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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걍보리 Apr 04. 2023

너는 내 세상이다

22. 삶은 죽음 속에서 핀 꽃이다.

  21년 1월 28일 이른 아침, 아산병원 간이식병동. 이송직원이 휠체어를 끌고 왔다. 간 공여자(간을 주는 사람)인 조카를 싣고 수술실로 이동하였다. 보호자인 나도 따라갔다. 수술실 입구에는 간 수혜자(간을 받는 사람)인 동생과 제수씨가 먼저 와서 대기하고 있었다. 긴장 속에서 서로 가볍게 인사를 나누었다. 네 명 모두 굳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수술실로 들어가기 전 잠깐 동안의 대기 중에 동생이 자기 아들의 손을 잡았다.

  “병훈아!” 

  동생이 아들의 이름을 불렀다. 짧고 무거운 부름이었다. 그 부름에는 아들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수술의 성공을 비는 간절함이, 가족의 장래에 대한 끝없는 걱정이, 삶에 대한 깊은 슬픔이 배어 있는 것 같았다. 애정 표현 방법이 서투르고 무뚝뚝하며 냉소적인 말투를 지닌 동생의 평소 태도와는 완연히 달랐다. 아빠의 부름에 조카가 “예.”하고 대답했다. 조카가 말을 이었다.

  “아빠, 힘내세요. 저도 힘낼게요.” 

  제수씨와 나는 말없이 그들이 수술실로 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오후 세시 경, 조카가 수술을 마치고 마취가 덜 풀린 상태로 입원실로 돌아왔다. 간호사는 수술이 잘 되었으니 안심하라고 했다. 병원 수술 뒤에 늘 듣는 상투적인 그 말이 고맙고 고마웠다. 코와 어깨 배 등 몸의 곳곳에 내가 알기 어려운 용도의 각종 호스가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양발의 발목에서 허벅지까지 인공마사지기가 부착되어 있었는데 부풀었다 꺼지기를 반복했다. 가능하면 환자가 잠을 자지 않고 말을 많이 해야 회복이 빠르다고 하였다. 

  간호사의 지시에 따라 조카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던지며 말을 많이 하게 하고 잠들지 않도록 하였다. 조카가 목이 마르다고 하였다. 물을 달라고 하였다. 간호사가 물을 마시면 안 된다고 하였다. 나는 조카의 입에 물을 적신 거즈를 대주었다. 물수건으로 얼굴과 몸을 닦아 주었다. 온몸이 불덩이처럼 뜨거웠다.   

  동생의 수술은 이른 아침에 시작하여 밤이 되어서야 끝났다. 열두 시간이 넘는 큰 수술을 한 것이다. 수혜자는 자신의 간을 먼저 떼어내고 새 간을 옮겨 붙이는 과정까지 거쳐야 하기 때문이었다. 동생도 수술이 잘 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간이식 과정은 장기간에 걸친 고단한 여행과 비슷하다. 수술 수개월 전부터 사전 검사를 해야 한다. 수혜자와 공여자의 간과 몸의 기능적 특성과 기질적 요인에 대한 조사는 기본이다. 장기매매를 방지하기 위한 법적 절차를 밟아야 한다. 두 사람의 심리 상태도 점검한다. 때로는 공여자나 수혜자의 마음이 갑자기 변하여 이식수술을 거부하기도 한다고 한다. 의료진 운영 상황과 병실 확보, 수술 시기 결정 등 다양한 요소를 두루두루 고려해야 한다. 실제 수술에는 큰 비용도 든다. 전문 지식과 숙련된 기술을 갖춘 의료진들이 실수 없이 수술을 해야 한다. 이처럼 간이식 수술은 흩어진 레고 조각을 순서에 맞추어 정교하게 조립을 해가듯이 다양한 요소를 어긋나지 않게 수행해야 하는 큰 수술이다. 

  동생은 수술 후에도 1년 넘게 정교한 관리를 해야 했다. 하루 세 번씩, 매번 한 주먹 분량의 약을 정해진 시각에 먹었다. 수시로 병원에 가서 검사에 재검사를 거듭하였다. 항암치료도 끊임없이 이어졌다. 공여자인 조카도 몸을 정상화하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을 필요로 하였다. 제수씨는 수년에 걸친 긴 간병생활에 몸과 마음이 모두 지쳤다. 긴장의 연속이었다. 온 가족이 희망과 좌절, 분노와 체념, 의료진에 대한 불신과 재신임, 일상의 붕괴와 일시적인 정상으로의 회복이라는 거친 파도를 헤쳐 나왔다. 

  조카의 의식이 조금씩 회복되면서 대화의 양이 많아졌다. 간간이 ‘코드블루 (Code Blue)’가 방송되었다. 코드블루가 공지되면 병원 복도는 의료진들의 바쁜 발걸음 소리로 요란했다. 그런 순간에는 의료진이 죽음의 신과 맞서 싸우는 용감한 전투병처럼 느껴졌다.

  죽음에 맞서는 사람이 어디 의료진뿐이었겠는가? 눈앞에 닥친 죽음과 맞서 싸운 동생도, 자신의 배를 칼로 벌리고 간을 쪼개어 내주면서 아빠를 지켜낸 조카도, 죽음에 맞서 싸우는 남편과 장기를 잘라내는 아들의 고통을 바라보면서, 또 끝이 없어 보이는 간병의 시간을 지낸 제수씨도 진정한 영웅이었다. 모든 사람 모든 생명은 죽음에 저항하면서 산다. 삶은 죽음 속에서 핀 꽃이다.   

  

**********   

  

고통을 느끼는 존재만이

고통에서 벗어나려 한다. 

    

고통받는 인간은

고통에서 구해 줄 사랑의 손길을 소망한다. 

    

고통받는, 죽어야 하는 인간은, 

선악(善惡) 미추(美醜) 호오(好惡) 애증(愛憎) 고락(苦樂)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알 수 있다. 

    

인간의 눈물은 소금물이 아니다.  

    

죽음은 가치 형성의 토대이다.

죽음은 삶의 희열을 떠받드는 힘이다. 

    

선, 정의, 성실, 정직 등의 덕목은 

삶을 복되게 하기에 미덕(美德)인 것이다.  

   

사랑은 ‘죽을 존재들이 힘을 모아’

‘죽음을 넘어서려 하는’ 생명의 몸짓이다.  

   

삶은 죽음 속에서 핀 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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