바위처럼 언제나 당신 곁에 서 있겠습니다.”
서약서 낭독이 시작되자 식장은 순식간에 고요해졌다. 모든 눈과 귀는 신랑의 입에 집중하였다. 신랑이 하는 사랑의 약속 내용을 놓치지 않으려 하였다.
“견디기 어려운 시련의 순간이 올지라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어떤 경우에도 당신의 든든한 울타리가 될 것입니다.”
신랑의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 자신이 하는 말에 진정성이 담기는 순간, 그 말이 그를 흔든 것이다. 신랑의 서약이 끝나자 신부가 사랑의 서약서를 읽기 시작했다.
“나는 오늘 이 자리에서 당신을 남편으로 받아들입니다. 영원히 사랑할 것을 약속합니다. 당신께서 만들어 주신 사랑의 뜨락에 노오란 수선화를 심겠습니다.”
신부는 복받치는 감정을 이겨내지 못하고 울음을 섞어 글을 읽었다.
“당신이 세워주신 아담한 울타리에 빨간 넝쿨 장미를 올리겠습니다. 나비가 날고 새가 노래하는 아름다운 정원을 꾸미겠습니다.”
아마 집에서 혼자 연습을 할 때는 아무렇지도 않게 읽었을 것이다. 그러나 신랑 앞에서 직접 서약의 글을 읽을 때는 ‘신랑을 향한 사랑의 감정’이 더해졌을 것이다. 읽는 속도가 더 느려졌다.
“당신과 함께 노래하고, 당신과 함께 울 것입니다. 먼 길 걸어오신 당신의 쉼터가 되고, 지친 마음을 내려놓을 안식처가 되겠습니다.”
신부의 눈물이 낭독을 멈추게 했다. 신랑도 주례도 조금 당황하였다. 하객들이 큰 박수로 신부에게 힘을 보탰다. 마치 자신이 신부가 된 것처럼 눈물을 흘리는 하객도 있었다. 신부가 서약서를 간신히 다 읽었다. 식장은 커다란 박수 소리로 가득하였다.
사랑한다는 ‘가슴의 말’을 어찌 ‘입의 말’로 다 표현할 수 있겠는가? ‘사랑의 눈물’은 사람이기에 가능한 것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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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인공지능(AI)의 비중은 점차 커지고 있다.
로봇이 인간보다 우월한 면도 많다는데
우리는 로봇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할까?
만사를 로봇이 대신한다면
인간은 존재 의미를 어디서 찾아야 할까?
로봇은 인간이 아니다.
로봇은 ‘무의미’ 자체다.
인간보다는 돌멩이에 더 가깝다.
로봇은 고장 나지만
병들지 않는다.
파괴되지만
죽지 않는다.
희로애락도 없으며
자신의 존재 이유도 의미도 묻지 않는다.
로봇의 존재 목적은 미리 주어지지만
인간은 스스로 자신의 존재 이유를 만들어야 한다.
로봇은 고통을 모른다.
죽지 않는다.
인간은 고통을 느낀다.
죽을 운명 앞에서 불안해한다.
마모되는 로봇은 수리한다.
사람은 사랑으로 치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